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서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by 화니샘

포스트 모던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냉소주의와 또 다른 전체주의, 그리고 병적인 나르시시즘이 이데올로기를 대체한다.

이데올로기의 근원은 가짜 의식이 아니다. 자신이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회현실 구조를 떠받드는 무의식적인 환상이다. 교사가 학생과의 관계에서 교사인 것도 모른 채 자신이 특별한 교사로 태어난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다.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모르면서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제시하는 목표를 내 존재 목표로 삼는이들이 늘고 있다. 갈등이 깊은 모순된 사회일수록 이런 환상은 더 잘 먹혀든다.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적대적 분열을 가리면서 완전한 분열되지 않는 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한다. 비전이 실현되지 않은 까닭을 장애물, 즉 외적 요인 물신의 탓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가지고 있는가?

학교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행복이 주어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 준다. 1등을 하면 그동안의 고통이 보상되고 더불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신분상승도 이루어진다는 환상...

그러나 환상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룰 수 없는 꿈 자체가 환상이다. 학교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 어떤 기능도 없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고 피라미드적 사회를 유지하는 인간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러나 그 환상을 이루어내는 상징체계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상징체계를 강화하고 보완한다. 미래사회 담론이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는 인재 양성이라는 상징체계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새로운 교육은 산업시대의 일꾼과는 다른 지식정보화사회의 일꾼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완화된 규율과 유연화된 교육과정의 수혜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소비사회의 병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간이다. 그들은 자신을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신체를 가꾸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하지만 소외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더 깊은 소비의 늪에서 허우적 댈 뿐이다.

이처럼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통해 구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포스트 모던 시대에도 여전히 사회질서는 유지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