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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리 Dec 22. 2021

산후조리원은 꼭 가야 할까요?

맘카페에 질문이 올라왔다

'산후조리원은 꼭 가야 할까요?'.


맘카페에 질문이 올라왔다. 줄줄 달린 댓글들을 하나로 요약하면 '무조건 가세요'.


집에 가면 회복도 채 안 된 몸으로 밤낮없이 육아에 시달려야 하니, 산후조리원에서 최대한 휴식하라는 조언들이다.


직접 겪어본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2주간 머물렀던 조리원은 천국의 조건을 갖춘 곳이긴 했다. 널찍한 킹 사이즈 침대를 혼자 쓰면서 온종일 넷플릭스를 볼 수 있고, 개인 화장실에서 원할 때마다 좌욕도 할 수 있다.


아침마다 깨끗이 빨아 예쁘게 갠 잠옷을 두 벌씩 갖다 주고, 맛과 영양 고루 갖춘 식사 3회, 간식 3회가 방으로 배달된다.


아기는 신생아실에서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준다. 하루에 두 번 모자동실 시간엔 아기를 방까지 데려와주신다. 도통 아기가 달래지지 않을 땐 전화만 하면 신생아실 선생님이 아기를 데리러 온다.


매일 맛있었던 조리원 식사



가사 노동할 필요도, 육아로 고달플 필요도 없는 '조리원 천국'이다. 그런데 참 기묘하지. 나는 이 '천국'에서 집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장 큰 이유는 고립감. 코로나 시대의 산후조리원은 산모와 신생아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보다 철저히 방역을 하고 있다. 그 덕에 '조동(조리원 동기)'도 만들 수 없고, 신랑을 포함해 어떤 방문객도 맞을 수 없다.


출산 직후는 호르몬 변화로 우울증이 오기 쉬운 시기다. 이 시기에 마음 나눌 사람 없이 홀로 있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예정보다 빨리 산후조리원을 떠나는 산모도 왕왕 있다고 한다.


조리원이 ‘천국’처럼 느껴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종종 느꼈던 ‘소외감’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자신 없는 출산 직후. 조리원은 그 혼란을 달래고, 도움받기 위해 찾는 곳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오히려 혼란이 더 커질 때가 있었다.


조리원 2일 차 때 일이다. 여러 육아 콘텐츠에서 배운 대로 직수(직접 모유 수유)를 열심히 시도하고 있었다. 직접 자주 젖을 물려야 아기도 빠는 데 익숙해지고, 가슴 통증도 사라지고, 모유 양도 늘 거라는 게 내가 아는 내용이었다.


시도한 지 2분쯤 지났을까. 지켜보던 신생아실 선생님이 “잘 못 무네”라며 얼른 유두 보호기를 갖다 댄다. 애쓰던 나는 순간 무안하다.


‘우리 아기는 유두 보호기를 잘 못 물던데.’ 속으로 생각만 하고 내뱉지 못한다. 나는 초보 엄마고, 이 분들은 전문가니 내가 틀렸을 거란 생각이 앞선다.


혼란스러운 얼굴로 아기에게 (유두 보호기 낀) 가슴을 얼마간 물렸을 때, 다시 선생님이 나선다. “연습했으니 이제 맘마 먹자”. 분유 보충을 하잔 이야기다.


출산 전 읽었던 여러 육아서적에선, 신생아는 조금만 먹어도 괜찮고, 분유 보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가슴에 익숙해지기 전에 젖병에 익숙해지면 모유 수유가 더 어려워진다고 알고 있다.


이번엔 용기 내어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은 엄마 젖이 잘 안 나와서 아기 탈수될 수 있어요. 분유 먹여야 돼.”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중 선생님은 아기를 벌떡 안아 올려 데려간다. “우리가 분유 먹일 테니 엄마는 푹 쉬어요”. 


허탈해진 마음으로 침대에 털썩 눕는다. 그래. 조리원은 산모가 푹 쉬려고 오는 곳이지. 하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이래선 아기와 가까워지는 데에 너무 오래 걸리겠는데내가 알던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겠고…’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잠깐씩 보고 헤어져야 했던 코로나 시국의 산후조리원


집에 온 뒤 읽은 어느 책에는 막 엄마가 된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적혀있었다.


병원 의료진이라든가, 주변 어른들(부모님 )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네가  몰라서 그래."라는 식으로 대하는 바람에 엄마가 육아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자신감도 떨어져 어려움을 겪곤 한단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육아 박사가  수는 없다. 아기와 친해지고, 엄마로서 자신감을 길러가는 시간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엄마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손길도 중요하고.


그런 면에서 산후조리원은 독특한 공간이다. 엄마가 아기와의 관계에 몰입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산모의 회복에 집중하라고 만든 공간이니까. 


특히 최근엔 밤중 수유도 최대한 하지 말고 산후조리원에선 쉬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그러다보니 산후조리원 입장에서도 더욱더 휴식을 내세우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조리원 원장님이 이런 시장 흐름을 이야기 하셨다)


한편으론 산모 회복에 집중하는 이런 트렌드가 좋기도 한데, 또 한편으론 그만큼 한국 여성들의 육아 부담이 크다는 뜻인가 싶어 짠하다. 산후조리원은 한국에만 있는 시설이라던데, 비싼 돈 내고 의도적으로 쉬어야 할 만큼 한국의 엄마가 감당해야할 육아 강도가 어마무시하다는 뜻일까.


어쨌든, 나에게 “쉬세요 말하고 아기를 데려간 선생님은  일을 했을 뿐이다. 내가 산후조리원을 즐길 자세 혹은 준비가  되었던 거다. 아기와 얼른 친해지고 싶고, 모유수유도 빨리 시작하고 싶었으니.  주고 육아를 미루는 곳에 가서 육아에 돌입하지 못해 조바심  셈이다.


원하는 방향이 분명하고, 자신감 있는 엄마라면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휴식을 즐기면서도  의견을 관철시키며 육아 모드에 부드럽게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애석할 .


그러니, 산후조리원을 갈지 말지 고민이라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식으로 육아 모드를 시작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답하고 싶다.


육아 모드를 최대한 유예하고 일단 ‘천국’에서 푹 쉬는 게 좋은지, ‘천국’까진 필요 없고 얼른 육아의 주도권을 갖고 싶은지. 혹은 '천국'의 장점은 즐기면서 내가 원하는 육아 방향을 명확히 요구해볼지.


이에 따라 산후조리원을  수도 있고, 산후조리원 대신 집에 머물면서 산후관리사를    수도 있다. 남들  가니 무조건 산후조리원에 가야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이 자기한테 맞는 방법을 으면 그만이다.


그게 뭐든 이제 막 엄마가 된 스스로가 소외되지 않는 쪽이면 된다. 제아무리 천국의 조건을 갖춘 곳이어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천국’ 일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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