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은 언제나 나쁜 것일까?
오래된 의문이 하나 있다.
개인적으로 살아오면서 만난 주변 사람들, 혹은 어디선가 들어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 더해서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반응을 보고 있다 보면 사람이란 존재는 그다지 악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나쁜 면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쪽이 조금 더 많이 느껴진다.
그런데 왜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과거 밀양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서는 것이나, 공정함의 대명사이어야 할 법정이 돈과 인맥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상은 왜 이토록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개개인의 사람들은 그리 악하지 않지만, 아니 어느 정도쯤은 착한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이나 결과들을 보면 오히려 악한 것이 훨씬 더 도드라지는 현상은 도대체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사람이 얼마나 선한지 악한지를 정확이 알 방법은 없다. 잔칫집에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인간은 풍족하다고 느끼면 선해지고 부족하다고 느끼면 악해지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살고 싶다면 그렇게 상황에 따라 적응해야 한다. 그러니 일단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본성도 위의 그림처럼 자연의 법칙인 표준분포 곡선을 따른다고 가정해 보자.
1번에 속한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악당이라고 부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망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2번에 속한 사람들은 나쁘긴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뻔히 보는 상황에서조차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기적이지만 1번처럼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는 악당은 아닌 것이다. 3번에 속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착한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이 손해를 입으면서까지 이타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4번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참 착하다, 심하면 천사다라고 할 수준의 사람들이다.
대충 비율로 보면 순서대로 1번 10%, 2번 40%,3번 40%,4번 10% 정도 될 것이다. 그렇게 악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선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50: 50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꼭 고려해봐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2번에 속한 사람들이다.
2번에 속한 사람들은 분명히 이기적이기에 딱히 남을 돕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만큼은 자신의 평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자신은 딱히 돕고 싶지 않아도 남들이 다들 도우니까 돕는 척을 하거나, 속으로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대하는 것이다. 당연히 감정이 남아 뒤에 가서 험담을 신나게 하겠지만.
그러니까 일단 겉으로는 착해 보이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높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악당은 10% 정도이고 나머지 90% 정도는 대충 착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결론들은 전혀 그래 보이질 않는 것일까?
TV 속 뉴스를 보다가 보면 오히려 그야말로 나쁜 놈들 전성시대처럼 보일 지경이다. 일부 소소를 제외하고는 다들 남들 앞에서만 착한 척을 하고 있는, 사실상 악한 존재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 것일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선과 악이 싸울 때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이 소수의 악이 다수의 선을 이기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마치 실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마구잡이로 반칙을 하는 팀과 실력은 압도적으로 뛰어나지만 규칙을 잘 지키면서 하는 팀 간의 축구 경기와 같다. 한쪽은 15명이 경기장에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공을 잡고 뛰기도 하고, 심지어 선수를 발로 차서 크게 다치게 만들기도 하는데 다른 한쪽은 철저하게 축구 규정을 지키면서 경기에 뛰고 있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악은 이미 악하기 때문에 비난이 비난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비난을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은 비난에 민감하다. 아니 처음부터 비난에 민감했기 때문에 선 쪽에 줄을 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당연히 반칙은, 특히 눈에 보이는 반칙은 꿈도 못 꾼다.
하지만 그들의 안에 들어 있는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악이 대표하여 꺼내준다. 악은 모든 비난을 받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자유롭게 반칙을 하면서 승부를 벌인다. 하지만 상대를 하고 있는 선은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정당하지 않게 행동하면 그 선을 지지하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위선이라고 하면서 욕을 한다. 그래서 결국 그만두게 된다. 결국 악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나마 이 세상이 이 만큼이라도 버티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악에 해당되는 10%의 사람들과 80%의 지지를 받는 10%의 선의 사람들이 싸우는 와중에 악은 수많은 반칙을 통해 90%를 이겨내고 있다. 더해서 그리 선하지 않은 하위 40%의 사람들이 욕망을 자극해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눈 때문에 그나마 착한 척을 하던 사람들이 익명이란 힘을 통해 앞서 있는 악의 뒤를 따른다.
반칙을 쓰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악과 늘 정정당당하게만 승부해야 하는 선의 싸움에서는 늘 악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압도적인 실력이나 행운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난다. 악당이 대놓고 칼을 써도, 뒤에서 총을 쏴도 주인공은 다 피해내고 결국 이겨낸다. 현실이 전혀 그렇지 못하니까 창작물인 영화 속에서 그렇게 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이 세상이 선하게 되길 그토록 바라면서 온갖 반칙을 일삼는 악과 싸우고 있는 선에게는 무기 하나 제대로 쥐어주지 않고 오직 맨주먹으로 싸워야만 제대로 된 정정당당한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 나쁘지 않다. 좋은 사람들도 많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나쁠 가능성보다는 좋거나 최소한 타인의 눈치 때문에 좋은 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인간 혐오증까지 걸릴 필요는 없다. 혹시나 걸렸더라도 그건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 너무 커서 그렇다는 점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해해도 최소한 사람에 대한 믿음은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더해서 우리가 선에게 너무 과도한 정당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왜 선은 언제나 단 한 점의 티끌도 없이 맑은 상태에서 이겨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영화 속에서 악을 압도적인 힘으로 두들겨 패는 범죄도시 속 마동석의 모습엔 그렇게 열광하고 있다. 결국 선을 원하는 사람들은 악을 오직 월등한 실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영웅의 출현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선이 어떤 이유로든 반칙을 했을 때 그것을 가장 누구보다도 먼저 큰소리로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악임을 우리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선은 왜 언제나 방법의 정당성을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뭐,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별 상관이 없다. 단지 이 세상에 왜 이토록 악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심화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