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매드니스티어 라이브' 개발기
이렇게 해서 지난 일 년간 있었던 두놈게임즈의 매드니스티어 라이브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잘했던 일, 못했던 일 등을 정리해보고,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항해일지를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1. 게임 플레이 우선 주의
내가 게임 제작에 대해 고집하는 꼰대 짓 중 하나가 바로 이 '게임 플레이 우선 주의'다. 게임 플레이만 끝내주게 만들 수 있다면 게임의 인기는 알아서 따라오게 돼있다는 것, 컨텐츠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컨텐츠 그 자체라는 믿음 말이다.
솔직히 아직도 그렇게 믿는 편이지만, 이 여정을 진행하며 생각이 바뀐 부분이라면 게임이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끔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게임 플레이의 매력도 전달할 기회가 온다는 것이었다. 게임을 재미있어 보이도록 잘 꾸며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작업 말이다(그래픽 컨셉이나 UI의 퀄리티, 게임 연출, 플레이 영상, 스토어 이미지 배치 등). 게임 플레이 그 자체는 이 단계를 통과해야만 평가받을 수 있는 요소였다.
요즘 같이 경쟁이 극심하고 다양한 게임이 출시되는 환경에서는 2명이 만들었건, 200명이 만들었건, 또는 인디 정신을 가지고 있건 그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어떤 게임이던지 간에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요구받는다. 적은 규모 치고 잘 만들었군요라고 반응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외적인 모습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매드니스티어 라이브를 예쁘지만 특색이 없는 그래픽이라고 평가하는데, 이런 방향성으로는 마케팅 자원이 거의 없는 인디 개발자가 어필 포인트 하나를 버리고 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2. 게임의 어중간한 포지셔닝
시작은 작고 가벼운 게임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외부적인 이벤트를 겪으면서 게임이 가야 할 방향성을 바꾸게 되었다.
첫 번째 요인으로 퍼블리셔 미팅을 들 수가 있는데, 우리 스스로 소규모 인디 게임이라고 포지셔닝을 한들 회사의 기준에서는 매출을 발생시켜야 할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매출 구조를 아주 중요하게 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매출 구조라는 것이 작고 가벼운 게임에서는 잘 나오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퍼블리셔 미팅을 몇 번 진행하다 보니 생각의 방향이 나도 모르게 점점 퍼블리셔가 원하는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한 구조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고, 매출이 나오기 좋은 구조로 만들어냈냐면 그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매출 구조가 변경되면 자연스럽게 게임 자체도 그 컨셉에 맞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로비를 구성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게임 플레이까지. 특히 앞서 잠깐 언급한 로비 3개월 작업 기간은 이런 영향에 의해 추가된 일정이자 변경 사항이었다.
이런 몇 가지 이유들이 합쳐져 '똥 쌀 때 한 두 판 해주세요'의 포지셔닝에서 '우리 게임을 메인으로 해주세요'의 전략으로 옮겨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2명이 게임을 만드는 아주 작은 게임 개발 스튜디오 주제에 거대한 규모의 회사랑 붙어보자는 식의 태세 전환이었을 테니,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의 게임이 어디에도 어필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다고 생각한다.
3. 게임은 결국 경험 디자인
이번 작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을 한 줄로 정의해보라면, ‘게임은 결국 경험의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시작은 신선했다고 생각한 방송 컨셉은 결국 보조적 수준에 그치고 말았고, 그냥 레이싱 게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수준의 게임이 되고 말았다. 정서적으로 내가 진짜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만한 장치를 더 많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일차원적인 수준에서의 작업만 하게 된 것이 아쉽다.
퍼블리싱을 위해 만나는 회사마다 꼭 물어봤던 질문이 있었는데 '이거 진짜 방송이 되는 건가요?'라는 부분이었다. 당연히 그건 안된다 선에서 흘려듣고 말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짜 방송이 되는 것은 여건상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진짜 방송이 되는 것처럼 느끼게'할 수 있는 장치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약했다. 이번에는 많이 약했고 잘 몰랐었다고 인정한다.
4. 소극적이었던 마케팅
사실 마케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시점은 몇 번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디 게임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탔다거나, 언론사 인터뷰를 한 경우에는 이것을 소재로 작은 관심이나마 일으켰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적극적으로 알리기는커녕 알아서 알아봐 주겠거니 생각하고 게으름을 부렸었다.
5. 모든 게 처음일 때는 외부의 도움을 받자.
매드니스티어 라이브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리스팅 해보자면 끝도 없을 정도로 많다. 유니티 엔진 상에서 3D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던 일부터, 첫 모바일 플랫폼 게임이라는 점, 각각의 모바일 스토어를 처음 이용해본다는 점은 물론이고 마케팅을 하는 시점에서는 모든 활동이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의 작업이었다.
맞닥뜨리는 상황마다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르면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혼자의 힘으로 해내려 했던 자세는 용기라고 말하기 이전에 효율적이지 못한 고지식한 자세였다. 먼저 전체를 빨리 경험하고 그 다음에 세부적인 경험치를 쌓아나가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1. 게임을 완성한 것
나는 기본적으로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일을 마무리까지 지었다면, 완성한 그 행위 자체를 인정하는 편이다. 특히나 게임은 속성상 마무리 짓기가 정말로 어려운 축에 속하기에 더욱 그렇다.
예전에 게임 프로그래밍 외주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외주를 줬던 회사 대표가 해줬던 기억에 남는 말 하나가 있다. 미술 전공 출신인 그가 그림 습작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이 그림은 망하였다고 느끼거나 더 진행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온다고 했다. 그래도 그 시점에 포기하고 돌아서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짓기만 하면, 그 자체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었다. 연습을 하는 양도 중요하지만 하던 연습 자체를 잘 매듭짓고서 다음 연습으로 넘어가는 습관이 굉장히 중요함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마인드는 내 개발 철학의 한 축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개발 철학에 따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마무리를 하고 결과를 본 것. 그 자체로 스스로에게 박수받아 마땅하다.
2. 수상
여러 작품들이 경쟁하는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게임이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게다가 대상이자 장관상이니 이 부분은 아주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게임을 만들면서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예상조차 안될 만큼의 행운이었다.
게임이라는 매체의 속성을 생각하자면 흥행이라는 요소는 성공, 실패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 기준에서 성공, 실패를 판단해보자면 억울하지만 실패한 것이 맞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자세한 수치는 별도의 글을 통해 정리해서 이야기할 계획이지만 다운로드 수만 놓고 보자면 3개월간 2만 5천. 흥행 스코어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길었던 여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 것이 있었는가라는 관점에 놓고 보자면 대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 배움과 성장이라는 것이 그저 지난번에 비해 조금 더 앞선 상태에서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좀 더 먼저 출발한 만큼 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낄만한 여유와 기회를 얻었다고 본다.
물론 앞으로도 우리는 흥행면에서 또다시 실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도전하는 과정에 운 좋게 약간의 성과라도 이룰 수 있다면, 그 성과는 그때 마침 잘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의 실패와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것들이 준 선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했지만, 아직 실패하지는 않았다.
1. 사업은 전문가에게
감사하게도 퍼블리싱을 원하는 회사들이 공개 시점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편이다. 지나간 기회는 나의 업보라 생각하고 그 이후에 온 제안에 대해서 웬만하면 수용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몇 군데 미팅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이제는 개발에만 집중하는 환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었다.
2. 바운더리를 검증하는 일, 하한선 그리기
우리는 매드니스티어 라이브를 통해 둘이서 할 수 있는 게임 규모의 상한선을 그었다. 이 이상의 규모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한선을 그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게임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임무다. 그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적당히 재밌는 요소 몇 가지를 합쳐서 재미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게임의 볼륨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딱 하나의 재미 요소만을 가지고서 매력적인 재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검증해봐야 한다. 그게 바로 지금 하고 있는 하한선 그리기 작업이다.
3. 성사되지 않으면 취업의 문이 활짝, 지원 사업
대상을 타던 날, 모 회사의 대표님으로부터 명함을 한 장 받았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테니 한번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게임에 대한 몇 가지 피드백을 듣는 도중 국가 지원사업이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야생에서 초보였었는지 이런 지원 사업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존재조차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강재봉과 게임이 잘 안되면 여기라도 지원해서 다음의 기회를 모색해보자고 결정했었다. 그리고 게임은 잘 안되었고, 다음의 기회를 모색하게 되었다.
정부 지원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아이디어 중 괜찮은 것들을 꺼내서 정리를 했다. 기획안을 만들어 놓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장르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게다가 나의 기획적 역량을 한 단계 점프시킬 수 있는 도전거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빨리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기대는 핑크빛이나 현실적으로 경쟁은 극심하고, 될 확률은 보장받을 수도 없는 이 사업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결정되지 않을까 한다. 두놈게임즈의 항해 일지가 계속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2016년의 삶은 매드니스티어 라이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매드니스티어 라이브는 내 정체성 그 자체다. 게임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왔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던지 개인적으로 후회는 하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자부할 만큼 다 쏟아부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한 나는 계속해서 게임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게임만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서 오늘도 실패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회가 있는 한 즐기면서 열심히 해나갈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게임 개발자들에게 존경과 파이팅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