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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Mar 10. 2018

신생 여행사, 신입사원으로

<이민 일기 #7> 좌충우돌 신입의 경험

취업은 순조로웠지만, 막상 출근을 해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데, 제대로 내게 일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정규 직원 없이 여행사를 시작하고 본 입담 좋은 사장님은 여행 가이드 출신이라 티켓팅은 할 줄 몰랐고, 옆에 또 다른 한인 여행사를 운영하는 여자분이 업무를 같이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에게 배우려고 하니 시원찮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나중엔 우리 사무실을 나갔다. 막막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정을 하고는 다른 여행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티켓팅 업무를 배우려는데, 일은 잘하지만 인간미 하나 안 느껴지고 찬바람만 쌩쌩 부는 그 직원에게서 눈치 보며 배우느라 내 속도 타들어갔다. 어쩌랴, 일은 해야겠기에...     


이리하여 정말 배울 때는 치사하게, 고달프게 배워야 했지만, 어느 정도 업무를 터득하고 나니 한결 수월해졌다. 주로 연락을 해 오는 손님은 한인들이었기에 전화로, 또 방문한 손님을 상대하는 것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항공사와 전화할 일만 별로 없다면, 그리고 영어권 손님만 오지 않는다면, 영어를 잘 못해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가 보지 못한 여행상품들을 잘 아는 듯 소개하며 추천을 하고, 예약을 대행해 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즐겁기까지 했다.   


한참 예약 상담을 해 준 어느 고객이 나에게 목소리가 곱고 친절하다며 "내 조카를 소개해 주고 싶어요" 하는 것이었다. "어머머 저 결혼했어요~" 하며 웃고 말았지만, 얼굴도 보지 않고 맞선을 주선해 주고 싶을 만큼 그렇게 호감을 주었다니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여행을 다녀오신 그분께 잘 다녀오셨냐고 안부 전화를 드렸을 뿐인데 그분은 고맙다며 내게 예쁜 목걸이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감동이었다. 통화만으로도 그렇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고객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느 고객은 자기가 신발가게를 하는데 매니저를 해 볼 생각이 없냐며 운을 띄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인정해 주고 좋아해 주는 고마운 손님들 때문에 업무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여행사, 의외로 나와 케미가 이리 맞을 줄이야 싶었다.    


하지만 신생 여행사여서 고객들이 많지는 않았다. 주로 신문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오는데, 하루 종일 전화가 오기만을 목 빼고 기다렸다가 따르릉 전화가 걸려 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더욱 신이 났다. 그러다 정말 피하고 싶은 손님이 생길 줄이야...      


사실 여행사도 처음이고 업무도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닌지라 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신입사원이었다. 어느 날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온 아주머니에게 옐로스톤 여행 상품을 예약해 주면서 비행기 티켓을 발권해 주었는데 좌석을 지정해 주지는 않았다. 사실 좌석은 손님이 항공사에 직접 예약할 수도 있고, 공항 카운터에서 자리를 배정받을 수도 있기에 나는 그에 대한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여행 당일, 손님들이 공항에 나갔을 때 항공사에서는 자리가 없다며 비행기에 태우지 않은 것이었다. 비행기가 자리보다 더 손님을 받은 경우, 즉 오버 부킹(over booking)이 되었을 때는 좌석 지정이 되지 않은 손님들부터 태우지 않는다는 사실도 난 미처 몰랐다.   


그 아주머니는 전화로 매섭게 항의를 했고, 그날 나는 진땀 흘리며 사태를 수습하느라 정신없었다. 다행히 다음 비행기를 타고서 현지 가이드와 만나서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는 있었지만, 우리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면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아... 정말 괴로운 날들이었다. 사실 법적으로 어떻게 책임이 있고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내 무지로 손님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다. 그리고 비행기 티켓이나 상품을 팔아도 이익이 많이 남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장님에게 짐을 지운다는 것도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사장님은 내 탓을 하지 않았고, 가족 명수당 100불씩 내어 주기로 했다.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나를 불안하게 하던 그 아주머니는 그 뒤로 잠잠해졌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멋모르고 뛰어든 여행업무, 재미있기도 했지만 실수는 뼈아픈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좌석에 덴 후로 발권하는 비행기 티켓마다 좌석을 지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음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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