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모 Mar 26. 2020

브라질인들이 음악 유산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방법

브라질 피아노 학회(IPB)

오늘은 브라질 피아노 학회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포어로는 Instituto Piano Brasileiro, 줄여서 IPB이다. 브라질인 피아니스트 알레샨드리 지아스(Alexandre Dias)가 만든 비영리 음악 단체이다. 나는 쌈바를 좋아해서 쌈바를 찾아 듣던 중에,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인도로 만나게 되었다. 아래 소개 영상을 보자.



Instituto Piano Brasileiro

IPB(이뻬베), 브라질 피아노 학회


단체는 2015년에 설립되었다. 주목적은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피아노 작품을 기념하고 기억하려는 것으로, 악보와 음원을 디지털화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남기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웹사이트유튜브 채널의 형태로 시작하여 현재는 브라질리아에서 방문할 수 있는 형태의 전시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는 일주일에 2~3회 영상이 올라오는데, 전부 브라질 작곡가들이 쓴 작품들을 브라질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형태이다.


구독자 수는 1만 명을 조금 넘는다.


알레샨드리 씨는 과거에 만들어진 브라질의 훌륭한 피아노 작품들이 그대로 잊히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고민하던 중에 IPB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목적에 감동한 브라질인들이 집안 서랍장, 학교 도서관 등에 잠자고 있던 잊힌 악보들을 찾아 제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IPB에서는 그 악보들을 받아서 IPB 웹사이트에 아카이빙을 하고, 적당한 연주자를 물색하여 그 악보에 대한 초연 녹음을 유튜브 영상으로 제공한다. 한 곡 들어보시라.


브라질리언 탱고(땅고)는 처음이지? Ernesto Nazareth - Brejeiro


정말 재미있는 것은, IPB에서는 모든 자료에 대해서 음악사학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악보는 물론이고 CD, LP 등을 모아서 디스코그래피를 완성하려 한다. (그리고 음원을 유튜브로 제공한다! - Playlist : Discos raros de pianistas brasileiros - 고전 음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곡가가 직접 연주한 희귀 음원도 올린다.  Ernesto Nazareth - Odeon (Tango Brasileiro, Op.146)


디스코그래피 작성의 의미는, 피아니스트들이 어떤 음반을 녹음했고 그들이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를 기억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앞선 세대에 존경을 표현하고 뒤따르는 세대를 격려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스크 카탈로그. 보이는 두 음반 모두 LP 녹음이다. 하단의 "Ouça aqui"를 누르면 유튜브로 연결되어 들어볼 수 있다.


또한 IPB에서는 피아니스트들이 썼던 1800 ~ 1900년대의 편지, 피아니스트들의 사진, 공연 포스터, 당대의 피아노 관련 자료 등 어떤 형태의 기록물이라도 받아들여서 디지털 자료로 변환시켜 '궁극의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진정한 연구자, 아니면 '덕후'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집 정신이 느껴진다. 자료 양은 아직 적을지라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음악적 사료를 꾸준히 모아서 하나의 역사 자료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뛰어난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나 같은 외국인도 브라질 피아노 음악이 어떻고, 그 악보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쉽게 인터넷으로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피아노 학회 아니랄까봐, 피아노 관련 타임라인도 가지고 있다. 좌측 단에는 해당 연도 브라질에서 일어난 피아노 관련 사건을, 우측 단에는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2018년이 클로드 드뷔시 서거 100주년이었구나.




그럼 이쯤에서 궁금해질 것이다. 한국 근현대 작곡가들이 출판했던, 혹은 지금도 출판하고 있는 작품들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작곡가들의 이야기, 연주자들의 이야기는 어떤 형태의 기록으로 남아 있을까? 잠깐의 조사를 해 보았지만 명쾌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다만 아래의 두 단체에서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단법인 한국작곡가협회 (Korean Composers Association), 줄여서 코코아(KOCOA)라고도 부르는 곳이 현재 가장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정보가 있으신 분께서는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이 단체 역시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공모전 등을 통해 수상한 악보들을 직접 출판하기도 하는 단체이다.

이의진 (LEE Euijin) – “Encore avec...” pour Violon, Clarinette et Piano


또 다른 곳은 사단법인 한국여성작곡가회가 있다. 이 단체도 정기연주회 영상을 아카이빙하고 있으나, 하나의 채널에서 통합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 작곡가회 회원들의 악보 카탈로그도 올라와 있는데, 2007년 이후로는 추가되고 있지 않는 듯하다.

박영란 - Flute, Oboe, Viola, Piano를 위한 겸재정선

곡 주제는 겸재 정선인데 연주자들은 전부 외국인이다. 재미있네!


아주 가볍게 찾았을 때에는 이 정도이다. IPB랑 놓고 일차원적으로만 비교했을 때에는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어째, IPB가 한국 음악사 연구에 참고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브라질이 음악적으로 선진국은 아니지만, 아카이빙만큼은 한국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피아니스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이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전국에 흩어져 있을 한국의 근현대 악보들을 모아서 연주하고 온라인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다. 정말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 음악을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서, 한국 음악이 이런 음악이라고 국민들에게 먼저 알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클래식 음대생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또모가 재밌습니다)이 인기인 것을 보면, 청년들이 참여해서 작업을 할 경우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승산이 있을 법하지 않을까.



다시 IPB로 돌아와서, 콘텐츠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앞서 언급한 사진 모음이다. 50년 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사진(2020)'을 모아보는 홈페이지가 생겨서찾아보게 된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피아노에 관한 서적을 입수하면 보유 목록을 제공한다. 일부는 PDF로 제공하기도 한다. 피아노에 관한 서적이 이렇게 많구나, 처음 알게 된다. 한국에도 찾아보면 이렇게 많이 있을까?


콘텐츠는 여기까지이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기관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가? 크라우드 펀딩, 도네이션을 받는다. 브라질 국내에서는 206명, 외국인도 31명이나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이런 작은 움직임에도 사람들이 기부를 한다는 것이 놀랍다. 내가 피아니스트였고 브라질 음악의 매력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 후원했을지도 모른다. 정기 후원을 하게 되면 IPB 홈페이지에 후원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으니,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후원을 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린다.


브라질(좌), 외국(우) 대상 도네이션 페이지 캡쳐





나는 이런 사람이라서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냥 끝내기 아쉬우니까 잠깐 근황 토크를 할까? COVID-19로 외출이 어렵다. 만약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 할 수 있는 건전한 취미를 찾아내야 한다. (답답하니까?) 할 수만 있다면 집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새는 디지털 피아노의 품질이 좋아 소음 걱정 없이도 만족스러운 연주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90년대생이라면 대부분 살면서 한 번쯤은 피아노 학원에 들어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고 하는 영화 덕택에 피아노 잘 치는 남녀가 인기를 얻기도 했고, 장기자랑 시간이면 피아노 잘 치는 친구가 한 명씩은 꼭 나와서 연주를 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면 이제 집에서 피아노를 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궁금해서 '격리-피아노-달고나 커피'로 최근 90일 동안 대한민국에서의 구글 트렌드 검색을 해 보았다.

띠용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피아노에 대한 관심도는 오히려 코로나 사태로 급감하였다. 주변에 보면 한국인들이 피아노를 열심히 치긴 하는 것 같은데, 그들이 열정이 단순히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음악적인 관심을 넘어서 문화적, 역사적 차원의 관심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인 것 같다.





진짜 마지막으로, 브라질인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온 네우송 프레이리(Nelson Freire)IPB가 주관한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연주한 피아노 곡을 듣고 가자.(넬슨/넬손 프레이레 아니다. 네우송 프레이리가 맞다.) 프란츠 리스트의 3대 제자뻘이며, 도이치 그라모폰과 데카 등 유명한 레이블에서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반을 냈던 네우송. 마르따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와의 협연으로도 유명한 피아니스트. 그의 유명세에 비해 그가 브라질인이라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2019년 1월에 있었던 이 연주회에서는 대중적인 클래식 레퍼토리와 브라질 작곡가들의 곡이 반반 정도의 비율로 연주되었다. 반응은 상당히 괜찮았던 모양이다. 브라질에서 클래식 공연이 더 많이 활성화되고, 한국의 뛰어난 연주자들이 브라질로 공연을 가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2016년 꾸리치바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님의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좋았다.)

Heitor Villa-Lobos - A lenda do caboclo, W166, 188

한편 브라질과 한국을 피아노로 잇고 있는 사람도 있다. 중앙대학교 김레다(Leda Kim) 교수님이 브라질 출신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음악 잘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세계로 많이 나가기를 기원한다.



글 표지: IPB 영상 "Entrevista nº 9 | Nelson Freire | Canal IPB" 썸네일

작가의 이전글 삶에서 돈을 대하는 자세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