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note Mar 13. 2020

16년 만의 첫 여행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인 건희와 전주로 첫 여행을 다녀왔다.

중학교 1학년 때 이후로 처음이니까 16년 만의 여행이 되겠지.

그동안 친구도 나도 말 못 할 사정이 많아 우리에게 여행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요즘처럼 누구는 여행을 업으로 삼을 정도로 쉬운 세상에 대체 왜?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해하겠지만 그냥 그런 사정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런 우리가 이번 생애 정말 여행을 가게 되다니.

나야 혼자고 같이고 틈틈이 여행을 떠나려 노력하는 타입이지만

정말로 내 친구 인생에서는 이번 여행이 수학여행 이후

살면서 경험한  여행이었기에 더욱 뜻깊었다.


무려 16년을 기다린 우리의 첫 여행.

우리가 도착한 날 전주엔 폭설주의보가 내렸다.

이번 주 내내 따뜻해서 겨울 내내 교복처럼 입던 패딩도 벗고 갔건만

가는 곳마다 비 아니면 눈이 주룩주룩.

어느 가게를 들어갈 땐 비가 왔는데 나오면 해가 떠있는 식의 뒤죽박죽인 날씨였다.

우리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날씨가 재밌다며 중학생 때처럼 눈바람을 맞으면서도 깔깔거렸다.

우산이 두 갠데도 굳이 하나의 우산을 나눠 쓰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뭐가 그렇게 웃겼을까?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우리는 날이 너무 추워 6시도 되기 전에 먹을거리를 싸들고 숙소로 들어와

뜨뜻한 한옥 방 아랫목에서 밤 12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근데 우리 오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엄청 많이 한 것 같지?"

친구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뺑뺑 도느라 풍남문만 지겹게 봤지 뭐. 다른 건 몰라도 풍남문은 절대 못 잊을 것 같지 않냐?"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시시콜콜한 얘기들로 그날 밤을 모두 보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연애 사업의 미스테리,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직장동료 이야기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는 수다거리.

그러다 잠깐 정적이 흐를 때쯤 "우리가 벌써 서른이라니 말이 되냐?" 괜히 한번 호들갑도 떨어보고

그렇게 우리의 1박 2일 첫 여행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은 눈이 너무 쌓여 겨우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했고,

우리는 밥 먹을 시간이 없어 터미널 바로 맞은편에 있는 전주 버전 김밥천국 같은 곳에 들어갔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뼈해장국에 갈비찜까지? 도대체 뭘 팔겠다는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던 식당에서

큰 기대 없이 콩나물국밥과 돈가스를 시켰고 맛이 꽤나 맛있어서 또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토록 어이없는 식당에서 국밥과 냉동 돈가스의 어이없는 조화라니!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터미널에서 헤어졌다.

건희는 서울로, 나는 안산으로.

건희는 먼저 떠나는 나를 배웅해주었다.

서울은 거의 15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는데도

집에 창문도 열어놓고 나왔다는 애가

일부러 나보다 늦게 출발하는 버스표를 끊었기 때문이다.


나와 건희는 이제 전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흰 눈을 떠올리겠지.

비빔밥도 아니고 떡갈비도 아닌 요즘엔 보기도 드문 펑펑 내리는 흰 눈을.

눈이 오면 콩나물국밥이 땡길지도 모른다.


유난히 눈 소식이 없던 이번 겨울 꽤나 인상 깊었던 폭설만큼 절대 잊을 수 없을

우리의 첫 여행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적친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