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으로 현재 이태리 피렌체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위 그림은 조개에서 탄생한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바람을 타고 해안에서 육지로 도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왼쪽의 두 명의 인물이 입으로 바람을 불고 있고, 오른쪽 여인은 황급히 비너스에게 옷감을 덮어 주는 모습이다.
위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중세 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중세 시대는 모든 것이 신 중심 사회였다. 이때의 유럽인들은 모든 영광은 오직 신(하나님)에게 돌려져야 했으며,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여러 가지 요소 외에 인간이 무언가 덜하거나 더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예를 들면 중세 시대는 맛을 탐닉할 수 없었다. 이는 음욕과 동일한 죄로 인간은 그저 주린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됐을 뿐, 미각(맛)을 탐하기 위해 음식에 불필요한 조리를 해선 안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프랑스 왕들조차 맛있는 음식을 먹기보단 그저 많이 먹는데 초점을 뒀으며, 오죽하면 '대식가가 아니면 왕 노릇도 못한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맛에 대해 철저히 금욕적인 생활을 하던 시절이 바로 중세 시대였다. 당연히 여성에 대한 노출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또한 미술품이나 작품엔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또는 하늘의 천사들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했으며 인간을 중심으로 그려진 미술품 및 기타 작품들에 대해선 마녀가 지은 작품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거나 폐기되거나 심지어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엄격하게 모든 중심이 신에 대한 경배로 이루어진 중세 시대엔 그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했는데, 바로 1계급이라 칭하는 성직자들 사이에서 돈을 받고 죄 사함을 해주는 이른바 면죄권 판매가 공공연하게 이뤄진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가 씻겨 나갔다고 믿었으며,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없던 평민 계급은 면죄권을 사는 것도 힘든 지경이었다. 이런 제도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종교의 개혁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실제로 1517년 비텐베르크의 마르틴 루터라는 교수에 의해 종교는 전면적으로 개혁이 이뤄지게 된다. 재탄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는 그동안 신 중심 사회로 모든 것이 돌아가던 우리 세계관을 다시 인간 중심 사상으로 돌려놓자는 운동이다. 그동안 모든 작품에 예수 그리스도 또는 성모 마리아가 존재했다면, 이제 이런 인물들 대신 인간의 육체, 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삼아보자.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비너스의 탄생이 완성되었다. 위 그림은 어디에도 신적인 요소가 없다. (물론 비너스는 사랑의 여신 이긴 하지만) 또한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육체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이 그림은 아래 그림과 연관 지을 수도 있는데,
위 그림은 그리스도의 세례(The Baptism of Christ)라는 그림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1475년 완성한 작품이다. 가만 보면 위 그림은 상단에 위치한 비너스의 탄생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우선 왼쪽에 두 명의 인물이 배치되어 있는 점, 가운데엔 옷을 입지 않은 인물 (위에는 비너스, 아래엔 예수)이 있는 점, 마지막으로 오른쪽엔 그러한 가운데 인물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 인물이 있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오른쪽의 인물은 모두 똑같이 오른손을 들고 무언가 행위를 하고 있다. 차이점이라 하면 신적인 요소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너스의 탄생은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했던 자리'를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가 차지한다'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동일한 구도에서 인물들만이 교체된 것이다. 그동안 십자군 전쟁, 그리고 1347년부터 약 5년간 창궐한 패스트 병(흑사병), 거기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인간은 점점 교회와 신에 대한 권능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과학과 경제학 등 인간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 결국 인류 사상은 기존의 신본주의 사상에서 인본주의 사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비너스의 탄생은 그 길목에서 절묘하게 대중에게 공개된 그림이기에 인간 중심 사상으로 돌아가는 르네상스 운동에 불씨를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엔 이방 여인인 에스메랄다, 그리고 그 여인을 짝사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가 등장한다. 에스메랄다는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프랑스 광장에서 공개 처형에 당할 위기에 놓이는데, 이때 콰지모도는 사형 집행대로 뛰어들어 에스메랄다를 들쳐 엎고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도망치며, 이때 건물을 들어가자마자 "성역이다!"를 외쳐댄다. 콰지모도가 이곳이 성역임을 외쳤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교회 내에선 절대적으로 소란을 피우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범죄자라 할지라도 교회 내에서 강압적인 체포가 이뤄지면 안 되었다. 교회는 그만큼 신성한 성역(Sanctuary) 이였으며, 이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중대한 범죄에 해당했다. 콰지모도는 그것을 알기에, 사형 집행인들이 에스메랄다를 강제로 데리고 가지 못할 걸 알기에 성역의 영역임을 외쳤던 것이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그만큼 권위적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건드리면 안 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유럽 젊은 층의 70%가 신을 믿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통계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모든 것이 신 중심 사회였던 곳이, 이젠 전 세계 어느 그룹보다 신을 믿지 않는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저 한 장의 그림이 오늘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증명하기도 어렵고, 과도한 확대 해석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의 탄생 의도를 살펴보면,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 한 장의 그림이 가지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이렇게 클 줄은 당시 산드로 보티첼리는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