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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Newyorker Sep 12. 2020

디지털 수필과 부케(부케릭터) 전쟁

'나'와 '너'의 대척점에서 찾은 '우리' 

수필의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문학 작품 가운데 가장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면서도 동시에 천대(?) 받았던 수필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에세이 또는 작은 글 정도로 여겨진 수필은 글을 전문으로 쓰지 않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라는 점에서 항상 사랑받아 왔다. 

수필은 아마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순간순간마다 이름을 달리해 존재했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할 때에는 일기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었고, 사건에 집중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중심이 되면 소설이 되기도 했다. 물론 소설과는 달리 수필은 글쓴이의 작은 일화 속에서 얻어지는 감동을 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사실에 기반을 둔다 할 수 있다. 

코로나 19가 터진 올해 초, 아마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의 대상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영상물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늘, 누군가와의 소통을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요즘 대세라는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를 끌고 있는 게임 채널이나 일반인들의 랜선 생활은 이러한 수필이 디지털화되어 가면서 변모한 게 아닐까? 우리는 여전히 그 안에서도 누군가와의 끊임없는 감정 나눔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도 코로나 19 이후 글을 쓰고 남기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물론 본업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내 의견을 전하는 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러한 나눔의 시간의 증가는 수필이 다시금 우리의 중요한 문학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날로그 방식이든지 디지털 방식을 택했든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디지털 수필가들은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남긴다. 기존의 수필가들이 자신들의 문장력을 바탕으로 삶의 한 바탕에서 느끼는 깨달음을 공유했다면 디지털 수필가들은 브이로그를 통해 자신의 일상 그 자체를 공유하기도 하고, 특정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보이는 특별함에 매료되어 또 그들의 디지털 수필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특별함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누리는 일상의 평범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식의 흐름으로 넘어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지 아직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이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 하나하나가 어느 순간에 인연으로 다가서게 될지, 그리고 지금 그 시간에 당신이 지나간 길은 그 누구도 지나 가본 적이 없는 온전히 당신만의 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지금 미국 땅에 앉아 있으면서 한국에서 게임을 하는 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내 일상인 것 마냥 향유하고 있고, 누군가의 뉴욕 브이로그에 비치는 모습을 보고 생활의 치열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물론 자극을 위한 디지털 수필도 여러 편 존재하니 그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디지털 수필을 향유하는 우리 모두가 온전히 각자가 특수하고 온전한 1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다면 "나는 왜 그들과 같은 일상을 살지 못하나?"라는 한탄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인간이 비정형성의 세계인 디지털 세계에서의 자아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부캐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나 스스로가 과연 부케인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부케가 혹시 본캐인지 헛갈리는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 자아의 근본을 잃게 만들고 있다. 

물론 스스로 자아라고 여기는 코어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자는 세상에 없다. 오히려 자신이 여기고 있는 다양한 부케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가장 오랫동안 많은 시간을 점유하고 나를 대표해 왔는지 밝힐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바로 그 캐릭터가 바로 나를 대표하는 본캐가 된다.  


이제 다시 한번 나의 일상을 뒤돌아 본다. 사회학적으로 사회적 지위라고 불리었던 모든 것들이 부캐가 되어 있는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와의 비교 또는 대치는 절대 무의미하다. 우리는 온전히 각자의 인생이 가장 위대한 마스터 피스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을 때 이 모든 부캐 전쟁과 디지털 수필의 홍수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기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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