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과 첫인상

<Cruella>,2021

by 사평

“나 첫인상이 어땠어?”



나도 종종 지인들에게 묻곤 하는 질문이다. 대답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좋아 보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기는 하다. 말 걸까 말까 속으로 엄청 고민했다, 인사 했는데 씹은 줄 알았다, 심지어는 무섭게 생겼다..뭐 이런 말들도 들어봤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해주는 사람들과 내가 여전히 가깝게 지낸다는 건, 아마도 나에게 그런 인상과는 다른 면들이 있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처음부터 나를 좋은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힘들었을 것은 당연한 소리인지라, 첫인상은 퍽 중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영화도 그렇다.




컨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시청자들이 하나의 영상을 선택해서 일정 시간 이상 그 화면에 머무르게 하는 것부터가 일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되었다. 실제로 왓챠의 경우 ‘시청을 시작한 사용자의 ~%가 줄곧 ~시간 이상 본 작품’이라는 멘트를 영상 설명란에 기입하기도 한다. 아마 영상을 재생했다가도 초반 몇 분만에 지루해져서 나오는 시청자들이 꽤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영화의 오프닝이 주는 첫인상은 상당히 중요하다.




영화를 보려고 고르고, 그 영화를 찾고, 시청하기를 눌러서 보기 시작하는 것까지, 이 일련의 과정을 굉장히 힘들어 하는 나에게는 더욱이 영화의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고 때론 편식도 하지만 어쨌든 나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상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고르는’ 행위 자체에 꽤 불편함을 느낀다. 보고싶은 영화는 많지만 막상 실제로 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겁의 시간을 거쳐 골라낸 영화의 시작이 좋지 않으면 남들보다 배로 실망하게 된다. 물론 꾸역꾸역 참고 보다가 어라, 생각보다 재밌는데?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꾸역꾸역’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는 점은 영 탐탁지 않다. 그래서인지 첫인상이 좋았던 영화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름 괜찮았던 영화로 기억한 적도 많은 것 같다.




이렇듯 다소 까탈스러운 내가 영화의 ‘첫인상’을 판단하게 해주는 것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냥 느낌을 볼 때도 있고, 배우를 볼 때도 있고, OST를 볼 때도 있고, 그리고 시리즈 영화는 사실 이전에 잘 보던 시리즈라면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그냥 보기도 한다.


영화 <크루엘라>는 사실 디즈니 영화라 평균 이상은 가겠지,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갖고 보기는 했다. 그리고 극장에서 내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배우의 목소리’였다. 평소에도 영국 발음이 매력적이라고 느끼긴 했으나, 엠마 스톤의 발음은 그 이상이었다. 그 매력적인 목소리로 자신이 화면에 비춰지는 목걸이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 첫인상이 좋지 않을 수가 없는 영화였다.




일단 처음 몇 분을 붙잡아 뒀으면 그 이후의 시간까지 집중력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질문’이다. 앞 내용을 보고 궁금한 것이 생겨야 계속 시청할 의향이 생긴다.


크루엘라의 오프닝을 보면 궁금한 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죽는 영화라니, 그렇다면 어떻게 전개를 시킬까? 이름이 두개로 소개되는데, 이름은 왜 두 개지? 주인공의 엄마가 친구를 찾아가는데 얼굴은 나오지 않네, 누구지? 뭐 이런 류의 얼핏 가벼워 보이는, 또 어쩌면 당연한 질문들이 결국 내가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뒤의 내용이 궁금해서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러한 질문들이 초반부터 나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앞에 10분만 보고 흥미가 없는 내용이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리는 사람은 확실히 흔하지 않다. 나도 취향 참 확고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이지만 그런 나도 영화관에서 졸아본 적은 있어도 지루한 영화라고 해서 영화가 끝나기 전에 영화관을 나와버린 적은 아직 없다. 이미 돈을 냈기도 했고, 기왕 들어온 거 끝까지 보자, 하는 마음도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OTT 서비스의 규모와 영향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 요즘은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화면을 한 번 클릭하면 나오는 정지 표시, 그리고 상단의 X표시의 유혹은 생각보다 뿌리치기 쉽지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이 낳는 결과는 컨텐츠를 제작하는 사람 입장만 곤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여러 번 경험한 일이지만, 그렇게 몇 번이고 창을 닫고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면 사람이 지쳐버리게 된다.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냥 포기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첫인상의 경쟁력은 모두를 위해서 중요하다.


무조건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그러한 자극 말고, 순수하게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내용이 나올지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매력 있는 오프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크루엘라는 괜찮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