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케이팝] 3월 셋째 주

- 예지, 르세라핌, 아일릿

by 러트



언뇽하섭니까. 죽지도 않고 돌아온 케이팝 리뷰, 이번에는 범위를 대폭 감소한 주간 리뷰로 돌아왔다. 지난 주에 음악방송을 보다가 불현듯 ‘이 라인업을 리뷰하지 않으면 손해다’ 라는 판단이 들어 급하게 브런치를 켠 것이다. 이번 [주간 케이팝] 시리즈는 음악방송에서 비롯된 시리즈이니 만큼 이전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내가 쓰는 K-POP 상/하반기 결산] (이하 '내케결')과는 다른 기준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취향에 맞는 음악이라는 것은 다름이 없고, 그 외 안무 구성이나 아트워크, 그룹 정체성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다고 느낀 활동을 꼽아 볼 예정이다. 신작이 화수분같이 쏟아져 나오는 이 케이팝 씬에서 주 단위로 끊어서 리뷰하는 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예지 <AIR>



첫 티저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종의 실험실, 연구, 혹은 인간 병기라는 느낌까지 들게 했던 예지의 <AIR>는 릴리즈 전부터 높은 기대감을 심어 주었다. 동시에 노파심도 들었는데, 티저의 깔이 너무 좋게 뽑힌 나머지 기대치 이하의 결과물이 나오진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 감격스럽게도, 단순 노파심에 불과한 걱정이었다.

과감한 인상 착의에 화려한 CG를 등에 업고 마치 초능력자처럼 등장한 예지는 뮤직비디오의 절반 가량을 오로지 혼자만의 시퀀스로 채운다. 뮤직비디오 속의 공간, 컨셉 뿐만 아니라 이 노래 자체를 본인이 이끌어간다는 인상을 확실히 남긴다. 퍼포먼스 또한 그렇다. 안무 구성 하나하나가 강렬하면서 고독하고, 과감하다. 예지가 그리는 솔로의 정체성이 이토록 강인하고 독립적일 줄 몰랐다. SF 장르 특유의 차가운 무드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고독함이나 쓸쓸함을 강조하기 위함일까. 황예지라는 아티스트는 이런 것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가수였다.

수록곡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예지의 첫 솔로 앨범은 총 4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2번 트랙 <Invasion>은 <Air>의 연장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소 미니멀한 멜로디 구성을 가지고 있으나, 타이틀과 연이어 듣기에 이질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 3번 트랙 <Can’t Slow Me, No>가 한 방의 반전을 꾀한다. 마치 예지 혼자서 부르는 있지 노래 같다. 황예지가 있지를 삼킨 수준. 마지막 4번 트랙은 필자의 최애 곡인 <258>이다. <Air>가 아니었다면 이런 컨셉으로도 기획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여자아이돌 출신 솔로 가수의 정배 같은 느낌. 하지만, 역배라 아름다웠습니다.

확실히 1년 간 준비했다더니, 역시 퀄리티는 기간에서 비례하는 듯하다. 3개월에서 길어야 6개월이 보통인 퀵퀵 케이팝 씬에서 1년이나 준비한다는 것이 예삿일은 아니니까. 무엇 하나 과하지 않고 잘 어우러지는 것이, 이 정도면 솔로 가수 예지의 첫 빌딩으로 완벽하지 않나.




르세라핌 <Come over>



EASY - CRAZY - HOT 3부작의 마지막 앨범인 [HOT]의 수록곡이다. 타이틀인 <HOT>도 주목할 만한 시도라며 호평을 마구 얹고 싶지만, 본론부터 말하자면 <Come over> 이 노래가 진짜 미쳤다. 르세라핌에게서 이런 곡, 이런 안무, 이런 스타일링을 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타이틀도 아닌 커플링곡으로 말이다.

(트위터 케이팝 팬 기준) 장안의 화제라고도 할 수 있는 <Come over>는 1970년대 미드템포 펑크 스타일 밴드 정글이 작곡진에 참여해 노래만 들어도 20세기 후반의 미국 음악을 연상케 한다. 이를 기준점 삼아 스타일링과 안무 역시 비슷한 무드로 기획되어, 전체적으로 1980년대 미국의 레트로한 감성을 물씬 풍기고 있다.

대부분의 대중은 르세라핌에게 기존의 것을 요구한다. 케이팝스러운 것. 정형화 된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바란다. 하지만 르세라핌은 앞선 이미지의 탈피를 고수한 지 오래다. 이번 3부작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필자는 이 방향성을 매우 반갑게 여기는 중이다. 고착화 된 케이팝 시장에 자본을 등에 업고 매번 새로운 것을 가지고 오는 팀은 굉장히 드물다. 그 누가 들고 왔다 해도 똑같이 놀랐을 결과물을 르세라핌은 계속해서 가져 온다. 이번 <Come over>가 새로움이라는 키워드로 회자되고 있는 이유 또한 이같은 심정일 테다.

개인적인 감상을 몇 마디 더 얹어 보자면, 크게 기대하던 것이 없어 더 기함했다. 꾸준히 외치는 케이팝 다양성의 전방을 르세라핌이 이끌고 있다니. 이 팀의 이런 도전, 이런 시도를 SHOUTOUT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르세라핌의 과감한 시도가 계속되길. 그녀들의 FEARLESS한 행보가 끊이지 않길. 이 모든 개척이 이미 르세라핌의 정체성이다.




아일릿 <Almond Chocolate>



아일릿의 첫 일본 오리지널곡이자, 지난 한 주 간 한국어 번안 버전으로 활동한 곡이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한 영화 ‘얼굴만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의 주제곡으로, 올해 1월 14일 발표 되었으나 음악방송 기준으로 하여 3월 리뷰에 포함하게 되었다.

작년 한 해 간 아일릿에게 붙은 꼬리표가 몇 가지 있다. 그 중에는 당연히 라이브 논란도 있었고, 아일릿이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던 팀이라는 것도 알았다. 때문에 필자는 상당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음악방송을 틀었었는데, 이게 웬걸. 라이브의 퀄리티는 기본이고 2세대 케이팝의 향수까지 불러 일으키는 거다.

케이팝 깨나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시절 케이팝은 안정적인 라이브를 위해 난이도가 높지 않은 안무를 채택해 가창자의 보컬을 보장해 주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난도 높은 안무에 소화하기 힘든 라이브 보컬까지 요구하는 현 세대 케이팝을 보며 적지 않은 회의감을 느끼던 차에 아일릿이 ‘우리가 아는 그 맛’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미 많은 클립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확실히 <Almond Chochlate>이라는 무대는 브릿지와 3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클립을 보면 원희가 부르는 3단 고음을 강조하고 있으나, 본격적인 애드립 라인의 시작인 이로하와 민주 또한 만만치 않다. 저번 <Cherish> 활동의 커플링 곡인 <Tick-Tack>의 라이브를 보면서도 이로하의 보컬에 감탄한 기억이 있다. 이번 역시 안정적인 발성과 ‘꺾기’ 스킬로 제대로 된 라이브를 보장해 주더라. 안무 이동은 또 어떤가. 각 멤버들이 고음을 부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 우뚝 서 있는다거나,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는 모습은 아마 그 시절을 지나온 케이팝 팬이라면 한 번 쯤 봤을 법한 장면이다. 일본 오리지널 곡의 번안 버전으로 이렇게까지 케이팝 같을 수 있다니. 팀 아일릿을 이루는 기획력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감상이 든다.




이상 지난 한 주 동안 리뷰 하고 싶었던 케이팝 라인업이었다. 리뷰를 명목으로 한 번 더 짚고, 한 번 더 얘기하면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케이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근 케이팝은 상당히 혼란기이고, 과도기이다. 케이팝의 최우선 가치가 음악이 아니게 되면서 다양한 상품성을 조화롭게 쓰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활동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이런 황금같은 활동들이 맞물렸다는 것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에도 이러한 즐케(즐거운 케이팝이라는 뜻) 주간이 온다면 시리즈로 기고해 보도록 한다. 부디 이 글이 당신에게 사소한 변화라도 가져다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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