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저리 아름다운 눈 오시는 참에 밖으로만 나돌던
마음 갈피 쟁여 전설이라도 몸에 푹 익혀두면 좋으련만
하지만 또 어쩌나 재난은 대부분 없는 사람들 차지
부자나라 쓰레기는 저지대 사람들의 재난
길 끊겨 고립이라지만 실상은 자립이 사라진 때문
사통팔달 길 뚫고 무선전화 번개처럼 뚫어놓고도
길 없던 시절에는 없던 말 소통 소통부재가 소통하는데
하향 소통이다 모든 길은 빨대처럼 빨아들이는 대롱이다 "
- 백무산 <마음이 천재지변이다> 그 모든 가장자리 부분에서 인용
백무산 시인은 지금의 우리를 누군가 "몸과 마음이 일종의 천재지변"에 가까운 비상 상황이라고 표현했는데 너무나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우리는 번개처럼 빠른 무선 네트워크 시대에 살고 있다. 손가락 하나로 전 지구적 사건에 접속하고 실시간으로 '좋아요'를 누르며 타인과 결속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 산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냉정하다. 길이 사통팔달 뚫리고 기술이 정점에 달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과거에 없던 '소통 부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소통이 원활하다면 애당초 '소통'이라는 단어를 강조할 이유조차 없다.
오늘날의 소통은 대등한 나눔이 아니라, 시스템이 개인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대롱의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를 소비하고 ‘좋아요’를 강요받는 과정에서 개인의 내면은 자생력을 잃고 황폐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과 마음이 겪고 있는 일종의 '천재지변'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질 때, 대중은 거대 담론을 포기하고 각자의 골방으로 숨어든다. 이른바 '소확행'이라는 트렌드는 언뜻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불안과 공포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양식에 가깝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전시하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개인적 라이프스타일'은 대중에게 모방의 대상이 되지만, 이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개인의 우울을 '개인이 알아서 치유해야 할 문제'로 치부하게 만든다. 긍정의 심리학과 힐링 열풍은 이러한 시스템의 무책임을 은폐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소비자본주의가 설계한 긍정주의는 결국 시스템에 순응하는 '고분고분한 고립자'를 양산할 뿐이다.
시인은 말한다. "길 끊겨 고립이라지만 실상은 자립이 사라진 때문"이라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한순간도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의존적 고립' 상태에 빠져 있다. 시스템이 멈추는 순간 우리의 자립도 멈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요된 긍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냉철하게 분석하는 '이성적 비관주의'와 이를 돌파하려는 '실천적 의지'다.
아름다운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에서도 재난은 저지대의 약자들을 먼저 덮친다. 마음의 재난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의 골방에서 '소확행'을 즐기며 안도하기엔, 우리가 처한 소통의 진실과 미래의 불투명함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이제는 나를 끊임없이 소모하는 의존적 고립의 연결망을 끊고, 진정한 자립과 연대를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