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사람들이 모여 성과를 내는 곳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굳이 모일 필요도 없겠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모인 곳이다. 그래서 회사는 여러 명이지만 하나인 것처럼 움직이는 게 영원한 숙제가 될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다. 회사의 언어를 이해하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하는 언어. 내가 아닌 전체를 생각했을 때 어떻게 말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회사 언어의 출발이다.
여러 명이 일하는 회사에서 말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명에게 들려도 오해가 없을 말을 하는 것이 좋다. 즉 애매하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없애고 누가 봐도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숫자와 사례를 근거로 들어 주장하는 것이 좋다. 이른 바 ‘육하원칙(5W1H)’이라는 초등학교 때 배우는 문장의 요소는 회사에서 쓸모가 많다. 가령 신제품 출시 결과에 대해 보고할 때 어떻게 말하는 게 더 나을까?
A : “아쉽게도 이번 서비스는 목표 대비 다소 부족한 성과를 보였지만, 일부 소비자가 인터페이스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B : “이번 서비스는 목표 매출 20억 대비 실적 17억으로 85% 목표 달성으로 다소 부족했지만, 고객 설문 결과 인터페이스 만족도는 4.5점으로 기존 서비스 만족도 대비 1.7배 상승하여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A의 말은 임원들 사이에서의 대화 수준이다. 세세한 숫자보다 방향성을 주관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실무진은 B로 말하는 것이 맞다. 관리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오해 없을 팩트로 던지는 게 실무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임원이 B로 말하고 실무자가 A로 말하는 회사는 일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역할에 맞는 언어가 필요하다.
현대 경영학을 열어 젖힌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듣는 유형의 상사(boss)와 읽는 유형의 상사가 있다고 했다. 보고서를 들고 갔을 때 텍스트를 하나씩 다 읽는 상사가 있고 보고서는 전리품처럼 들고 내 설명만 듣고 결정을 내리는 상사가 있다는 것이다. 상사의 평소 스타일에 맞게 말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읽는 상사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지만 보고서 텍스트의 애매한 부분에 대해 질문이 들어올 때가 있다.
“여기 전년 대비 성장이면, 얼마나 증가했다는 이야기죠?”
“우리는 침체되었다고 나오는데 경쟁사는 같은 기간 어떤 상황이죠?”
“이거에 대한 핵심 원인이 뭐죠?”
보고서에 다 나타낼 수 없다면 미리 보고서를 읽으면서 읽는 사람이 궁금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반면 듣는 상사는 전체 내용을 하나로 꿰는 핵심적인 말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말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보통 첫 문장에서 전체 주제를 강하게 인지시키지 못하면 중언부언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세그먼트(Segment)가 모두 비슷합니다. 지역별이나 자녀 보유 등에 따른 고객 세그먼트 모두 20만명 미만으로 큰 차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자녀 보유 세그먼트 19만명, 경기 북부 지역 세그먼트 24만명, 충북 지역 세그먼트 17만명으로 모두 비슷한 상황입니다.” 는 비슷한 내용이지만 시간이 없고 생각이 많은 상사의 귀에는 다르게 들린다.
회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 유형인지 보는 유형인지 알면 직장 생활이 편하다. 자리에 찾아가서 가볍게 이야기 나누는 것 만으로 일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제대로 준비해서 가지 않으면 처음부터 안 좋은 인상, 말만 하는 사람으로 찍혀 앞으로 일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게 될 때 주변 사람에게 그 사람은 어떤 커뮤니케이션 유형인지 물어보라. 드는 에너지 대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단위로 삼성처럼 일하는 것에 대한 책이 나온다. 최근 <초격차>가 그렇고 그 전에도 여러 권의 책이 나와 일류 기업의 일하는 문화가 어떤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었다. 필자는 몇 권의 삼성 관련 책을 읽으면서 그 중 <삼성처럼 일하라>는 책에서 하나의 방식을 찾았다. 탁구를 치는 것처럼 일을 주고받는 것 말이다. 반응과 반응에 대한 재반응이 즉시 일어나는 것이 그들의 힘이라고 보았다.
“00 대리, 내일 오전까지 기획서 초안 메일로 보내줄 수 있어?”
이런 오더를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일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데드라인을 처음 조정하는 것과 진행하면서 조정하는 것은 신뢰에 큰 차이를 낳는다. “네, 할 수 있습니다.” 혹은 “내일 오전까지는 무리일 것 같은데, 오후 정도에는 관련 자료까지 함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미리 조정을 하는 것이 좋다.
일을 진행하면서 이슈가 생길 수 있다. 생각보다 상세한 내용이 필요하거나 회사와 관련 있는 핵심 정보가 중간에 먼저 보일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는 것이다. 축구나 농구에서 최대한 빠르게 패스를 하는 것처럼 이슈를 빠르게 조직 내부로 알리는 것은 회사 생활에서 아주 중요하다.
때로는 메시지 보다 메시지를 보낸 시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특히 IT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매출의 특이사항이 벌어지는 일 등은 보고 시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혼자 떠 안고 있는 시간이 길어 질수록 책임은 고스란히 스스로 지는 것이다.
일의 중간 과정을 수시로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상사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수록 상사의 의도와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일의 진척이 다 되지 않아도 중간중간에 일의 과정을 알려주는 것이 일한다고 티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상사의 말이 막히는 것만큼 어려운 순간은 없다. 상사가 결정할 수 있는 소스(source)를 주지 않았거나 현상만 들고가서 주관식 정답을 알려 달라고 기다릴 경우 그렇다. 이 때의 적막함은 상사의 무능일수도 있지만 실무자의 언어와도 관련이 있다. 같은 문제를 들고 들어간 다음의 세 명을 만나보자.
A : “이번 분기의 매출은 전 분기 대비 30% 이상 하락했습니다. 경쟁사들도 대부분 20% 이상 하락했습니다.”
B : “이번 분기의 매출은 전 분기 대비 30% 이상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 출시된 신제품이 일 매출 50억 내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프로모션 매출도 점차 좋아지고 있습니다.”
C : “이번 분기의 매출은 전 분기 대비 30% 이상 하락했습니다. 현재 대안은 첫번째, 이번 주 출시되어 일 매출 50억 정도 나오는 신제품을 증산하는 것이 있고, 둘째로는 프로모션을 전년대비 한 주 빨리 당기고 세부 프로그램을 00과 콜라보레이션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각 안을 실행하면 이번 주부터는 매출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세 명을 보자. 말하는 사람이 말을 길게 하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큰 차이가 있다. A는 단순히 현황을 듣는 수준이다. 듣는 사람은 듣고 바로 해 줄 말이 없다. 회사가 주목하는 것은 늘 대안이다. 대안을 말할 충분한 정보가 문장에서 빠져 있다.
B의 말은 들으면 안심이 된다. 말 속에 현상과 대안이 모두 나와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해 줄 말이 없다. 마치 듣는 사람은 이 일에 큰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상사의 역할이 없는 말이다. 업무에 연관된 부서 수준이면 이 정도의 이야기면 소통이 되겠지만 상사와의 대화에는 적막이 흐른다.
C는 현상과 함께 대안이 있다. 하지만 혼자 결과까지 주장하는 말이 아닌 상사와 함께 일을 만들어가는 언어다. 상사는 듣고 자신이 선택해 줄 수 있는 정보가 문장에 있고 기여할 수 있다. 서로 얻을 게 있는 말이다. 실무자가 설령 혼자 다 할 수 있고 그 중 가장 최선의 대안을 알아도 상사에게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신뢰받을 수 있는 행동이다.
Tip. 누군가가 내 뒷담화를 한다면?
일을 잘하는 것과 별개로 조직 내부에서 나에 대한 뒷담화가 돌 때가 생긴다. 경력직이라면 이직 순간부터 뒷담화가 생길 것이고 한 직장에서 쭉 다녔다고 해도 일을 너무 잘하거나 튀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의 입에 오를 때가 생긴다. 제한된 환경에서 여러 사람이 일하는 조직에서 뒷담화는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누군가가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 처음에는 당황하게 되고 화가 난다. 사실이 아닌 뒷담화는 더욱 그렇다. 이런 뒷담화가 많아질 때는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먼저 사실과 다른 뒷담화는 언젠가 한 번은 스스로 공개석상에서 바로잡는 편이 낫다. 이왕이면 부드러운 자리, 사석 같지만 공적인 편한 분위기의 회식이나 커피 마시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본인의 사실을 표명하는 편이 낫다. 오해가 길어지면 사실이라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대로 정보를 취급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뒷담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고쳐야 할 부분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에서 가십거리로 이야기가 돌 수 있지만 대부분은 문화적으로 다른 것에서 말이 나온다. 일 처리 방식이나 사람과의 관계, 태도 등이 그렇다. 이런 경우 굳이 사실에 대항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부드러운 자리에서 자신도 들었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식으로 담담하게 밝히는 편이 조직 생활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회사의 언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성과를 향해 달려가는 집단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언어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단순히 요즘 직원들의 은어나 핫한 맛집 주제를 알고 같이 대화에 끼려고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입장이라는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잘 유지하는 것이 더 도움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말하는 것만큼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집중하여 잘 들어주는 ‘경청’이 먼저 필요한 것은 자명할 것이다.
위 내용은 IBKS 내부 매거진에 19년 6월에 기고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