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경X인영구] 댕경으로부터
#0. 인영이에게.
안녕, 잘 지내고 있지?
며칠 전, 서로 글을 써서 메일을 주고 받아보지 않겠냐는 너의 제안을 받고 그 자리에서 한 치의 고민 없이 그러자고 했었지. 한 번도 생각해보거나 직접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서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는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어.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제안을 해주다니, 라는 생각.
이렇게 말하면 넌 또 이런 반응을 하겠지?
‘하... 오빠. 이제는 좀 본인이 글을 잘 쓴다는 걸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어?
나는 오빠 아니면 이런 거 할 생각도 안 했어.(단호)’
난 아직도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내가 할 줄 아는 능력들이 전부 다 애매하다고 생각했거든. 말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글을 잘 쓰는 것 같지도 않고, 글씨도 잘 쓰는 것 같지도 않고, 드럼을 잘 치는 것 같지도 않고, 요즘엔 수학도 못하는 것 같고. 뭘 하더라도 항상 애매한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단 말야.
어제는 과외가 끝나고 학생 어머님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어쩌다 보니 방금 적었던 얘기를 학부모님께 똑같이 하게 된 거야.
‘어머님, 있잖아요. 저는 뭘 해도 항상 애매한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학생 어머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
‘그건 있잖아요. 본인이 가진 재능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태어날 때 특출 난 재능을 딱 하나만 가졌으면 다른 데에 한 눈 팔지도 않고 그 길만 보고 쭉 갈 텐데, 선생님은 음악도 하고, 수학도 하고, 뭐 캘리그라피도 하신다면서요? 본인이 가진 재능이 많으니까 다 애매해 보이는 거예요. 그 애매하다는 말은 다 잘하는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에요.’
다음 과외를 가는 버스 안에서 어머님 말씀을 계속 곱씹고 있는데 예전에 네가 썼던 ‘애매한 재능’에 대한 글이 문득 생각나더라. 이어서 든 생각은, ‘나는 남들에게 문득 생각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거였어.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갑자기 엄청 행복해지더라고.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글을 쓴 사람이 나보고 같이 글을 쓰자고 하는데,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도 평소에 너한테 하지 못했던 말이 하나 있는데,
항상 내 글을 좋아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내가 너의 글을 좋아해 줘서 네가 꾸준히 글을 썼다고 했던 것처럼,
나야말로 네가 나에게 '나중에 꼭 같이 책 내자!' 라고 해준 그 말 한마디 덕분에
지금까지 글 쓰는 것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우리가 메일로 어떤 글을 주고 받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글 쓸 수 있게 노력할게!
2020. 02. 21.
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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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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