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일기 #8> 여행사에서의 폭풍 같았던 하루
과연 우리 여행사가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까? 종종 의문이 들었다. 기존의 여행사들과 경쟁해서 여행상품이나 비행기 티켓들을 팔아서는 수익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장님의 진짜 목표는 다른 데 있었다. 직접 현지 투어 상품을 만들어 투어 손님들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버스도 필요하고 가이드며 사람도 더 필요한데, 그는 돈이 없다 하면서 어찌어찌 다 일을 벌이고 있었다. 아무튼 그러면서 조용하던 사무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새로 투어 가이드 출신의 직원이 한 명 합류했다. 나보다 어린 미혼 여성으로, 일 잘하고 싹싹하며 털털한 친구였다. 듣기로는, 비행기 이륙 시간이 다 되었는데 면세점 쇼핑 나간 손님이 오지를 않자 손님이 올 때까지 탑승구 바닥에 드러누웠다는, 나름 유명한(?) 친구였다. 그녀가 어찌어찌 사장님의 입담에 넘어와 미국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책임감 투철한 B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같이여서 더 힘이 되고 서로 의지가 되었다. B 외에도 영어를 잘 못하는 사장님의 입이 되어 주는 대학생 C와, 가이드 아저씨들 몇 명이 우리 사무실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활기를 띄어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아무쪼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여행사에서 일한 지 4개월이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 여름에 멕시코 캔쿤으로 5명의 손님을 보내게 되었다. 손님들이 캔쿤에서 여행 일정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손님의 가족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멕시코에 허리케인이 온다면서요? 거기는 일기예보도 체크 안 하나요?" 허리케인이라니,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전화를 건 분은 약국 아주머니인데,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을 여행 보내드린 것이었다. 일기예보도 확인하지 않고 여행을 보내냐며 따지는데,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언제부터 허리케인 예보가 뜬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러나 다행히도 허리케인은 우리 손님들이 비행기로 다시 돌아온 그 다음날에 멕시코를 강타한다는 것이었다. 간발의 차로 허리케인을 피하게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도 그 아주머니에게 부모님이 잘 도착하실 거라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손님들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현지 여행사에게서 급히 전화가 왔다. 우리 손님 한 분의 비행기표가 취소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것도 바로 그 약국 아주머니의 아버지 되는 분의 표였다. 이럴 수가!!! 분명 자리까지 다 예약했는데... 그러고 보니 뭔가 찜찜한 게 생각이 났다. 이 비행기는 AA와 멕시칸 에어라인이 함께 쓰는 코드셰어 비행기로, 그중 AA로 티켓팅을 했는데 자리 예약을 했을 때 다른 손님은 HK라는 표시가 뜬 반면 두 손님은 PN라는 표시가 뜬 것이었다. 얼른 다른 여행사인 베테랑 J 실장님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PN은 펜딩의 약자라는 것이었다. 자리 예약이 되었겠지 뭘~ 하면서 넘긴 것이 이런 대형참사를 불러올 줄이야... 코드셰어 비행기라서 더욱 복잡했다. AA로 전화를 하면 분명히 예약이 되어 있는데, 정작 운행사인 멕시칸 에어라인에 전화를 하면 예약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내 영어로는 도저히 되지 않을 일이기에 사장님의 비서 격인 대학생 C양과, 구세주 J 실장님이 각 에어라인에 전화를 해 주었다. 결국 J 실장님이 AA 에어라인을 통해 멕시칸 에어라인 쪽의 예약번호를 받아냈고(두 에어라인의 예약번호가 다르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예약번호를 건네주니 마침내 멕시칸 에어라인에서 그 손님 예약을 확인해 주었다. 자리는 스탠딩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정말 침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이분들은 더욱이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스케줄인데, 이 비행기를 놓치면 어찌할꼬...
현지 가이드와 다시 통화를 했다. 우선 게이트로 손님들이 들어가시지만, 아무래도 비행기를 못 탈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허리케인을 피하려 너도 나도 비행기를 타려고 몰려든 상황에서, 확정된 자리도 없고 스페니시도 못하는 두 한국 어르신들에게 누가 자리를 내어 주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내 안에서 절박한 무언가가 더 액션을 외치고 있었다. 성경에 엘리야가 무릎 사이로 고개를 넣고 절박하게 기도하며 비를 기다렸던 장면이 떠올랐다. 기다리고 기다렸을 때 마침내 손바닥 만한 구름이 보이자 응답을 확신하며 일어났던 그 장면... 사장님과 다른 직원들 눈치가 보여서 정말 망설여졌지만, 결국 나는 무릎을 꿇었다. 엘리야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싶어서였다. '하나님, 이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제 실수로 그분들이 비행기를 못 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발 자리를 내어 주세요. 그래서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게 해 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 눈물이 났다.
사장님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만 일어나세요. 기도한다고 뭐가 됩니까. 가이드에게 전화나 해 보세요." 나는 눈물을 훔치고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그도 결과를 알지 못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만약 비행기를 못 타시면 거기서 다 보상을 받으셔야 해요. 숙박하게 될 호텔과 식사 비용, 그리고 다음 비행기 티켓까지 다 확답을 받으셔야 해요. 꼭이요." 가이드는 알겠다고 했다. 그것도 이전의 실수와 경험에서 배운 것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보상을 약속받지 못하면 나중엔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약국 아주머니였다. 이 상황을 먼저 알게 되어 차라리 잘 된 것 같았다. 당황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만일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되면 차후 책임을 지겠다며 상황을 전하고 멕시코 현지 가이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아주머니는 또 일기예보를 들먹이며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 통화 직후 멕시코에서 연락이 왔다. 손님들이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기적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사장님 왈, "소나 씨가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셨네요." 무신론자 사장님 입술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기쁘고 감사했다.
갑자기 믿음에 대해서도 확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나태하게 믿어 왔나 싶었다. 여행사 업무에 대해서도 또 뼈저리게 배웠다. 자리는 확실히 컨펌을 받을 것과, 코드셰어 비행기는 가능하면 운행 항공사를 태울 것. 나중에 그 깐깐하던 약국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책임 있게 해 주어 고맙다며 자기 가족의 휴가 여행을 미리 예약하고 싶다고 말해 주어 얼마나 보람되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여행사에서의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