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스코페 여행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선 알렉산드로스 동상과 함께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머더 테레사가 생전에 했던 어록이다.
건물 곳곳에 테레사 수녀님이 생전에 남긴 가르침들이 새겨져 있다.
스코페가 자랑스러워하는 유명 인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스코페 신시가에 있는 머더 테레사 기념관에 들렀다. 이 기념관이 세워진 자리는 "Sacred heart of Jesus"라는 가톨릭 성당이 있었던 곳이다. 여기서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세례를 받은 이가 "Gonxha Bojaxhiu"라는 이름을 가진 머더 테레사였던 것이다.
기념관 안에는 그녀의 친필 편지나 인도 캘커타에서 입었던 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1979년 받았다는 노벨 평화상도 (아마도 사본)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머더 테레사 기념관을 지을 때 이웃나라 알바니아의 큰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스코페에서 태어났던 머더 테레사였지만, 그녀는 알바니아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는 오스만 튀르크 지배 시절로 사실 마케도니아나 알바니아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마케도니아 공화국 인구의 약 25%는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계 사람이다.
머더 테레사는 엄연한 알바니아 사람이라는 것이 알바니아의 주장이며, 이러한 이유로 기념관이 스코페에 생기는 것에 큰 반대를 하였다고 한다.
그녀를 추모하고 그가 남긴 숭고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국적이나 기념관의 위치를 정하는 것보단 더 중요할 것이다. 사실, 알바니아는 이슬람 국가이다. 머더 테레사가 주로 수녀로서 생을 보냈던 곳은 마케도니아나 알바니아가 아닌 인도였다.
기념관 3층에는 조용하게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른 시간에 방문한 탓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머더 테레사를 기리며, 소중한 가족과 함께 이 곳에 와 있게 해 준 고마움에 기도를 드렸다.
3층 기도실 창살은 물고기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의 형상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창살이 만들어내는 모양은 머더 테레사를 닮은 듯 경건하면서도 친절한 따뜻함이 전해졌다.
지금의 마케도니아는 외교적으로 주변 나라들에 고립되어 있는 모습이다. 현 마케도니아 정부는 불가리아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뉴스를 최근 미디어를 통해 전해 들었다.
먼저 국명 문제로 그리스와 가장 갈등이 크다. 그리고, 종교가 다른 알바니아계가 적지 않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고 한다. 알바니아계 사람들은 알바니아로의 통합을 원해 마케도니아 중앙정부와 극한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알바니아는 그들을 자신의 영토와 국민으로 통합하고 싶을 것이다. 현재 러시아의 크림반도(우크라이나에 속해 있지만, 러시아가 무력으로 점령) 합병 사유와 비슷한 상황이다.
불가리아는 오랜 기간 마케도니아를 지배했던 나라이다. 또한 대다수의 인류학자들은 마케도니아인을 불가리아인으로 분류한다. 불가리아는 공식적으로 마케도니아란 국가만을 인정할 뿐 민족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마케도니아인은 서부 불가리아인이며, 마케도니아어도 불가리아의 방언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는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힘이 강했던 지역이며, 유고슬라비아를 통일한 중심이 되는 나라였음) 시절에도, 그리고 유고슬로비아로의 통합 이전의 세르비아는 2번의 발칸전쟁을 치르며 지역의 맹주였던 불가리아를 견제하여야 했다. 공동의 적인 오스만 튀르크에서 벗어난 후에 세르비아는 불가리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마케도니아 지역을 지원한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엔 마케도니아 정교회를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독립시키고 불가리아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는 정책을 펼친다. (IS가 물러난 뒤,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고자 다투는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쟁과 비슷하다. 역사는 지역만 다를 뿐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시절 스코페는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대도시였다.
신생국이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완성시키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의 크루드나 카탈루냐처럼 민족국가로 독립하기는 더욱 어렵고 말이다.
마케도니아의 정교회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 성모 마리아 교회이다. 1843년 완공된 마케도니아 정교회로 건축가 안드레아 다마노브가 22세에 지었다고 한다. 1944년 큰 화재로 파괴된 것을 2008년에 4년의 공사 끝에 복구하고 현재 교회로 다시 사용하고 있다.
이젠 마케도니아 공화국을 떠나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주를 여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