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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Mar 30. 2018

첫 직장이여, 안녕~

<이민 일기 #9> 여행사에서 경험한 황당 시추에이션

여행사에서 일한 지도 7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이 신생 여행사는 겁도 없이 현지 투어를 하겠다고 나섰고, 쟁쟁한 다른 경쟁사를 물리치고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사장의 인맥과 입담을 풀가동하여 미 동부 투어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금난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았고, 투어 담당 직원과 사장의 얼굴은 날로 초췌해져 갔다. 사건 사고도, 변수도 많고, 말도 탈도 많은 이 여행사 업무 속에서 나 또한 지쳐갔고, 때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투어의 경우 현지 여행사로 손님을 보낼 때 손님을 먼저 보내고 돈을 나중에 주는, 선 손님 후 지불의 시스템은 우리도 힘들게 했고, 우리가 손님을 보내는 다른 현지 여행사도 힘들게 했다. 당장 들어온 돈을 현지 투어에 끌어당겨 쓰다 보니 다른 여행사에게 줘야 할 지불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좋지 않은 소리도 듣게 되고, 괜히 죄인이 돼야 하는 입장이 참 싫었다.   

  

이렇게 되자 나는 점점 일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회사 사정과, 조그마한 실수도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는 여행사 일도 버겁게도 느껴졌다. 사장님은 더 이상 여력이 되지 않는지 우리 월급은 우리가 벌어서 가져가라는 말을 했고, 함께 일하는 B도 스트레스를 더 이상 못 견디겠는지, "언니 먼저 빠져, 그 다음 내가 빠질게." 하며 눈짓을 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사장님, 더 이상 일을 못할 것 같아요. 몸이 좋지 않아서요." (실제로 혈압이 높은 편이어서 그 핑계를 댔지만, 내 정신 건강이 더 큰 병을 부르지 않겠는가!)    


그랬더니 사장은 너무 아쉬워하며 만류하면서도 또 일할 사람이 당장 필요하기에 바로 구인란에 공고를 올려 사람을 구하게 되었다. 나를 바로 뽑았듯이 금세 또 다른 사람이 면접을 보러 왔고, 선뜻 오케이 하는 것 같았다. 그게 그 사장의 스타일이었다. 속전속결. 그렇게 새 사람이 오기로 다 결정이 되었는데, 사장이 갑자기 내게 간절히 부탁을 했다. 지금 투어 버스를 가진 다른 동업자가 조인하기로 하고 회사의 희망이 보이게 되었으니 조금만 더 있어 달라고. 사실 나로서도 당장 갈 곳이 없었기에 차마 거절을 못했다. 막상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일하기로 하자 좀 아쉽던 차였는데, 조금 더 일하면서 다른 곳을 알아봐야지 하는 마음도 들어서 그냥 그러기로 했다. 한편으로 이렇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같이 일하기 원한다는 것에 왠지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아침부터 급하게 비행기 표를 끊어 달라던 사장이, 그리고는 잠적해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가관이었다. 그가 캐나다 투어를 진행하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때면 관광버스에 술집 여자들을 태우고 밀입국을 시켜줬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누가 밀고하여 경찰이 들이닥치고 가이드가 잡히게 되자 정작 책임자인 그는 바로 도망을 쳐버린 것이다. 오 이럴 수가, 가슴이 덜덜 떨리는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그의 경력, 학력, 가족사 등등 하나같이 거짓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영주권은 특별한 몇 명에게 주어지는 골드 영주권이다 뭐다 한 것도 의심치 않았던 내가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랬다. 그는 거짓말쟁이였고 허풍쟁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없는 중에도 내 월급은 챙겨 주려고 노력한 모습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 주려고 했던 모습들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돈이 없고 능력이 없고 자존감이 없어서 거짓으로 부풀리고, 불법으로 돈을 벌어 근근이 여행사를 꾸려나가고, 그러다 모든 게 들통이 나자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친 것이다. (아마 그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거짓된 말들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리라...)



후폭풍이 몰려왔다. 어떤 가이드는 말하길 FBI가 조사하러 이곳을 들이닥칠 거라 해서 내 심장은 벌렁거렸다. 그 사람도 허풍이 센 사람이어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미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나는 얼른 연락해야 할 고객 명단을 챙겼고, 그렇게 사무실을 떠나고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남겨진 사무실 집기들은 그런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사장에게 받아야 할 돈이 있다며 나눠 먹기로 가져갔다고 한다.) 비록 사무실은 떠났지만, 아직 내게는 여행사 업무가 끝나지 않았다. 돈을 우리 쪽에 지불하고 여행을 가기로 계획된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까지 연락을 끊어버리면 그들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래서 일일이 전화를 드려 사정을 설명하고, 미수금 받을 곳이 있는 다른 여행사들에게 손님들 일정을 부탁하며 최대한 할 수 있는 조치를 했다. 이 모든 걸 겪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정말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첫 번째 직장은 황망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한국 사람 많은 뉴욕 등 대도시에 사기꾼이 많다고 이민 오기 전에 누가 조심하라고 하던데, 내가 그런 사기꾼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뿐만 아니라 처음에 같은 사무실에 있다가 독립해서 나갔던 여자도 여행 갈 손님들 돈을 들고 튀었다며 안 좋은 소문이 자자했다. 이 미국 땅에서 소수 민족으로 서로 돕고 살아야 할 동포들 사이에서 비열한 일들을 목격하게 되어 씁쓸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그만두었다면 이런 험한 꼴은 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새로 입사하자마자 황당한 일을 겪었을지 모르는 그 사람보다는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게 더 옳은 일일 것이었다. 사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덜컥 취직이 되었던 기쁨과, 일하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일을 통해 느꼈던 보람 및 값진 경험들과, 비록 마지막 월급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껏 월급을 밀리지 않고 받았음에, 큰 위안을 삼기로 했다. 아픈 만큼 더 성장하리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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