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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quaMarine Mar 28. 2019

#01. 아빠가 되다

우리 첫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도 다시 태어났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날 무렵,

만삭인 와이프가 잠을 잘 못자는 것을 알면서도 늘상 느껴지는 피곤함에 나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잘 자곤 했다. 많이 얄미웠을거라 생각하면서도 잠에 약한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와이프가 차분하게 말했다.


"나, 시작되는 모양인데. 이슬이 비치네..."


"...이슬??그게 뭐야?"


"....우리 숑숑이가 나올라고 하는 것 같다고"


"응?????뭐라고?? 아파?진통이 와?어떻해?병원가?지금???"


"살살 아프긴 한데 괜찮아. 주기적으로 진통이 오면, 병원에 오라 그랬던거 같은데.."


"음......그럼 기다려봐야하는건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슬이 비친다'는 것은 출산의 징후 중 하나다.

출산 진통이 시작되기 전 발견되는 소량의 출혈, 그것을 '이슬'이라 한다.


진통이 심하지 않다는 와이프에 말에 긴장했던 나는, 옆에서 잠시 정신줄을 잡고 있다가 그만...

잠들어버렸다. 그리고..아침까지 잤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와이프가 진통이 심해졌다는 것을 인지했다.


"뭐야? 언제부터 아팠던건데? 날 깨워야지..."


"(이를 꽉 물며..)깨웠거든..? 난 한숨도 못잤는데..마누라 진통 오는데 잠이 오냐..?"


"....미안"


나중에야 깨달은 거지만 이 진통이 오는 와중에도 우리 와이프는 나에게 아침을 차려주었다.

둔하디 둔한 나는 그 밥을 맛있게 먹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좀...)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의 말이 심히 충격적이였다.  


"어머, 5cm 정도 열렸는데요? 바로 준비하세요."

"밤새 관장도 자연적으로 다 된것 같네요. 바로 갑시다." 


...진심 충격이였다.

와 난 어찌 이리도 둔감하단 말인가. 아니 우리 와이프가 진통을 잘 참나?

평소에 참을성이 좀 특출나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찌 이럴수가...


그렇게 시작된 출산 진통과의 싸움.

와이프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일정한 시간 간격을 사이로 정말로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갔다.

진통이 찾아왔을 때는 지옥을 경험했고,

그게 언제왔었냐는 듯 다시 진통은 사라졌다.

그 지옥과 천국의 반복 속에서 난,

안절부절 못하며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의사인지, 간호사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무통 주사를 권했다. '이걸 맞으면 좀 덜 아플꺼예요.. 그래도 아프긴 아프지만..' 라며.. 

아무일 아니라는 듯 매우 쿨하게 말하고 퇴장하셨다.


그러나...옆에 계시던 장모님은..확고하셨다.


"애기한테 안 좋아. 주사 맞지 말고, 그냥 낳아"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냥 주사 놔달라고 소리쳤음에도

장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시고 입을 지긋이 다물고 계셨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잡은 손에 힘을 더 쥐어줄 뿐.


그렇게 몇시간의 진통 끝에 거짓말 처럼 첫째가 태어났다.


우렁차게 울던 울음소리, 예상보다 더 작았던 몸집.

자연 분만으로 인해 살짝 눌린 머리.

(자연분만을 권장하는 이유는 출산 시에 아이도 밖으로 나올려고 기를 쓰기 때문에

 이게 아이에게 뭔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믿긴 어렵지만...)

그리고 출산을 한 엄마 품에 안겨서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던 아기.

정말 작았는데..

처음으로 내 두 손에 아가를 들고 안았던 날.

난 조용히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렇게 첫째가 태어난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한 남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나의 아빠되기"는 시작되었다.

아고아고 졸려요?우리 아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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