제조업도 유통업도 컨텐츠 기업도 아닌
우리나라에 진짜 핵심기술, 핵심컨텐츠를 가진 기업이 있을까요. 연구자들의 개발자들의 디자이너의 역량이 아닌 기업의 철학 자체가 우리는 어떤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몇 몇의 기업들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고유한 디자인을 구축하여 알아서 진입장벽을 만들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 돈이 되는 것에 몰두할수록 사업의 실체가 더 없어지는 어려움에 직면한 곳이 많습니다.
제가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며 느낀 것은 이 안정적인 사업은 결국 국방부의 파이와 수익율의 제약 속에 환율 변동으로 인한 단가에 전전긍긍하는 수익구조를 가진 것이란 겁니다. 대부분의 핵심 부품은 모두 수입품이니까요. 재무팀 수익시뮬레이션의 핵심은 환율변동 시나리오였습니다. 어디 여기 뿐일까요. 제과업체, 의상업체, 소비재 기업은 모티브를 해외 브랜드를 거의 카피하는 수준입니다. 실제 우리가 기술이 있고 고유한 역량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은 욕하면서 사는 몇 개의 대기업과 히든챔피언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지인과 만나서 식사를 하다가 우리만의 문제, 제가 겪은 회사의 문제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익이 당장 필요하고 연구기간에 대해 버틸 힘이 없는 기업은 이런 게 더 심합니다. 우리 모두 여느 기업의 트랜스포메이션에 박수칠 때, 진정 그 기업 내에서는 "우리가 잘 하는 게 뭐였지" 반문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고보니 기초학문을 안한 제 빤한 전공선택 장면도 떠오르는군요.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서비스 분야부터 출발하는 것은 이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별화 비용이 자금력 안에서 버틸 수 있을테니깐요.
그런데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이 다음부터입니다. 회사 내 권력지형이 여기서 난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기업들이 MD, 마케팅, 유통영업에 많은 역량을 두고 여기 출신을 리더로 세우는 일이 많습니다. 기술 전문가를 세워 망한 사례는 케이스 스터디로 별도로 둡시다. 이건 또 정반대의 오류가 있을테니까요. 그러다보니 주요한 기업 전략이 현재 플랫폼의 양적 강화, 돈 안쓰고 사람 모으는 프로모션, 막 때와서 파는 소싱에 치중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지 않으면 이런 트랜스포메이션에 오히려 핵심역량을 은연 중에 잃게 되는 일도 있을텐데요.
대표적으로 쓰다 버리는 개발자는 창조경제를 한다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주소입니다. 개발이란 핵심적인 것을 고객니즈의 속도에 맞게 따라가지는 못하고 만든 것도 외주, 양산도 또 다른 외주에서 하니까요. 이런 환경에서 좋은 개발자가 외부에 계속 우리랑 공존한다는 전제는 없습니다. 개발과 양산 간의 버그들을 잡는 일은 기술을 잘 모를 수 있는 관리직이 하고 있을 거니까요. 싸게 만들어야만 되는 본질적 가치와 다른 모습으로요. 오히려 이런 환경이라면 실력있는 개발인력이 스스로 나가서 돈을 더 벌고 전문화되는 게 더 낫겠습니다. 그러고보니 기업간 네트워킹이 참 맞는 말이지만 씁쓸합니다. 기업의 본질이 유통은 아니니까요. 중국과 미국 사이에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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