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자란다, 캐나다에서.

ep.01 캐나다엔 왜 이렇게 꽃이 많아?

by 달씨앗

나이가 들면 꽃이 예뻐 보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도로변에 인위적인 모양으로 식재된 알록달록한 팬지를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꽃다발은 늘 꽃보다 포장지가 먼저 눈에 들어와 과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이 자꾸만 꽃을 쫓았다. 단순히 나이 탓으로 돌리기엔 내 눈에 들어오는 꽃의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미처 깨닫지 못한 환경의 변화였다. 그래, 여기 캐나다였지! 캐나다살이 팔 개월 차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장 보러 간 마트에서, 페인트를 사러 들른 철물점에서, 버스 정류장 앞 작은 편의점과 동네 구석의 기념품 가게까지. 눈 닿는 곳 어디에나 꽃이 있었다. 캐나다 주부들은 필요한 물건을 고른 뒤, 마지막에 파 한 단을 더하듯 꽃을 카트에 얹었다. 그곳에서 꽃은 사치가 아니라, 휴지나 세제처럼 떨어지면 다시 사야 하는 생활필수품이었다.

계절마다 새로운 꽃을 사서 화병에 꽂고, 처마 아래에는 화려한 행잉 바스켓을 건다. 기꺼이 무릎 꿇고 마당에 모종을 심고, 특별한 포장 없이 갈색종이에 둘둘만 꽃다발을 가볍게 선물한다. 카페 테이블에 작게 놓인 꽃 한 송이는 사람들이 그 카페를 다시 찾는 이유가 되었다. 그것이 그 나라의 평범한 풍경이고 문화였다.



기후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밴쿠버는 캐나다 중에서도 기후가 좋기로 유명하다. 한국보다 여름은 덜 덥고 겨울은 덜 춥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이른 봄에도 동네 거의 모든 집의 앞마당과 넓은 공터에는 수선화, 크로커스 같은 봄꽃들이 늘비하다. 곧이어 수국과 백일홍, 달리아 같은 화려한 여름꽃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만개하고,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호박들과 국화꽃이 그다음 순서를 이어받아 가을 풍경을 채워준다. 겨울엔 갓 잘린 소나무가 트럭에 실려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현관문마다 걸린 크리스마스 리스의 싱싱함이 마음을 홀린다. 이것이 회색빛 도시인 밴쿠버를 따뜻한 사람의 도시로 바꾸는 그들만의 방법이었다.



사방에서 꽃이 피고 지는 풍경은, 신도시 45층 아파트에서 살던 내 인생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조용히 마음에 새겨졌다. 꽃을 마주칠 때마다 카메라를 켜고 이름을 검색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생존을 위한 영어 단어는 그렇게 외우기가 어렵더니, 존재를 위한 꽃 이름은 그 자체로 내게 스며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가까운 화원과 수목원을 검색해서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떨 땐 십 분, 어떨 땐 한 시간, 근방의 모든 꽃집들은 내 놀이터가 되었다.



외롭게 살아가던 기러기 엄마의 삶에 꽃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막막하던 하루하루, 마음먹고 나서지 않으면 며칠이고 사람 구경을 못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의 재미없는 질문에 답하는 몇 마디 외엔 입 한번 열지 않고 지나가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혼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순간을 찾게 된 것이다. 재미없는 천국, 캐나다에서 나는 그렇게 나만의 천국을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