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 실습할 학교를 찾기까지

미국 교사의 길 (5)

by 박소나

1년여 동안 온라인으로 교사 자격증 (credential) 과정을 하나하나 이수하면서 마침내 교생 실습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남겨 두게 되었다. 최소 한 학기, 약 5-6개월 정도 학교 교생 실습을 나가면서 때마다 리포트를 써야 하고, 동시에 CalTPA라는 시험(Performance Task) 2개를 통과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와도 같은 시험에서는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배경 지식, 수업 계획과 실습, 피드백 등의 답을 적은 리포트와 더불어 실제 수업의 일부를 담은 동영상들도 포함한다.


이 쉽지 않은 관문을 잘 통과하려면 사부가 되어 줄 좋은 지도교사를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다른 경험자들의 리뷰를 보니, 좋지 않은 선생님을 만나서 고생만 하다가 중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더군다나 나는 이민자로서 영어도 부족하니 부디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구사하고,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친절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원래 교생 실습을 나갈 학교 및 멘토 교사와의 매칭은 후보자가 아닌, 크리덴셜 과정을 제공하는 대학의 몫이다. 하지만 후보자가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면 본인이 직접 그 학교에서 구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아는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교생 실습을 할 수 있다면 더 익숙하고 편리할 것이기에 나도 이 찬스를 써보기로 했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돕고 있는 수학반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보았다. 그랬더니 흔쾌히 Yes! 해주는 게 아닌가. 아, 역시, 오래 일한 보람이 느껴졌고,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학교 걱정은 한시름 던 줄만 알았는데, 복병이 있을 줄이야. 그 선생님만 허락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수학 부서를 담당하는 부교감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일대일 면담에서 부교감은 내가 하려는 그 반은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는 학생들이 많은 반이고 그래서 특수교육 선생님과 co teaching을 하는 반이어서 교생을 받기 힘들다며 거절했다. 이유가 그렇게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전에도 교생이 가르친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건 예외였다며 단호하게 말하는 그 백인 교감 앞에서 어떻게든 어필해 보려는 내 영어는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사정을 안타까워한 다른 동료들과 선생님들도 자리를 알아봐 주며 힘써 주었지만, 결국 상황이 풀리지 않았다.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그동안 5년여간 이 학교에서 성실히 일하며 늘 좋은 평가를 받아왔기에 교생 자리는 잘 구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이 자리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걸 보면서 정식 교사가 되기 위한 벽은 참 높겠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는 사이 데드라인이 성큼 다가왔다. 겨울방학 전까지 어떻게든 구해야 했다. 그래, 원래 학교를 구하는 건 내 일이 아니지. 나는 대학을 믿어 보기로 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학군 세 군데를 희망했고, 담당자는 각 학군의 HR에 교생 자리를 알아봐 주기로 했다. 그런데도 도통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더 먼 거리도 감수하겠다고, 학군을 늘려서 더 알아봐 달라고 했다. 어느 학군은 후보자가 직접 찾아야 한다고 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넣고 이메일을 넣어 보았지만 역시 소식이 없었다. 이대로 학교를 구하지 못하면, 다음 학기로 넘어가는 것이다. 더욱이 나는 벌써 일하던 학교 측에 교생 실습을 이유로 그만둔다고 말한 상태였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저를 받아 줄 학교를 허락해 주세요.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제가 잘 배워서 좋은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제발요…


그때 문득, 동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에 낼 숙제 때문에 본 동영상인데, 시카고에 있는 학교로 실습을 나간 교생들의 이야기였다. 빈민가의 위험한 지역에 있어서 다들 기피하는 학교였는데, 그곳에서 헌신적인 교사들과 좋은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고 새내기 교생들 또한 그곳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사명을 찾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내 마음에 무언가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한 지역이 떠올랐다. 내가 사는 도시 바로 옆에 있지만 내가 기피했던 곳. 범죄율이 높고 위험한 지역이라 생각했기에 아예 후보에서 제외했던 학군이었다. 나는 내 선입견을 반성하며 당장 대학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부디 그 학군도 알아봐 주세요. 그랬더니 그 학군에 여러 명을 보낸 경험이 있다며 바로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는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내 멘토가 되어 줄 선생님을 구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던 일이, 한순간에 이루어졌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이란! 그야말로 라스트 미닛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 학군의 HR 담당자는 오늘 이후면 휴가를 떠날 예정이라 그다음 날이면 연락도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바로 그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검색해 보았다. 놀라운 건, 나의 멘토가 되어 줄 선생님은 그 학군에서 최고의 교사로 뽑힌, 사진만 봐도 상냥하게 생긴 여자 선생님이었다. 학교 또한 그 학군에서 제일 학업이 뛰어난 곳이라고 하니, 다 내 생각을 뛰어넘었다. 학교도 집에서 약 20-30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나는 하늘의 선물임을 확신했다. 그동안 교생 자리를 구하느라 너무 힘들었던 노고들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선생님이 먼저 연락을 해서 방학 전에 학교에서 보자고 했다. 땡큐, 땡큐. 이 고마운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 나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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