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일기 #10> 한인 마트 주부 모니터로 활동하다
여행사에 다니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직장에 나갈 동안 우리 아이를 돌봐 주셨던 교회 집사님이 어느 날 이런 정보를 주시는 것이었다."H마트에서 이번에 주부 모니터를 뽑는다는 데 한번 응모해 보지 그래요? 예진 엄마는 잘할 거 같은데요."
주부 모니터? 왠지 귀가 솔깃해졌다. 장을 보러 간 김에 매장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았다. 그 이벤트를 주최하는 H마트는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몇 개 주에 체인점을 두고 있는 큰 규모의 한국 마트인데, 우리 동네에만도 3개 매장이 있었기에 자주 가게 되는 마트였다. 그곳에서 처음 '주부 모니터'라는 제도를 시행하는데, 3개월 동안 각 매장당 두 명의 주부 모니터를 두고 매장의 전반적인 상태를 체크하고 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에서 이번에 새롭게 모집한다고 했다. 일단 모니터 요원이 되면 활동한 월별로 150불 마트 상품권이 주어진다고 하니 장도 보면서 의견도 내고 돈도 버는 일석삼조의 효과 아닌가! 나는 망설임 없이 내 각오를 담은 지원서를 제출했다. 경쟁률은 알 수 없었지만 '1기 주부 모니터 요원'으로 뽑혔다는 합격 메일을 받고는 기쁜 마음으로 모니터 활동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해 보니 주부로서 우리 가족 먹거리를 쇼핑하면서 그 먹거리를 제공하는 매장을 꼼꼼히 모니터 한다는 아이디어가 고맙게 느껴졌다. 모니터 활동을 하면서 한 달에 두 번씩 매장 외부와 내부 환경, 제품의 상태, 광고 및 홍보, 직원 서비스 등을 체크하고 별도 의견을 제시하여 설문지를 제출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유효기간이 지난 제품이 있거나 고기, 생선, 과일 등의 신선도가 떨어져 보이는 것도 지적하고, 서비스 개선에 대한 바람과 구비했으면 하는 제품도 제시하는 등 주부로서 매장에 바라는 의견들을 합법적으로 건의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비록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말이다.
이리하여 3개월의 시간이 끝났을 때 뉴욕 각 매장에서 활동했던 주부 모니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장을 찾게 된 이유와 소감에 대해 다들 적극적인 태도로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는데, 나만 제일 짧게 대답을 한 것 같았다. 속으로 밥이나 맛있게 먹고 가자 하며 앉아 있는데, 마지막으로 최우수 모니터 표창이 있다고 했다. 100불 상품권과 함께 플로리다 또는 포코노 직원 휴양지 무료 이용권을 준다는 말에 '와, 되면 정말 좋겠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이 호명되는 게 아닌가!
'다들 열심히 하셨을 텐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영광이...' 너무 놀랍고도 얼떨떨한 마음으로 표창과 선물을 받았다. 정말 기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특별히 잘한 게 있을까 싶었지만, 나중에 듣고 보니 기한 엄수, 설문지 내용, 충실도, 적극적인 활동성 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 미주 중앙일보 기자도 있었는데, 소감을 묻는 말에 "3개월은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지적한 내용들이 개선되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주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기회가 더욱 많이 제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잠시 나눈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는 나중에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요구했고, 나를 메인으로 별도의 기사도 작성해 주었다. 정말 주부 모니터로 활동한 작은 일로 이렇게 기사화가 되어 내 사진과 함께 신문지상의 한 구석을 장식하게 되었으니 참 가문의 영광이었다.^^
사실 주부로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며 당시에 일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여유가 없었지만, 그 가운데 시간과 노력을 조금 더 투자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좋은 기회를 만나 이렇게 좋은 결과까지 얻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보람되었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도 결혼한 뒤 비록 신혼이긴 했지만 '아줌마' 대열에 합류하고서 인터넷 조선일보에서 아줌마들의 칼럼인 '줌마클럽' 필진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우연히 보고는 아이디어를 짜서 글쓰기에 도전해 보았는데, 감사하게도 필진으로 뽑히게 되어 그 후 몇 달간 주부로서 겪게 되는 여러 상황 속에서의 소감들을 칼럼으로 차곡차곡 정리하며 인터넷 신문을 통해 공유할 수 있었다. 그중 이가 아파서 고생하는 가운데 경험하게 된 한 강남의 치과와 강북의 치과를 비교한 글인 '두 치과 이야기'는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담당자에게 제일 반응이 뜨거웠다며 이런 글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아마 좋았다는 그 강북의 치과가 어디냐는 문의전화들로 그런 뜨거운 반응이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게 큰 격려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주부 모니터'란 제도도, '줌마클럽'이란 칼럼도 다 그 맥이 끊어진 상태이다. 어쩌면 내가 마지막 기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바로 그 정확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감사할 뿐이다. 사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학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직장을 다니기도 쉽지 않고, 하프 타임으로 일할 기회도 찾기 쉽지 않다. 이 미국 땅에서 여전히 영어로 어려움을 겪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감이 없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또 이렇게 브런치를 만나게 되고 나의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또 내게 좋은 기회가 됨을 고백한다. 별것은 아니지만 내 소소한 삶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 많은 글들 중에서 어떻게 내 글을 읽어 주는 분이 있을까에 놀라기도 하며, 오늘도 힘과 용기를 얻는다.
이 자리를 빌어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