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identity), 정체(stagnation)
기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시나요? 일기라는 말은요? 나는 늘 물음표를 달고 사는 사람이지만 가끔씩은 스스로 모순적인 말에 되물음 하곤 한다. 이를테면, 기록이나 일기라는 말에 의문을 표하지만 그 자체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 같은 거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헤어날 수 없는 공허 속에 몸을 던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내가 저 심해로 몸을 날리기 전에 찾아와야하는 것이다. 우주 속에서 미아를 찾는 건 아주 아주 어려우니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고, 나는 저 끔찍한 공허로 조금씩 떠밀리고 있다.
모순에 대해 조금 더 말해볼까. 나는 난잡한 글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휘갈긴 글을 전시해놓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는 어떤 의미도, 패턴도, 심지어는 앞뒤가 맞는 문장도 전시해둘 필요가 없는 것이 목적이자 정체성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을 나열해놓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의식의 흐름과도 같이. 우리들의 의식이라는 것은 김밥에서 시작해서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이러한 글을 쓰면서 사이사이 의미를 담고, 진심을 담고, 거짓들 사이에 진실을 그럴듯하게 숨겨놓는다. 때론 수정이나 정정 같은 일도 한다. 어째서? 난잡함이 좋아서 시작한 일 아닌가? 말도 안 되는 문장들에 만족하지 않나? 그럴듯해 보이는 가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왜? 어째서?
그 모순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늘 모순을 달고 살고 있다. 가끔은 모순적인 나에게 환멸나기도 한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모순적인 자기 모습을 그냥 이해해주지 못 하는 거야? 나는 그 질문에 다시 한 번 질려버리곤 한다.
반복되는 패턴, 물음, 그리고 정해져있는 답. 결론은 나지 않는다. 나아가고 싶으나 나는 멈춰서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그 조차도 헷갈리는 시점에 마주하고 있다.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이야기들을 그냥 버려버릴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쉴 새 없이 생산되는 쓰레기 더미를 껴안고 사는 중이다. 머뭇거려본다. 알지 못한다.
꽃이 아스라해진다. 영원이라는 말을 베어 문다. 나는 더 이상 영원을 믿지 않음에도. 그럼에도. 아아 끝까지 모순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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