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속에 숨은 편견과 오만
"당신에게는 친절하지만,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인간관계의 고전 같은 이 말은 사실 상대의 '급'을 나누는 오만한 시선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대하는 말과 태도를 보면 그 사람 내면의 품격이 어디쯤 와 있는지 단번에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서 작은 변화 하나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완고하게 붙어 있던 ‘잡상인 및 배달원 전용 출입구’라는 문구를 떼고, 그 자리에 ‘방문객 및 배송 기사님 안내’라는 표현을 적어 넣었다는 소식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부모이자 자식일 그들을 ‘잡(雜)스러운 상인’이나 통제의 대상으로 부르는 것이 무례하다는 주민들의 자성이 만든 결과였다.
사실 ‘잡’이라는 글자는 참 박하다. 잡초, 잡담, 잡음처럼 ‘불필요하고 시끄러운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에 사람을 붙여 ‘잡놈’이나 ‘잡것’이라 부를 때, 그 단어 안에는 이미 상대를 하찮게 여기는 무시의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문구 하나 바꿨을 뿐인데, 아파트 정문의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언어의 습관을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 ‘구별’과 ‘차별’에 익숙했는지 알게 된다. 특히 성별에 관한 표현들이 그렇다. 여전히 무의식 중에 쓰이는 ‘유모차(乳母車)’라는 말은 아이를 돌보는 주체를 여성으로만 한정 짓는다. 이제는 부모 모두의 역할을 담은 ‘유아차’가 자연스럽다. 또한, 특정 직업 앞에 습관적으로 붙이는 ‘여직원’, ‘여교사’, ‘여의사’ 같은 표현들도 마찬가지다. 직업의 전문성보다 성별을 먼저 앞세우는 이 단어들은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유물이다. ‘저출산(低出産)’이라는 말 역시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뉘앙스가 강해, 사회 전체의 현상을 짚는 ‘저출생’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방인을 대하는 그 사회의 온도를 체감하곤 한다. 우리 사회도 어느덧 다문화 사회로 깊숙이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언어 속에는 차가운 벽이 존재한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에는 은연중에 경제적 층위가 담겨 있고,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조차 때로는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이 되곤 한다. 특히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 대신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용어를 선택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동남아 사람’이라 뭉뚱그려 부르며 편견 어린 시선을 던지는 순간, 그 너머의 사람은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격체 대신 편견의 숫자로만 남게 된다.
내면의 품격을 높이는 일은 그리 거창한 데 있지 않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사람이 우선’이라는 마음과 ‘누구나 평등하다’는 정신을 꾹꾹 눌러 담는 것. 그것이 진짜 멋진 어른의 모습 아닐까.
오늘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햇살이 되고, 나에게는 깊은 품격으로 되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