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문제가 온갖 형태와 크기로 등장한다. 어떤 문제는 거대하고 구조적인 문제여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는 반면, 어떤 문제는 작고 독립된 문제라서 이를 해결할 때는 안정감, 유머, 성취감까지도 추가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크고 작은 문제를 둘 다 해결하면서, 동시에 설계하고 있는 커다란 시스템 전체(도시, 정부, 회사, 제품 등)가 인간을 위해서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
댄 새퍼의 책 <마이크로 인터랙션>에서 발췌한 문장입니다. 이 문장에서 얼마 전 플로깅을 하며 알게 된 쓰레기 거점 공간인 '골목관리소'가 떠올랐습니다. 가령 업무 책상에도 본인만의 질서를 만드는데, 넓은 범위인 도시는이동 편의성, 환경, 보안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시스템 수립이필요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골목쓰레기 문제 해결 방법과인간행동을 유도하는 디자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목차
1. 문제점 : 골목길의 쓰레기 불법 투기
2. 솔루션 : 분리배출 거점 지역
3. 행동 디자인 :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비밀
4. 지속가능한 공간 디자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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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
골목길의 쓰레기 불법 투기
쓰레기는 내 집 앞에, 무단투기 시 과태료 부과
지켜지지 않는 문전 배출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곳은 골목 중심으로 생활공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골목길을 걷다 보면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때가 많습니다. 아파트는 분리수거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주택가는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문전 배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때문입니다. 내 집/점포 앞에 쓰레기를 배출하는 게 원칙임에도 편의상 가로수나 전봇대에 버리거나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쓰레기와의 전쟁,양심이 지다
특히 골목은 누구의 공간도 아니라는 인식 탓에 시선이 덜 미치는 곳이라면 불법 투기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한 사람이 시작한 작은 휴지 조각은 골목길을 무단 투기 장소로 고착화하며, 불법 투기 금지 안내 현수막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무분별한 혼합 배출, 쓰레기 배출 규정시간 비준수 등 쓰레기 문제가 만연합니다.미관과 위생, 환경뿐 아니라 이웃간 분쟁 요소로도 커지는 쓰레기 문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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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
분리배출 거점 지역, 골목관리소
플로깅과 분리배출을 동시에
안산살림 프로그램 프로세스
골목 단위의 쓰레기를 해결하고 탄소중립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안.그 답을 서대문구 '영천골목관리소'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안산살림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플로깅과 분리배출을 동시에 경험해 보았는데요. 직접 쓰레기를 줍고 골목 환경관리 거점지역인 골목관리소로 이동하여, 재활용/일반/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 버렸습니다. 이후 리워드로 개인 용기에 음료와 떡갈비를 제공받았는데, 공공 서비스 저니맵이 잘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골목관리소 공간 경험
출처 : 서울특별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골목관리소는 거주자 인식과 공간 체계를 연계하여 분리배출로의 행동을 이끈 도시 재생사업의 일환입니다. 지정된 날짜에 문전수거하는 방식과 달리, 관리소가 운영되는 시간이라면 365일 분리배출이 가능합니다.거주지 내거점공간 존재만으로 시민들의 분리배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관리소 내 배출 공간은사용자의 행태적, 심리적 경험을 동선으로 유도하여 사용자 편익과 수거 체계의 효율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붙으면? 철캔! 안붙으면? 알루미늄캔!
골목관리소 입구에 들어서면 재활용 정거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재활용품을 세척하여 바로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세면대가 마련되어 있고, 곳곳에 품목별 배출 방법이 적혀 있어 쉽게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캔류는 알루미늄과 철로 구분해 수거하는데, 두 차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자석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캔이 자석에 붙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 분리배출을 강요하지 않아도 행동 변화를 이끄는 게 신선했습니다.
기능을 넘어 주민 커뮤니티 활성화까지
분리배출 공간 마련보다 시민들이 어려움없이 참여하고 확장 및 협력으로 연결되는 커뮤니티 형성이 더 중요합니다. 쓰레기 배출 공간인1층은 골목관리사가 따로상주하여분리배출 안내를 돕고, 위층은 학대피해아동 및 노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구축되어 공동체 기반 네트워크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로 지속적인 사용자 유입을 유도하고, 지역 차원의 플로깅과 같은 단체 활동을 모집할 수도 있어 선순환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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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디자인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비밀
편하고 싶은 욕구를 이기기는 어렵다
'주변 사람들도 안 하는데 내가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라는 유혹.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편하게 지내고 싶은 눈앞의 욕구에 무참히 지고 맙니다. 안다고 해서 정석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에 직접적으로 권유하는 말과 감시시설은 부정적인 인식만 강해질 뿐, 본질적인 행동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불법 투기를 비롯한 골목길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사람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행동 디자인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을 바꾸고 싶어 지도록 만드는 건 어떨까요? '집단' 행동이 만드는 쓰레기 문제는 결국 개인행동이 모인 결과이기 때문에, 개인들 스스로 행동을 바꾸면 집단의 문제 해결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 행동 선택지를 추가하고, 강제성 없이 적용된 행동을 택하여 사람들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행동하고 싶어 지도록' 환경이나 조건을 디자인해 문제 해결을 노리는 것. 이것이 바로 '행동 디자인' 접근 방식입니다.
편익과 부담 사이에서
[편익과 부담 그래프] 편익이 부담보다 커야 행동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행동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편익'과 '부담'에 따라 달라집니다. 편익은 행동디자인에 의해 발생하는 즐거움같은 감정이며, 부담은 행동을 바꿀 때 발생하는 체력적/시간적/비용적 부담을 통틀어 일컫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신기했던 경험들에 흥미를 잃기도 하고, 행동 변화에 대한 부담이 커 도전할 동기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편익과 부담의 교차지점을 고려하여 행동디자인의 효과와 지속성을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는 '불법 투지 금지' 현수막같은 시도는 오히려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센서나 방범 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금전적 비용이 따를 뿐만 아니라 감시받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반면 무단투기 취약지에 화단을 조성하는 것은 미연에 사람들의 투기 욕구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동 중심 접근법으로 발상을 전환하여 사람들의 행동 변화의 편익과 부담 사이를 조율해야 합니다.
게이미피케이션
[게이미피케이션] 적절한 보상은 움직일 동기를 만든다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활용하면 사람들이 쉽게 질리지 않고 도전할 동기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주로 도전-경쟁-성취-보상-관계로 이어지는 일종의 게임 메커니즘입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서비스 디자인에서도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활용하여 사용자 경험과 참여를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챌린지로 도전 목표나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느끼도록 보상을 제공하면, 사람들의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활용하면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코인이나 지역 화폐 등으로 교환해주어 지역 상점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게이미피케이션을 적용한 사례입니다.게이미피케이션 역시 처음에는 잘 동작할 것이지만, 반복할수록 편익이 줄어들어 사용자가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도전 정도에 따라 보상 수준을 달리하여 내재적 동기를 잃지 않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분리배출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도록 정교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기본값 설계, 넛지(nudge)
이전 아티클에서 잠깐 다루었지만 기본값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행동 방향을 변화하도록 개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값 설정을 바꾸는 것이 바로 '넛지'입니다. 행동 디자인의 대체 행동 선택지와 넛지의 초기 기본값 설계. 이 둘이 뭉치면 사람들이 이로운 행동을 하고 싶게 만듬과 동시에, 이를 무심코 선택하도록 유도하여 현재 주어진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넛지 사용의 3가지 원칙
사람들이 나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합니다. 행동경제학 책 《넛지》의 저자 세일러는 모든 넛지는 좋은 목적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말하며, 아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1. 투명성 : 투명해야 하고 오도해서는 안 된다. 2. 비강제성 : 참여하고 싶지 않다면 언제든지 쉽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3. 신뢰성 : 유도된 행동이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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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공간 디자인이란
Design for a Better World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무엇일까?
과밀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maker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전진해야 할까요? ESG가 당연시되는 만큼, 지난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대부분 연사들은 '지속가능성'을 외쳤습니다. WDO 회장은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Design for a Better Wolrd'로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자인'. 당연한 말 같지만 사람의 행동을 개선하고, 불평등/건강/웰빙/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에 기여하는 것 등 메이커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자인에도 태도가 필요하다
다시 공간으로 돌아와서! 도시 계획을 위해서는 건축 환경과 교통, 시민 참여 및 고용, 커뮤니케이션, 공공 서비스 등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환경은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공간에도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건물은 하드웨어가 아닌 콘텐츠를 담는 유의미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메이커는 서비스와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더 나은 경험을 만드는 것에 책임이 있습니다.
환경-사람-기술이 단절되지 않는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이렇듯 인간을 위한 디자인 윤리의식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사회 구성원의 공익과 미래세대를 위한 자원 보호가 중요한 목표가 될 것입니다. 이에 마음에 품은 원칙을 나열해보았습니다. 사용자 보편성을 고려하는 유니버설 디자인, 생태환경과 조화하는 에코 디자인, 사람과 기술의 간극을 메우는 공존 디자인. 이 세 가지 원칙과 함께 사람과 환경-사람-기술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디자인에 임하는 태도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연극 무대와 건축 설계 일을 했었기에 공간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별한 장소가 아니어도 공간과 사람 행동의 상관관계를 관찰하며, 행동 어포던스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찾곤 합니다. UX를 IT 서비스에만 한정 짓고 싶지 않기에, 공간에서의 복합적인 경험을 주제로 다루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처음 우주로 나갔을 때 무중력 상태에서는 볼펜이 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ASA는 10년 동안 120억 달러를 들여 무중력에도 사용할 수 있는 우주용 볼펜을 만들었다.
... 한편 러시아는 연필을 사용했다.
이번 아티클로 행동 디자인에 대한 공부와 사례 연구를 병행하면서 발견한 재밌는 에피소드입니다. 요지는 '기계의 힘에 의존하기보다 최소한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찾아라'였습니다. 때론 본질을 잃고 멀리 돌아가지는 않는지 경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