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간의 2G 폰 사용기
해가 갈수록 점점 스마트폰 중독이 심해졌다.
활자중독자라기보다는 댓글중독자에 가까운 나는, 짬짬이 포털 사이트에 뜬 기사를 보는데, 기사를 읽기보다 아래 달린 댓글 읽기를 좋아한다. 기사뿐 아니라 유튜브의 영상이나 블로그의 글을 읽을 때도 무조건.
남편이 왜 그렇게 남에게 관심이 많냐고, 그냥 네가 느끼는 대로 즐기면 되지라고 핀잔을 주어도 끝까지 댓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차에 내려 집으로 가는 동안,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보는 동안,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 에도, 누워 있으면서도.... 꼭 어느 특정 시간을 정하지 않더라도 짬나는 모든 시간엔 여지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중독 증상이 더 강해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책모임의 영향이 컸다. (그렇다고 책모임이 잘못된 건 아니다!) 내가 하는 책모임은 매일 동시를 필사해서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매일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고 단상을 남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언제든 글이나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구조인지라, 몇명 모여도 거의 대부분 채팅창엔 숫자가 적힌 빨간 풍선이 한쪽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을 수밖에.
처음 알람 소리를 끄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아예 알림을 차단시키는 긴급 처방을 내렸지만, 오히려 더 자주 카톡을 열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먹는 하마처럼 나의 시간을 남김없이 쪽쪽 빨아먹는 스마트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둑맞은 집중력>을 책모임에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났다. 3개월 동안 완전한 오프상태로 살아본 저자가 여러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현 시스템의 문제를 짚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논의를 담은 책인데, 저자가 모든 것을 오프 한 직후부터 느꼈던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묘사한 장이 여전히 충격적으로 남아있다. 읽으면서 나도 언젠간 꼭 해보리라 꿈꿨는데, 이번이야말로 아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한 업무를 처리할 일도, 공적인 전화를 받을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만 줄여도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마침, 집엔 어릴 때 아들이 사용했던 2G 폰이 있었다. 3월. 휴직이 시작되는 날 나는 Z플립을 버리고, 2G 폰을 꺼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제야 내 시간을 찾았구나. 온전한 나의 시간을 즐길 날만 남았다. 생각했다. 3월 한 달만 적응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오늘,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스마트폰에 유심을 다시 끼워 넣었다. 나는 속세와의 인연을 모두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간 자연인이 아니기에.
내가 한 달간 느낀 점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1. 모든 결제 시스템이 스마트폰을 사용한 페이 방식이 아니고는 매우 번거로울 분더러 금전적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PAY라는 이름으로 해당 기업의 페이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하는 경제 시스템)
2. 자녀의 학교에서 안내되는 모든 내용은 스마트폰으로 확인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아닌 컴퓨터로도 가능하지만 요즘 누가 컴퓨터를 켜서 알람을 본단 말인가. (심지어 아이들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시간표부터 확인하기 힘든 학교 시스템)
3. 카톡이 아닌 문자의 경우에도 링크 접속을 통한 안내가 이뤄진다. ARS서비스를 비롯하여 모임 참여, 서평단 지원, 각종 연수 신청 등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2G 폰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링크 접속을 통한 신청 시스템)
4. 사람을 초대하려면 차량 번호를 미리 등록해야 하고, 집만 차지하는 중고 물품도 정리해야 하고, 저녁이 하기 싫은 날엔 음식도 시켜야 하고, 오프라인에서 바로 구입하기 어려운 아들 실내화 가방을 로켓 배송으로 급히 받아야 하고, 읽을 책도 사야 하고....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김없이 와이파이로 연결된 스마트폰을 꺼내야 한다. (생활과 관련된 대부분의 것이 앱으로 연결된 시스템)
5. 운전을 하면서 새로운 장소로 이동을 할 때 내비게이션 없이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 역시 지도앱 없이는 어디로 섣불리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의 발명으로 여행 중 싸우는 횟수가 확 줄었다는 말에 아주 동의하는 바이다. (이동 시 필수가 되어버린 내비게이션 시스템)
이것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지만, 몇몇 당혹스러웠던 순간들을 풀어본다.
첫 주.
2G 폰만 들고 외출했다가 마시지 못한 커피. 스타벅스 앱에 담아둔 음료 쿠폰. 마음을 표현하기 간단하고 심플한 대표 선물이기에 나도 몇 번 보냈고 또 몇 번 받는다. 그간 받아둔 카드와 쿠폰으로 매번 잘 먹었는데. 쩝. 아쉬운 마음에 동네 GS슈퍼에서 장을 보려는데 GSPAY 할인과 쿠폰 적용을 할 수 없다. 이후 실물 카드 몇 장을 작은 주머니에 넣어 다니기로 했다.
둘째 주.
가방에 스마트폰과 2G 폰 두 개를 넣어 다녔다. 슈퍼에서 장을 볼 때는 남편의 휴대폰과 연결해 결제를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땐 공공와이파이를 연결해서 바코드를 사용했다. 아이들이 와이파이존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이유를 뼈저리게 느끼며. 고마운 와이파이. 어디서든 와이파이 정보가 어디 있는지 기웃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늦은 밤 남편을 데리러 간 도로 위에서 바뀐 도로 상황에 당황하며 앞으로 운전을 할 땐 어떡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셋째 주.
2G 폰이 스마트폰의 보조일 뿐, 원래의 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필사방에 쓴 동시를 올리려면, 내가 만든 음식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물건을 사려면... 을 시작으로 다시 기사를 보고, 영상을 보고, 댓글을 보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있는 인터넷 선을 뽑아버려야 하나?!
넷째 주. 오늘.
2G 폰을 바꾸고 얼마 되지 않은 날, 시킨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남편이 한 말이 기억났다. "이거 진동벨 아니야?"
카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나의 2G 폰을 보며 웃길래 그땐 그냥 농담처럼 웃어넘겼는데, 카톡으로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다가 거실 탁자에서 윙-윙-울리던 산불 경보 알람 진동을 듣곤, 말이 곧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유심을 꽂은 으기양양한 스마트폰이 내 눈앞에 있다. 그간 2G 폰과 생활하며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무서움이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는 건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연결될 것인가. 우린 영화 <매트릭스>의 현실판을 찍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두 개의 알약처럼. 오프라인의 의 삶을 살 것인가, 온라인의 삶을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오지 않을까.
나이가 좀 더 들면 손해를 보면서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나는 다시 2G 폰을 꺼내들지 않을까 자신한다.
아들에게 하는 말 "난 너를 믿지만, 스마트폰을 믿지 못해."라는 말에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
난 스마트폰을 믿지 않겠다. 단 스마트하게 사용하겠다. 는 다짐이 오래도록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집중력 저하가 주로 나나, 여러분이나, 여러분 자녀의 개인적 실패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를 찾아냈다. 모두가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를 공격하는 세력은 매우 강하다. 그러한 세력 중에는 거대 테크 기업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다. 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다.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