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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나 Dec 31. 2019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특수교육의 '특'자도 모르던 내가 미국 학교 특수교육 보조교사가 되다

한국에서 초중고를 다닐 때를 돌아보면, 장애를 가진 친구를 가까이 접할 일은 별로 없었다. 학교에 특수학급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동네 인근에서 특수학교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치원을 다닐 때 친구 오빠가 정신적 장애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집에 놀러 갈 때면 오빠의 남다른 행동들에 다소 무섭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때는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 그 시절 그 오빠는 학교를 어떻게 잘 다녔을까…


세월이 지나 어느덧 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데, 어느 날 우리 반에 한 여자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아이의 행동이 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는 괜찮다며 환영해 주었는데, 다른 아이들 틈에서 그 아이는 유독 잘 섞이지 못했다. 잘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한 아이의 행동이 남다르게 보였다. 하지만 반 전체를 가르치기 바빴던 나는 그 아이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주지 못했다. 몇 주 지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집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가 힘들어해서 쉬고 싶다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무지했고, 관심도 부족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세월이 더욱 흘러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미국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 낯선 땅에서 소수 민족으로, 언어 소통의 한계를 안고 살아가노라니 주눅 들고 답답할 때도 많다. 그럴수록 조금씩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떨치는 법을 익혀 갔다. 미국 학교 특수학급 어시스턴트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알게 되었을 때는 더 큰 용기를 내야 했다. '이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라는 의문을 내려놓고, 용감히 노크하였더니 취업의 문이 열렸다. 장애 학생들을 돕는 일이어서, 영어에 대해서도 더 관대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일하는 학교는 미국의 일반 고등학교이다.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반 학교 내에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위한 특수교육이 있으며, 특수학급의 형태 또한 다양하게 존재한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아이들은 특수교육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특수학급 혹은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일반 학교 안에서 모든 학생들이 함께 배울 수 있고, 장애가 있다면 그에 따른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미국 학교 특수교육 시스템이 참 좋게 보였다. 그 안에서 나 또한 아이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조금씩 배워 나갔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떠올랐다. 두고두고 미안함으로 남은 그 아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그 아이와 같은 또 다른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 미안한 마음을, 다른 아이들을 돕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메꾸게 되길, 또한 여기서의 내 작은 경험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말이다.


그 마음 담아,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특수교육’의 ‘특’자도 모르던 내가, 미국 학교에서 특수교육 현장을 접하면서 경험하게 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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