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교사들의 숨겨진 욕망

소비사회의 적자들

by 화니샘

요즘 젊은이들은 소비사회의 적자들이다.

탄생부터 죽을 때까지 상품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들 앞에는 늘 신상품이 대기하고 있다. 명품 분유에 유모차까지 신상품에 열광하는 부모에 의해 맞춤형 소비자로 성장한다. 그들은 자신을 나타내는 법을 모른다. 오로지 소비하는 상품으로 자신과 타인을 구별할 뿐이다.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폰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어떤 게임을 즐기는지, 아니면 어떤 학원에 다니는지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인식한다. (대타자인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하는 욕망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욕망은 자본의 생산에 의존하고 생산은 충족되어야 할 욕망을 미리 예측하여 만들어낸다. 소비는 한없이 계속되고 그것이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 된다.


소비사회의 끝을 잘 보여주는 최근의 사건이 연예인이나 재벌 3세들의 마약 사건이다. (마약은 희귀성과 은밀함, 그리고 중독성 면에서 상품의 정점에 있다) 물질 사회의 풍요로움이 달성되는 순간 인간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행해진다. 더 이상 고생해서 만들어야 할 신세계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따라서 젊은이들이 그다지 해야 할 일이 없는 사회에서 그들은 불행하다.


풍요사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여유를 낳는다. 하나는 물질이고 하나는 시간이다.

물질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젊은이들은 그 여유를 어떻게 보낼까?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역설적이게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제공하는 환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각과 지각을 통해 인식을 얻는다. 그러나 시장이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일지를 먼저 알아차리고 마치 우리가 선택한 것처럼 누구나 좋아할 것을 미리 제시한다.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전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좋아하는 것을 제공 받는 꼴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비사회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고도화할수록 자본은 자신의 속성을 노골화한다. 불필요한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게 하고 쓸모있는 것만 취한다. 그래서 젊음이 찬양된다. 젊게 보이는 상품이 난무하고 건강 상품이 날개 돋힌 듯 팔린다. 건강한 몸매를 가꾸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며 자기 개발을 위한 소비 역시 인적자원의 효용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장려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본이 요구하는 소비 행위일 뿐 충족을 모른다.

현대인들은 소비사회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소비한다. 사치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지루함을 견디게 해주는 일종의 청량제다. 남들이 소비하지 못하는 것을 소비함으로써 그들은 지루함을 달래고 자신을 차별화한다. 새로움, 차별적인 것에 흥분을 느끼고 자꾸만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마약은 그런 의미에서 소비의 최종 종착점인 셈이다.


젊은 교사들이 킹덤을 구성해 몸짱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가 그들로서는 개성이라고 착각할 만하다. 그러나 이는 환상에 불과하며 결국은 공허할 것이다. 그들의 욕망은 근원은 결핍이다. 자신의 욕망이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대상에 집착한다. 자신의 몸을 가꾸는 것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길 바라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함께 토론해 보고 싶다. 제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에서 충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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