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가 축구할 수 있을까
축구장에서 쓰는 아이와 엄마의 성장 기록
주 2회. 본격적인 축구 수업이 시작되었다.
빠른 성장을 감안하여 유니폼을 족히 2 사이즈는 올려 입은 아이들 사이 내 아이가 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언제 이렇게 컸을까' 사뭇 감회에 젖는다. 코치의 권유로 푸우도 큰 유니폼을 입었지만, 머지않아 저 유니폼도 작아지겠지.
팀 훈련은 신세계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게임'(연습 시합)중 한 아이가 넘어지자, 코치가 시합을 멈추거나 하지 않는다.
'일어서~' 한다.
아이가 넘어지면 일으켜주는 게 본능적인 행동인데, 축구장에서는 특히 시합 중에는 통하지 않았다.
무조건 아이가 털고 일어나야 한다. 우는 아이가 있을 법한데 누구도 울지 않는다.
혹여 공만 보고 달려가다 서로 머리를 부딪히더라도 불평조차 하는 일이 없다. 충돌 부위를 부여잡고 대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게임을 이어갔다. 결코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래 봐야 유치원생인데 이렇게 의젓하단 말인가. 놀라웠다. 간혹 수업 중에 살짝 딴짓하고 장난치던 아이들도 20분의 게임만큼은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휘슬이 울리면 이글이글 조그만 호랑이 눈을 빛내는 꼬마들은 이미 어엿한 선수들이었다.
푸우는 1년 여가 지난 지금도 시합 중 누가 넘어지면 신경 쓰며 연연하다 공을 다투는 대열에서 밀려난다. 계속 달려야 한다는 현실과 돌봐줘야 한다는 내면이 갈등을 겪는 듯하다. 엄마가 볼 때, 지금 푸우에게서 타고난 선수라던가 특출 난 재능이라고 할 만한 점은 찾기 어렵다. 축구는 더욱 욕심 있고 공격적인 아이에게 맞지 않나 싶다.
푸우는 공을 악착같이 지키기보단 나눠주고 싶은 아이다. 공을 두고 다투는 건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지 그게 즐거워서가 아니다.
순하디 순한 푸우가 좋아할 만한 다른 많은 활동들을 연결해주고 싶다.
축구장은 너무 거친 세상이기에. 상냥한 푸우와 맞는 더 넓고 재밌고 즐거운 세상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축구에 특심인 아빠가 있는 푸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리에 수없이 멍이 들고, 발톱이 깨지고, 머리를 부딪히고도 악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공만 보고 달리더라도 유년의 축구 훈련을 온전히 소화해야 한다. 아빠 말에 의하면, '진로를 결정할 시점까지'는. 꼼짝없이 이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푸우가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고 절망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성향을 이유로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탐구할 기회를 빼앗고 싶지도 않다.
유치원 담임교사는 오히려 장려하는 입장이었다. 푸우가 '공격성을 기를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봤다. 지금은 너무 순하다고. 기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덜 것은 덜고 더할 것은 더하면서 성격이 완성된다. 축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격성을 더하는 중요한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
아이는 원래 엄마 손이 떠난 순간부터 자라는 걸까.
푸우는 지금껏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현명하고 똑똑했다.
그때그때 필요할 때 엄마로서 역할하기로 하고 일단 푸우를 믿어주자.
지금은 비록 몸에 맞지 않는 유니폼을 입은 것 같지만 언젠가는 축구라는 옷이 잘 맞아 편안해질 날이 올 것임을.
그렇게 유니폼을 몇 번 갈아입다 보면 어느덧 성인이 되어 항상 몸에 꼭 맞는 옷을 입는 날이 진짜 온다
게다가 남이 입혀주는 옷이 아니라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스스로 찾아 입기까지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