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작가 Dec 15. 2021

산타아웃

‘엄마~’

‘산타 없어?’


‘으... 응?’


‘애들이 선물 부모님이 주는 거래~산타 없대...’


......................

‘후니는 어떻게 생각해?’


‘산타클로스가 내 그림에 사인도 해줬잖아~

그리고 엄마는 절대 안 사줄 게임칩도 사줬고...’


‘맞아... 그랬지~~’


‘난 산타가 있는 것 같아’


이런 대화가 오갔고 아이 가방에서 산타할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나왔다. 지금까지 쓴 어떤 글보다도 진지했다. 특히 반복되는 ‘믿어요’와 ‘사랑한다’는 두 마디에 진심이 묻어난다.



나도 이렇게 산타에 진심이었나?! 산타에 얽힌 내 첫 기억은 유치원에 찾아온 산타할아버지다. 수염 사이로 보이는 산타의 얼굴은 명백히 신부님-성당 유치원이었으므로-이었다. 그것이 충격적이거나 배신감을 몰고 오진 않았으나 최초의 기억이 초등학교 입학식인 내가 이 기억을 소환한 걸 보면 당시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찰나의 따스했던 미소가 남아있는 듯하다.



어쩌면 7살 소녀에게 산타클로스가 진짜냐 가짜냐하는 문제는 살짝 묻어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쨍한 테이블보와 평소 못 먹던 뽀얗고 알록달록한 달콤한 것들, 심장을 바운스 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송 그리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분주한 선생님의 발걸음까지 모두 따뜻하고 활기찬 빨간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특히 무릎에 앉혀 눈을 마주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엄마가 줬을) 카드와 선물을 건네받던 의례는 그것이 진짜 산타가 아니라 하더라도 고사하고 싶지 않았다.



그 후로도 아이들이 산타아웃을 하는 통에 어물쩡 산타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던 것 같다. 신부님으로 밝혀진 산타와의 첫 대면으로 근간이 약해진 데다 공공연히 들리는 산타 부모설로 크리스마스 동심은 힘을 잃었다. 초2까지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던 사촌동생에 대해 어른들과 어깨를 맞춰 으쓱했던 순간은 저울질에서 확실히 손을 뗐던 기억이다. 아이들의 동심은 어른들이 보는 것처럼 어리숙하다거나 우둔한 것이 아닌 냉철한 직관이자 자발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현자 타임을 거부하고 사랑의 순간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대다수 아이들에게 산타아웃은 한순간의 폭로가 아닌 추억의 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아이도 나를 통해서 친구들을 통해서 산타아웃하고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아이는 더 이상 나에게 산타의 존재를 묻지 않을 것 같다. 아이가 행여 알리바이를 열심히 만든 엄마에 대한 배신감이나 친구들 앞에서 바보가 됐다는 수치를 느낀다 해도  설렘과 사랑을 꼭꼭 간직한 후니의 10년이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꿈에서라도 나르시시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