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가리로 탑텐 홀리데이 파크
통가리로 홀리데이 탑텐 화장실 문에 붙어있던,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의 초대 Welcome to a whole new world of difference, 내게 뉴질랜드는 이랬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상황은 꽤 심각했던 것 같다. 나는 기억도 못하는 일들을 큰 애는 생생히 얘기해 주는데, 내가 큰 애에게 화를 내며 밀어서 큰 애가 자전거에 부딪쳐 넘어져 눈 가에 상처를 입었다거나, 내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혼을 내고, 또 티비를 못 보게 했는데 몰래 보다가 엘리베이터 올라오는 소리에 끄고 방으로 들어갔으나 티비가 화끈거리는 걸 확인하곤 내가 매를 들고 때렸다는 것 등인데, 나는 정말 나를 위한 방어 기제가 강력히 작동했던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고3 성적이 기억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지도 모른다. 그저 큰 애에게 그 때의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하곤 한다.
사실, 뉴질랜드 와서 첫 해는 나도 이러저러한 과외로 농구나, 미술 등을 시켜봤었는데, 다음 해 부터는 아무것도 안시키고 하교 후 집에서 같이 있었다. 동네 도서관에 같이 가고, 어학원 인턴 하면서 다녔던 주말 여행에 거의 매 주 같이 데리고 다녔다. 한국에서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아이들을 돌렸던데 대한 속죄하는 마음이었달까. 그러나 그 땐 또, 나는 얼마 안보낸다 생각했었고, 비싼 영어 학원도 못보내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심했었는데, 여기선 그저 학교만 잘 다녀와도 고마웠다.
한국 중이를 시작할 나이에 여기선 컬리지 첫학년인 9학년을 시작한 큰 애. 얼마나 힘들었을지. 당시 한국 친구들 카톡이 하루에 삼천개였다던데, 여기선 ‘어, 저기 우리학교 사람들이네’ 라고 말해 듣는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형이나 누나로 차마 못부르는 귀속감 결여 상태.
그러다, 이솔(ESOL: 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을 위한 영어 수업) 반 시험 답지에 그림을 그려내곤 미술반에 추천되어 학교 미술반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림 있는 답지를 보고 미술반에 추천하는 선생님이라니. 학기 중간이라 못들어갔을 미술반을 선생님 추천으로 들어가더니, 여기 미술 선생님들은 다 지역 화가라며 놀라던 큰 애.
그런데 큰애 학부모 상담을 가면 선생님들이 늘 대학을 왜 가려하냐고 물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 자신도 고등학교 졸업 후 한참 일하다가 다시 대학교 가서 교사가 되었다고. 그러나 그런 선택 자체도 영주권이 있어야 가능한 거라 유학생 입장이었던 그 당시는 또 다른 부분이었고.
어쨋든 큰 애는 고등학교에서 현직 쉐프의 호스피탤러티 시간에 큰 성취감을 얻으며 크레딧을 많이 따더니 요리로 진로를 굳혔다. 미술반에서는 그림 잘그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자신감이 더 떨어졌었다고.
사실 뉴질랜드에 기러기로 오면서 큰 애 진로로 미술이나 요리를 생각했었고, 수도 웰링턴에 르꼬르동 블루도 있어 여차하면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선택은 늘 실리 쪽이었다. 내 워크비자로는 공립 고등학교까지의 무상교육 밖에 지원이 안되기에 큰 애를 일년 더 고등학교에 다니도록 학교에 부탁해서 그리했었고(그 때는 그 사이 영주권 문제가 해결될 줄 믿고) 그 후로 비지터 비자, 어학원 학생비자로 있다가 딱 한 한기 요리학교를 유학생으로 다녔다. 참 덩달아 고생 많았던 큰 애.
영주권 받고는 학교로 안돌아가고 바로 다이닝 레스토랑에 쉐프로 취업했으니, 한 학기 요리학교 경력과 영주권이 아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느낌.
어쩌면 전혀 다른 세상으로의 초대는 나 보다 큰 애에게 더 그 손을 크게 내민게 아닐까 싶다. 그동안은 내가 초대 받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2022. 4. 10. 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이강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