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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루터란아워 Apr 04. 2020

14. ‘취준생’이 교회 봉사를 맡기까지

신촌성결교회에서 셀 리더를 맡은 김이삭 씨

20/02/26 신촌의 한 카페에서. 그는 시골에서 자랐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교회 봉사의 의미를 회상했다.




어렸을 때는 전남 여수에서

아빠가 하시던 교회에 다녔어요


시골이죠. 논이랑 밭도 있고. 작은 교회였어요. 30명 안팎에 할머니, 할아버지 계셨던 교회. 한적하고 좋았는데 또래가 없어서 살짝 아쉬웠어요. 대학 와서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친구들이 중고등부 캠프에 갔었던 이야기를 했었는데 저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으니까 좀 아쉬웠죠.


교회에는 어른 예배밖에 없었고 마을에서 같이 살던 분들이 교회에 나오셨어요. 저는 그때 숫기가 없었고 교회 사람들이 다 어르신들이다 보니까 교회에서 예배만 드렸고요. 아빠가 그 교회에 온 뒤로, 교회 마당에 컨테이너를 두 개 붙여서 교회 식당을 운영했어요. 예배 끝나고 같이 밥도 먹고 자연스레 찬양 예배도 하고. 아빠가 작은 교회에서 활동을 하나씩 추가하셨던 것 같아요.



대학교 때도 습관으로 다녔어요


그때는 아직 예배의 의미를 몰랐던 것 같아요. 모태신앙들은 아무 이유 없이 교회에 당연히 가잖아요. 그렇게 대학교에서도 교회를 다녔죠. 제가 대학교 때, 자취를 위해 방을 찾다가 교회 기숙사를 발견했어요. 3층짜리 건물인데 1층은 교회이고 2층이랑 3층은 기숙사였던 건물이요. 그 교회에서 방을 올려둔 것을 아빠가 보고 괜찮다 싶어서 거기서 살았어요.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제가 다니는 대학의 기독교 동아리도 관리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방 계약서를 쓰면서 기독교 동아리 가입서도 같이 썼죠.


그런데 제가 2학년 때, 군대를 갔다 와서 보니까 동아리에 사람이 확 줄어있었어요. 1학년 때 ‘으쌰으쌰’ 했던 형, 누나들이 다 졸업한 거죠. 그런 것도 있었어요. 요즘은 또 개인의 시간이 존중받아야 하고 침범받는 것을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동아리 활동이 축소되었죠. 그리고 동아리 회장을 맡았어요.


대학교 기독학생연합회에서 활동도 했어요. 한 학기 회장을 맡았죠. 학교가 원래 비기독교여서 없는 채플을 한 달에 한 번씩 세우자고 기독교 동아리들끼리 모였어요. 그리고 강의실 하나 빌려서 학교에서 예배드렸어요.


제가 회장을 하기 직전의 형은 정말 잘했어요. 기획을 정말 잘해서 전단지도 만들고 홍보도 잘하고. 매달 채플도 CCC(대학 선교단체)랑 같이해서 채플 참석 인원도 엄청 늘고 CCM 가수도 섭외하고 엄청났죠. 그 뒤로 바로 제가 했었는데 엄청 부담이었어요. 솔직히 주도적으로 못 했어요. 책임감 때문에 회장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시작했을 때, 채플에 사람이 엄청 줄었어요. 3월에 개강할 때, “하나님 제가 채플에 저 혼자밖에 없어도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는데 막상 사람이 정말 준 것을 보니까 마음이 흔들거리더라고요. 앞에만 사람이 앉아있고 그러니까.


그러다 동생이 다니는 대학교 채플에 가봤어요. 채플장이 멋있는 거예요. 우리는 일일이 악기 설치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여기는 이미 다 장비들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되게 부러웠죠. 그런데 채플을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들어야 해서 학생들이 채플을 잘 안 듣는다는 이야기에 제 생각이 달라졌어요. 캠퍼스 채플에 대한 의미가 직접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우리는 적은 인원이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온 거잖아요. 그때, 작은 인원이 귀하게 느껴졌죠.



나를 발견하고

나의 공동체 발견하기까지


제가 그때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학 시기에 내가 대학을 온 건가 교회에 온 건가. 대학교 1학년 때는 너무 버거웠어요. 일도 많고 예배도 많고 볼일도 많아서 지쳐 살았죠. 되게 벅찼어요. 내 생활이랑 안 맞는 것 같고 동아리 활동을 그만하고 싶었어요. 어린 마음이었지만 목사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죠. 지금 생각해보면 마지못해 나갔던 것 같아요.


보통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 만난 기점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때는 그런 게 아예 없었던 때였거든요. 예배를 의미 없이 갔어요. 피곤했죠. 보통 교회에 가서 회복을 받고 돌아와야 하는데 저는 더 지쳐오고 그랬으니까. 주말마다 형 누나들이 좋아서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아요. 잘 챙겨주고 연락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친하게 지냈으니까.


그러다 졸업을 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아는 형을 통해 신촌성결교회에 갔어요. 갔는데 교회에 제자 훈련이 있었어요. 10주 동안 매주 토요일에 모여서 강의를 듣고 제자 훈련을 하는 활동이었거든요. 그때 한창 습관적으로 교회 다니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저희 셀 누나가 엄청 예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거든요.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제가 절실했던 것 같아요.


"누나는 뜨겁게 예배하고 그러는데

나는 교회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안 들고

그런데 나는 왜 교회에 오는 거지?"


그래서 제자훈련을 해보겠다고 전도사님한테 말씀드렸어요. 물론, 제자훈련을 한다고 모두 하나님 만나고 그러진 않아요. 그래도 저한테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의미를 찾아가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시작.


대학교 때, 소심한 성격이 엄청났어요. 그래서 저는 무리에 살짝 못 꼈어요. 자연스럽게 말도 적고. 그런 제 모습이 저는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남들 눈치를 심하게 봤거든요. 그런 자신을 제자 훈련 기간에 봤던 것 같아요. 자신을 돌보는 프로그램들이 제자훈련 기간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자훈련을 하면서 저를 돌이켜봤어요. 내 성향이 틀린 게 아니라 남들과 그냥 다른 거구나. 나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었구나. 그때부터 출발했던 것 같아요. 확 바뀐 게 아니라.


그리고 셀 리더를 권유받았어요. 초반에는 힘들다고 했죠. “나는 때가 아니다. 신앙적으로 내가 부족하다. 취업하고 돌아오겠다.” 전도사님한테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3번을 셀 리더 봉사로 전도사님과 이야기했는데, 전도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셀 리더 봉사는 셀 리더가 신앙적으로 잘나서 사람을 끌어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성장하는 자리라고. 그리고 너의 신앙생활을 계속 평탄하게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봉사를 하며 그 평탄함에 새로운 변화를 줄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전도사님이 말씀하셨어요.


“그 마지막 말에 제일 크게 흔들거렸죠.”


제가 교회에 안 나가거나 신앙적으로 엇나간 적이 없어요. 기복이 없어요. 그래서 모태신앙이니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죠. 하나님을 정말 밑바닥에서 만나서 뜨거워지고 교회에 나갔다는 경험들. 간증들을 들었을 때, 정말 궁금했죠. 자신이 깨지고 자신의 밑바닥에서 만난 하나님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지금처럼 ‘평탄한’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제가 소심하고 내향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고 말도 없고 그래요. 누군가 처음 만나면 궁금한 것들이 하나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말 걸어주는 게 신기하고 그래요. 셀 리더를 할 때, 말을 못 해서 셀 모임을 못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새롭게 교회에 온 셀원분들로 그런 걱정이 신기하게 사라졌어요. 제가 말을 안 해도 먼저 질문하고 먼저 다가오시는 분들이 온 거에요.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죠.


“주님께서 날 이렇게 채워주시는구나.

주님이 준비한 사람을 보내주셨구나.”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 보면 하나님 없이도 세상을 살아가잖아요. 세상의 일을 우연으로 그냥 그렇게 여기고 살아갈 수 있는데, 신앙은 그 우연을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내 삶을 조금 더 신앙적으로 되돌아보고. 봉사를 통해 이런 시선을 잡는 것 같아요.



봉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보통 예수님과 저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관계로 설명하잖아요. 셀 리더를 통해 내가 목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보다 어린 양들을 챙겨주면서 진짜 목자의 맘을 가늠해 보는 것 같아요. “셀원들 챙겨줄 때, 너무 좋고 기특하고 그러는데 예수님도 날 이렇게 바라보실까?” 간접적으로 아이들을 통해 제가 오히려 배우는 거죠.


우리 셀 4명이랑 길을 가다가 길이 좁아져서 제가 뒤로 살짝 빠졌어요. 뒤에서 우리 셀원들 바라보는데, 서로 친해져서 서로 웃고 장난치는 모습이 너무 좋은 거예요. 원래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교회를 통해 서로 관계를 형성한 거잖아요. 뿌듯하고 좋더라고요. 힘이 났죠.


이제는 교회에서 쉼을 얻어가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치이다가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힘을 얻고 설교를 내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요. 세상의 다른 가치관 속에서 넘어지고 그러지만, 다시 교회에서 충전되고.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 생활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커서 너무 좋았어요. 축하해주고 슬퍼해 주고 가족 같은 의미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절실히 느껴지는 것 같아요. 진짜 교회 활동에서 공동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해요. 공동체에서 서로의 신앙을 나누는 것들, 이게 제일 커요.



나의 2세에게

그리스도교를 설명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나를 이유 없이 무조건 사랑하잖아요. 언제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있든. 이런 분을 알아가는 것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설명해 줄 것 같아요. 항상 나의 편에 있잖아요. 무조건적인 사랑. 이런 엄청난 것과 세상을 동행하면서 살아갈 때 느끼는 평안? 언제든지 기도로 하나님을 찾을 때의 평안? 힘을 얻는 거죠. 내 생각을 단련하고 사랑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이런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취업을 준비하면서     


현재 취업 준비를 하고 있어요. 물론, 제가 지금 열심히 안 하고 있기는 한데. (웃음) 제 탓을 제쳐두고 지금 이 시기를 생각해봤어요. 신년부흥회에서 요셉의 설교를 들었는데, 요셉이 총리가 되기까지의 결과를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서 시련을 겪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요셉은 엄청 힘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그 감옥에 있는 기간도 요셉을 사용하셨잖아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요셉이 왕국의 감옥에 있는 동안 죄수들을 통해 이집트 왕국의 정세를 알아갔을 거라고. 지금 저도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데없는 그런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그래도 하나님이라면 이 상황을 쓰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이것을 통한 미래를 계획하지 않으셨을까. 이런 기대감으로 지금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어요.


[글/인터뷰] 김도헌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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