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기준에 대한 고찰
2008년에 출판되어 전 세계에 정의 붐을 일으킨 책이 있는데 바로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 견해는 최대한 배제하고,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서양 철학자들의 주장을 하나씩 검토하며, 과연 그때 그 견해는 지금 역시 유효한가?를 따져보는 책이다. 실제로 이 책을 한 권 다 읽어 보아도 저자의 개인 견해는 내내 등장하지 않다가 책의 끝부분에 살짝 등장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며 말이다. 마이클 샌델은 다양한 견해를 가져와서 옳고 그름을 논한다. 최대다수 최대행복에 입각한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질적 공리주의자 존 밀의 자유론, 보편적 도덕법칙을 주장한 칸트, 그리고 민주주의는 실패한 주의라 칭하며, 정의는 평등이다.라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뭐든 결론 내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처지에선 책을 읽고 나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것이 그때 결론 내리지 않는다. 다양한 예시를 비판적 자세로 다루었고, 그런 자세로 이 책을 읽은 너라면 너 스스로 정의에 대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완벽한 정의가 있을까? 어느 한 공동체가 주장하는 정의에 대한 개념은 그 상대를 다르게 적용해도 그것이 여전히 동일하게 그리고 일관되며 공평하게 정의롭게 적용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다크나이트는 기존의 배트맨이라는 히어로 영화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다룬다. 보통 히어로물이라 하면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악당이 등장하고, 그 악당을 응징하는 히어로가 등장하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있고, 그렇게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다크나이트 역시 그런 맥락을 동일하게 가져간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여기서 철학적 요소를 집어넣고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과연 모든 히어로는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크나이트에 등장하는 조커는 기본적으로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인물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변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은 제아무리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본능을 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화가 나도 서로 욕설을 하거나 심하면 멱살잡이를 할지라도, 단순히 화가 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앞의 모든 상대를 해하며 지나가진 않는다. 그건 엄연히 법의 완벽한 위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커는 그런 경계가 없다. 그래서 이런 조커를 응징(검거)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폭력이 가해지고, 그 폭력은 일반적인 범죄자를 소탕할 때 보다 더한 폭력이 가해진다는 거다. 그 과정에서 조커는(영화는) 배트맨에게(우리에게) 질문한다. "지금 네가 사용하는 폭력은 과연 선한 폭력인가? 아니면 너도 우리와 똑같은가?"라고 말이다. 배트맨은 정확히 이 부분에서 고뇌하였다. 그의 행위는 악을 응징하겠다는 선한 목표에서 출발했지만, 그 기준 역시 본인에게 적용되는 기준일뿐, 배트맨에게 합법적으로 응징의 자격이 부여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경찰을 피해 다니고, 경찰은 오히려 배트맨을 검거하기 위해 그의 행적을 찾기 바쁜 것이다.
악에 대한 심판은 과연 누가 하는 것인가? 보통은 국가가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을 두고 법의 심판이라 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비질란티즘에 물들어 직접 악을 응징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 행위의 과정에서 폭력이 동반되었다면 역시 법을 위반한 것이 되며, 사법부로서 그러한 개인은 범법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즉, 나에겐 한없이 정의로운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을 상대에게 적용시키면 악당 같은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이러한 논제를 두고 다양한 예시를 가져와 그것들을 다각도의 시각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여전히 모두에게 유효한 주장인지 살펴본다. 예를 들어 능력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사는 대다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과연 그 능력이란 개인의 피와 땀이 섞인 노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유전에 의한 요소인지 아니면 시대를 잘 태어나 누리는 하늘의 선물 같은 것인지 따져보는 행위 말이다. 이 책은 크게 3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 : 최대다수 최대행복
공리주의는 절대다수가 행복하면 소수가 피해를 당하여도 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엄연히 피해를 보아도 된다. 까진 아니다) 이 주장은 제러미 벤담의 주장으로서,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가정했을 시 길거리에 노숙자가 많으면 많은 사람들의 행복(공리)이 줄어드니까 그런 노숙자들을 한 곳에 모아서 구빈원이란 시설에 가둬두면 절대다수 최대행복이 실현된다는 식의 주장이다. 물론 이런 행위 때문에 길거리를 다니는 대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의 공리는 상승될 것이다. 하지만 여긴 큰 문제가 있는데 바로 노숙자들의 행복이다. 그들의 행복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이며, 감옥 같은 시설에 강제로 수감된 그들의 자유와 권리의 억압으로부터 오는 불행은 누가 책임 진단 말인가?
두 번째는 자유지상주의다.
자유지상주의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 테니 신경 끄고 갈 길 가쇼"이다. 이들은 모든 규정, 규제, 의무로부터 탈피되길 원한다. 역시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와중에 헬멧을 쓸지 안 쓸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내 자유에 의한 의지로써 이것을 별도로 규제하거나 규정하거나 의무화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내가 사고가 나더라도, 내 신체 역시 내 소유이기에 사고에 의한 골절, 심하게는 신체에 대한 특정 부위의 훼손이 따른다 하더라도 이것 역시 내 선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타인인 너희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 이들은 모든 소유는 곧 나의 허락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 역시 도적질에 해당하며, 내가 노동을 하여 벌어들인 임금에 대해선 1원도 국가가 가져갈 수 없다는 주의다. 하지만 자유주의 사상은 국가의 간섭과 개입을 최소화하므로 이 주의가 실현된 국가는 복지 차원의 서비스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운전자들에게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사상 국가에선 이러한 것도 자유 침해에 해당한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안전을 규정하고, 누가 국가적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하다못해 건강보험에 대한 혜택은 누가 해준단 말인가? 결론적으로 완벽한 개인주의가 도래한 세상에선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소위 말해 한 국가가 아나키즘 상태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철학 사상이다.
세 번째는 공동체주의다.
샌델은 공동체주의적 관점을 통해 정의를 해석한다. 이는 한 개인의 행복 또는 개인의 복지 극대화에 편입된 사상이 아닌, 공동체의 철학 및 목표에 초점을 두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주장한다. 흔히 말해 교회를 예로 들자면 교회라는 공동체의 최대 목적은 모두가 천국으로 가는 것, 그리고 그 길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전도)이다. 그렇기에 교회 내 공동체에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성경에 적힌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절제된 삶을 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 주의 역시 완벽한 정의 이론이 되지 못한다. 공동체 주의는 폐쇄성과 고립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배타적인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자유는 지극히 제한된다. 이러한 베타성은 소위 말해 "우리" vs "그들"이라는 대립 구조를 끊임없이 만들어 냄으로써 더욱 공동체의 우물을 깊게 파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동체 주의는 타인과 다른 다양성, 창의성이 억제되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사회적 문화적 발전이 늦어지는 또는 이루어지지 않는 단점이 존재한다. 특히 이런 공동체 주의는 특정 문화 및 특정 이념에 대한 가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기에, 상대적으로 개인의 인권이나 어떤 보편적 가치를 그만큼 소홀히 여기는 경향도 존재한다.
어떤 빈틈도 없는 완벽한, 그리고 유일한 단 하나의 법을 전 인류에게 적용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려고 전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긴 시간 동안 회의를 진행했지만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어떤 법을 제정해도 그 속엔 빈틈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서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