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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Mar 24. 2020

직무 노트 쓰기

미국 군인들이 전장에서 탁월한 성과를 얻는 원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와 군수 체계에만 있지 않다. ‘AAR(After Action Review)’이라는 사후 기록이 누적되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의도한 것 대비 실제 결과의 차이를 정확히 피드백해서 대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도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은 기록으로 요즘 많이 추종하는 ‘업글인간’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직무 노트가 그 해답이 되어 줄 것이다.




직무 노트는 피드백의 기록이다


직무 노트는 직무의 기능을 기술한 노트가 아니다. 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사수 옆에서 시스템을 다루는 방법부터 업무 노하우까지 기록하면서 나중에 잊어버렸을 때 들추어 보는 매뉴얼이 아니다. 직무 노트는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장이다. 쉽게 말하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나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가 직무 노트와 가까운 개념이지 ‘전투 세부 시행규칙’ 같은 교범이 직무 노트가 아닌 것이다. 


미 육군에서 지난 20여 년간 전장에서 작성한 AAR은 직무 노트의 성공 사례로 불릴 만하다. AAR은 크게 네 가지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1.      사전에 목표한 것은 무엇인가?

2.     실행 후 발생한 결과는 무엇인가?

3.     목표와 결과의 차이는 왜 생겼는가?

4.     차이를 통해 향후 보완할 점은 무엇인가?


이 단순한 질문이 현대 경영학의 지평을 연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가 강조한 피드백을 통한 학습을 만든다. 일을 하면서 즉석에서 생각난 것을 일기처럼 쓰는 것도 안 쓰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은 것이지만, 읽을 때 그때의 감정을 되살리는 용도가 아니라 자기 성장의 목적으로 직무 노트를 작성하는 것이라면 이런 AAR 방식의 직무 노트를 쓰는 것이 좋다. 




'내 직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가 직무 노트의 출발점이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직무 노트를 잘 쓰는 스킬에 앞서 나의 직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는 문제다. 직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에 따라 목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리’라는 말이 ‘경영관리’의 줄임 말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리를 기존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처럼 장부를 관리한다고 생각하면 장부를 어떻게 잘 쓸 것인지만 기록하고 피드백하겠지만, 경영 관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일을 대하는 태도, 커리어의 목표가 달라질 것이다. 회사에 벌어지고 있는 숫자를 통해 실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고 약한 프로세스를 바꾸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르게 일하고 인식된다. 업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건희 회장이 신라호텔 임원에게 호텔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전략 방향이 달라졌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서비스 업으로 기존에 인식했던 호텔 사업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하던 중 부동산과 장치 산업으로 재정의 했고 전략을 수립한 일은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나의 직무는 어떤 가치를 지녔고, 그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맡은 직무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내는지 고민해 본다면 단순히 지금 하는 일을 더 많이 처리하고 더 빨리 처리하는 것으로 목표가 세워지지 않는다. 보다 더 가치 지향적인 일로 목표와 행동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보험업에서 보상을 담당하는 분이라면 ‘보험금 지급자’로 스스로를 정의하기보다는 적정 보험금을 산정하는 ‘지급 심사자’로 스스로 업무가치를 정의할 때 같은 일의 반복인 오퍼레이팅(Operating)이 아닌 보다 가치 판단이 들어간 나아갈 방향이 생기는 것이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단순히 하는 일을 더 빨리 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으로 그 일을 대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직무의 성격을 한 단계 높은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재정의하면 직무 노트에 새롭게 기록할 것이 생기고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역량이 생긴다. 직무를 재정의하면 누구나 새로운 학습의 목표가 생기고 성장과 보람을 맛볼 수 있다.




직무 노트 작성 시 유의사항


- 정량적 방향성, 정성적 방향성, 성장 계획, 3가지를 포함할 것


각 질문의 단계별로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목표를 정할 때는 정량적, 정성적인 목표를 적는 것과 함께 성장을 위한 목표가 함께 있어야 한다. 현대 경영에 많은 영향을 준 BSC(Balanced Scorecard) 개념을 창안한 로버트 캐플런 교수(Robert S. Kaplan)는 기업에서 흔히 말하는 ‘매출 000억 달성’, ‘신규 고객 000명 증가’ 같은 정량적인 목표나 ‘빅데이터에 기반한 심사 시스템’ 등 정성적인 목표와 함께 스스로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배움에 대한 목표도 반드시 정할 것을 강조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의 경영계획 목표는 있지만 관련해서 무엇을 배울지 미리 계획하고 피드백을 직무 노트를 통해 하는 일은 드물다. 혹시 연초에 끊어 놓은 온라인 강좌나 사 둔 책이 있다면 여러 체크리스트 쓰지 말고 직무 노트 하나에 다 피드백해서 관리하는 것은 어떨까?


발생한 결과도 실행을 하지 않은 이유까지 솔직하게 직무 노트에 쓰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일은 목표는 있지만 실제 시도하지 않아 실행되지 않은 것이 의외로 많다. 미국의 전설적인 영업사원인 지그 지글러(Zig Ziglar)는 행동하는 2%가 행동하지 않는 98%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왜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심도 있게 생각해 보면 회사 구조의 문제인지, 나의 습관인지 혹은 다른 데 원인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왜 하지 않았는지 정리해서 반복적인 결과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지 않는다. 직무 노트는 공개할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원인을 솔직하게 쓰고 정기적으로 다시 보면서 환경을 바꾸거나 나를 바꾸는 데 지침으로 삼으면 좋다.



-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할 것

 

목표와 결과의 차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일을 실행한 프로세스를 세부적으로 뜯어봐야 한다. 기획 중 예상했던 일과 실제 벌어진 일을 비교하면서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최종 결과가 아니라 일하는 중에 발생하는 중간 결과에 대해 KPI로 정리된 게 있다면 숫자로 중간 과정을 평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매출 000만 원을 달성하려면 역으로 고객 00명을 신규로 만나야 하고 그중 00%가 가입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목표에 세운 고객 수와 가입률이 실제와 같은 지 중간 과정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것과 같다. 목표와 결과의 차이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으로 현상을 얼마나 깊이 파느냐 에 따라 답을 얻을 수 있다.


보완할 점은 구체적인 숫자나 시간을 고정화해서 도출되어야 한다. 두루뭉술한 표현보다는 정확한 실체로 기록되어서 직무 노트에 남아야 한다. 가령 ‘올해 상반기까지 토익 900점을 달성한다’는 구호성 대안보다는 ‘월, 수, 금 오후 10시에는 30분씩 토익 공부를 한다’가 훨씬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물론 900점이라는 최종 목표도 있어야 하지만 보완할 점은 이렇게 시간이 고정화되면 성장에 이르기 더 쉬워진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성격의 일인가? 일의 결과가 고객과 회사에게 어제와 다른 부가가치를 어떻게 낼 수 있나? 더욱 치열해진 지금 비즈니스 현장에서 스스로 이 질문과 답을 놓고 씨름할 수 있는 장이 직무 노트다. 아무 노트나 괜찮다. 일단 하나를 골라 꾸준히 써보자. 하루 한 줄이라도 좋다. 목표와 대안이 꼭 하루에 있을 필요도 없다. 일단 노트에 쓰면 노트를 안 쓰는 시간에도 내 머리는 답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답을 찾기 위해 두루 본 것들과 배운 것들도 적어보자. 답은 어느 순간 떠오르게 될 것이다. 누적된 아이디어를 목표로 바꿔보고 실행하고 피드백해서 하나씩 바꿔보자. 분명 올해 연말에는 조금 더 나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위 내용은 삼성화재 내부 매거진에 20년 3월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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