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메이킹의 성공 사례
올해 서울의 날씨는 그야말로 런던의 겨울 날씨와 같았다. 아침 출근길은 분명 화창했는데 강남역에 도착하니 폭우가 쏟아지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오죽하면 그냥 외출할 때 장우산을 항상 들고 다닐까 하는 고민까지 할 정도였다. 외출할 때 항상 우산을 챙긴다니, 대한민국의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런던의 날씨와 흡사해지는 순간이다. 영국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는데 바로 신사의 국가다. 그리고 영국 신사를 상징하는 아이템은 바로 우산이다. (버버리 코트와 실크헤트 모자도 덤으로) 그런데 영국은 어쩌다가 신사의 국가가 되었을까? 영국 남자들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신사가 맞을까?
우선 품질 하면 떠오르는 국가가 있는데 바로 독일과 일본이다. 자동차로 예를 들어서, 독일차 (벤츠, BMW, 아우디)는 전 세계 대표 브랜드이고, 일본차(도요타, 혼다, 렉서스 등)는 기본적으로 고장이 나지 않는 차로 유명하다. 정교한 기술력이 요구되는 카메라 또한 이 두 국가의 제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 독일의 라이카, 칼짜이즈, 롤라이 같은 카메라 브랜드가 있고 일본은 현재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캐논, 소니, 후지, 파나소닉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 두 국가는 대표적인 전범 국가들이다. 전쟁을 하면 양질의 군수 물자를 빠르게 찍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다 보니 이 두 국가는 그 무엇보다 품질을 살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고, 그 품질 제일주의 정신이 오늘 까지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영국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품격이다. 자동차로는 롤스로이스, 애스터마틴, 그리고 랜드로버와 재규어 (물론 영국차는 고장 잘 나기로 유명함)가 있고, 패션 브랜드로는 버버리 닥스 등의 영국 왕실 납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이 처럼 영국은 품격과 격식의 나라로 불리는 국가이다
우선 신사를 영어로 하면 Gentleman이다. 그리고 이 젠틀맨이라는 단어는 영국의 Gentry라는 계급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오래전 영국 사회에서 적당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재산도 있지만 그렇다고 귀족 혈통은 아닌 가문의 남자를 Gentry라고 불렀다. 이 젠트리 계급은 스스로 평민 취급받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귀족 계급에 속하는 건 또 아니었다. 심지어 Gentry 계급은 어느 정도 부만 소유하면 즉 벼락부자인 졸부들도 Gentry 계급에 편입이 가능할 정도였다. 눈치챘겠지만 Gentleman 이란 단어는 바로 이 Gentry 계급에서 유래가 되었다. 그래서 사실 젠틀맨이라 함은 사실 교양 있고, 여성에게 친절하고 깔끔한 옷차림에 매너도 좋은 남성들이 아니라 적당히 재산이 있는 중산층 계급이란 뜻인 거다. (물론 오늘날 젠틀맨의 의미는 전자가 맞다)
실제로 영국의 신사 이미지는 과대포장된 것이 사실이다. 영국은 식민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중국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민폐를 끼치기도 했고, 흑사병 때는 길거리에 사람들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나뒹굴던 시절도 있었다. 길에는 항상 무언가 썩고 부패하는 냄새로 가득했고, 오죽하면 영국 길거리의 똥오줌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이란 것이 만들어졌겠는가 말이다. 거기다 신사라는 단어의 유래도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메이지 유신 시대에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운동을 펼치던 일본은 영국 특유의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그들의 패션, 그들의 제스처 등에 매료되었고 일본인들은 그러한 영국의 Gentry 들을 향해 신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거기다 영국 특유의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영국인들은 항상 우산을 손에 들고 다녔고, 그런 모습이 생소한 일본인들은 하다못해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도 그저 신기하고 멋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신사는 "버버리 코트에 우산을 들고 다니며, 특유의 세련된 제스처를 하는 남자"로 인식이 되어 버린 거다.
흔히 영국 신사 하면 체스터필드 코트에 검은색 우산을 쓰고 있는 모습이 상징처럼 떠오른다. 영국은 해양성 기후 국가로서 보통 이렇게 섬 위에 떠 있는 국가들은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영국의 날씨는 여름은 온화하고, 겨울엔 비가 내리기로 유명한데 실제로 이런 기후 때문에 영국에선 해마다 겨울만 되면 우울증 환자가 30% 급증한다고 한다. 사실 영국인들조차도 우산 같은 건 거추장스러워서 딱히 들고 다니지 않았다고 핟나. 당시 여행가였던 조나스 한웨이가 우산이란 걸 들고 영국 시내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는데, 영국 사람들은 그런 조나스 핸웨이 모습을 보고 이상한 천을 펼치고 다닌다며 그게 우스꽝스럽다고 비웃곤 했었다. 또한 당시 영국은 주로 마차로 이동하며 다녔는데 특히나 비가 오면 우리가 급하게 택시를 잡듯이, 영국 사람들도 어딘가 이동을 할 땐 마차를 타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나스 핸웨이가 우산이란 걸 쓰고 비를 피하고 다니니까 마차를 끄는 마부들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다. (우산 때문에 생계 위협을 받을까 봐) 심지어 기록에 의하면 길에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그랬던 영국인들이 어느 순가 멀끔한 정장 차림에 우산을 들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고 하니.. 참 겉으로 포장을 잘 한 국가 중 하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결론은, 아무리 봐도 신사는 그냥 사정상 우산을 들고 다녔던 영국인들과 또 그 모습을 동경해 거기에 상상의 나래를 덧붙이던 동양인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