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의 척도

feat. 프롬나 커밍아웃

by 프롬나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독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뼈 있는 말이나 지나가면서 무심코 내뱉는 반응에도 쉽게 상처 받거나 우울함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좋은 말에만 귀 기울이고, 질책하는 말에는 회피하며 수용하지 못하는 아주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한참 sns를 친구들 따라서 시작했을 때 내 일상을 올리고, 사람들이 반응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내 게시글이 좋아요가 몇 개든 댓글이 몇 개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일상을 기록한다는 거에 의미를 뒀기 때문에 미련도 없었다. 그러다 친구들의 sns를 보게 되고 내 게시글에 좋아요와 댓글을 비교하게 되었다. 왜 내 게시글은 좋아요 안 눌러 주지, 댓글은 왜 안 써주는 거지? 내 글이 재미가 없는 건가, 뭐가 잘못된 거지?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sns에 글 하나 올리는 것도 너무 신경 쓰여서 하기가 싫어졌다. 친구들을 시기 질투 하고, 또 누군가도 나를 질투하는 상황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 sns를 삭제하고 살아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었다. 오랜 전공을 마음속으로 꽁꽁 숨긴 채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내 맘 한 구석에는 항상 그림이 있었다. 풍경 드로잉으로 활동 분야를 정하게 되었고, 홍보를 위해서는 가장 효과 좋은 sns를 다시 만들었다.

작가로 활동할 이름을 계속 고민 했다. 쉽게 불러지면서도 한번 들으면 각인 될 수 있고, 풍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어울리는 이름이었으면 했다.


우연히 여수에 있는 프롬나드라는 카페를 방문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고, 이 순간을 계속 기억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프롬나드라는 카페 이름이 맘에 들어서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산책이라는 뜻이라서 더 좋았다. 활동 명을 고민하고 있었고, 풍경화를 그리기로 해서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고 산책하듯 편안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프롬나드라는 이름을 할까 하다가 문득 from 단어와 '나 ' 단어를 조합해서 'from+나' 나로부터 라는 의미도 더해주니 뭔가 더 의미 있는 활동명이 완성 되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신경 쓰고 맞춰 주기만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스스로 결정하고 나로부터 뭐든지 생각하는 자아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름 의미 있는 활동 명으로 계정을 만들고 내 그림을 천천히 올리기 시작했다. 내 계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씩 꾸준히 그림을 올리다보니 조금씩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생겼다. sns를 통해 알게 된 소수의 사람들이었지만 하나 둘씩 내 그림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조금씩 힘을 얻어갔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내 작은 게시물에 무한한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는 어느 정도 유대관계가 쌓이면 그 친함의 정도에 따라서 서운함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쌓다보니 내가 100을 줘도 50을 나에게 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100을 줘도 200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 경험들을 위안으로 삼으며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내 감정이 좌지우지 되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 하지 않게 되었다.


풍경화를 꾸준히 올리다보니 처음으로 위메이크 페인팅에서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이제 막 시작한 작가인데도 제안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계약서를 먼저 작성하고 그림을 정했다.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닌 다른 그림이 선택 되어서 조금 놀랐고, 대중의 시선은 아직 더 경험으로 쌓아봐야 알 것 같았다.

내 그림이 상품으로 팔릴 가치로 인정받은 것은 너무 감사했지만 먼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그림이 완성 되면 내 인스타에 홍보 글을 올려야 한다는데, 이렇게 조그만 내 계정에 누가 댓글을 달아주고 관심을 가져줄지가 문제였다.

걱정을 먼저 가지고 시작했지만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생각하며 완성될 그림을 기다렸다.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걱정들도 조금씩 일상 속에 무뎌졌다.


순식간에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기다려지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에는 그림 완성 소식과 홍보를 자유롭게 진행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기어코 걱정되던 그 날이 다가온 것이다.


과연 내 그림으로 홍보가 될까? 누가 내 그림을 봐줄까? 걱정이 되는 마음이 계속 커져서 나는 광고를 하기로 결심했다. 역시 자본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의지를 하며 홍보 게시물을 준비했다. 홍보 게시물을 편집해서 사진으로 올려도 되지만, 나는 그림을 직접 색칠해서 완성된 모습을 알리고 싶었다. 완성된 모습을 올리기 위해서는 40x50cm의 커다란 캔버스에 50여가지의 물감으로 색칠을 하는 키트를 단 3일 안에 완성을 해야 이벤트 일정에 맞출 수 있었다. 그림의 번호와 물감 번호를 맞춰서 색칠을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캔버스 크기와 색칠해야할 부분을 여러 물감으로 칠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압도될 만큼 커다란 캔버스 크기에 놀랐고, 풍경화의 하늘과 구름, 바다의 윤슬, 나무의 음영까지 음영을 나눈 크기가 실오라기처럼 너무나 얇았고, 여러 가지 물감으로 색칠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해야 했다. 음영을 이렇게 세세하게 나눈 내 과거를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세상에 처음 나온 내 그림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 장시간 팔을 들고 꼼꼼하게 색칠을 해서 나중에는 오른팔이 마비가 되는 느낌이 들었고, 잠이 드는 새벽쯤에는 팔이 제대로 들어지지가 않았다.

나름 손이 빠르다고 자부하며 토요일 밤 하루 만에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 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고. 나는 장장 3일을 꼬박 밤을 새며 색칠을 해야 완성 할 수 있었다.

틈틈이 찍어 놓은 드로잉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서 릴스로 제작을 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 장비들은 모두 준비 되었고, 이제 전쟁터만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호기롭게 게시글을 작성하고 광고를 하려고 했지만 여러 제약이 많아서 할 수가 없었다. 사진 개수가 많거나 릴스 시간을 초과해서 수정을 하지 않으면 광고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기한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예정대로 게시물을 업로드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글을 광고 없이 홍보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결국 지인 찬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위메이크 페인팅 ▶ 강변북로

https://iammini.co.kr/product/%EA%B0%95%EB%B3%80%EB%B6%81%EB%A1%9C-%ED%94%84%EB%A1%AC%EB%82%98/2354/category/57/display/1/



몇 명 안 되는 지인들에게 부탁을 하려면 내 계정을 공개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도 예전에 유행하던 부캐를 만들어서 계정을 운영한다고 우습게보지는 않을지,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나를 칭찬해줄지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드디어 마음을 먹고 이벤트 게시물을 업로드하고 처음으로 내 계정을 지인들에게 커밍아웃 했다. 지인들은 내가 그림 그리는 사실에 놀라고 작품 출시했다는 소식에 두 번, 굉장히 놀라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축하해주고 응원 해주는 마음을 과분하게 받았다. 내가 부탁한 것은 인스타 팔로우, 게시글 좋아요,댓글 쓰기까지 부탁했다. 인스타를 안 하는 지인들은 인스타 가입을 해주기도 하고, 어떤 지인은 자신의 딸들, 친구들까지 부탁해서 팔로우와 댓글쓰기를 도와주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1명이라도 홍보 효과가 쌓이다보니 처음 본 게시물 조회 수를 보게 되었다. 두 자릿수 조회 수도 감격하던 내가 몇 천회의 조회 수를 처음 보게 되었다. 물론 팔로우와 좋아요 댓글까지 모두 높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게시물이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역시 무서운 알고리즘과 실시간으로 좋아요가 쌓이다보니 게시물이 홍보가 되는 듯 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 나는 100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엄청난 성의를 보였고, 내가 100이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미적지근해서 놀라기도 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애써주다니 너무 감동이었다.

호불호가 있는 그림이라는 장르에 또 이 그림을 직접 색칠해야하기에 관심이 없는 거겠지 생각하며 서운한 감정까지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연예인이라도 된 것 마냥 내 계정을 밝히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지만 다행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며 취미생활까지 잘하는 사람으로, 혹은 그림을 아직 포기하지 못하는 평범한 직장인 어딘가에 분류 되었다.

내가 가장 걱정되었던 건 사람들의 반응,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반응에 내가 상처 받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을 못 견뎌하는 것이었다. 정작 속 시원하게 밝히고 나니 솔직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마음의 소리를 있는 힘껏 지르는 느낌이 들어서 후련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의 질책에 너무 겁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크지도 않았고, 아주 잠깐 동안 관심을 보이다가도 금세 사라졌다. 그들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게 바빴다. 과거에 어떤 부정적인 반응에 침울해하며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오해가 쌓였던 경험치가 나를 가로 막고 있었던 것 같다.

다들 각자의 목소리로 누군가를 평가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 평가를 통해서 다시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 평가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며 회피했던 내 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효리가 말하던 이상순의 일화가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무 의자를 만들면서 의자 바닥을 사포질 하는 모습을 보며 이효리는

“여기 안 보이잖아 누가 보겠어” 말하자 이상순이 “내가 알잖아” 라고 답했다.

남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남들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믿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나의 태도와 삶이 달라진다는 걸 이제는 안다.


때로는 질책을 받더라도, 너무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더라도 나 자신을 믿고 그 자리에 계속 서서 올곧게 계속 성장하는 게 인생의 모습인 것 같다.

좀 더 큰 그릇의 사람이 되어서 부정적인 반응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응원의 말들은 자양분 삼아 내 마음 속에서 힘들 때마다 꺼내보며 힘을 얻어야겠다.


계속 성장해나갈 준비가 되었나요?


내가 계속 풍경화를 그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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