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스포츠 경기든 영화든 우리는 본능적으로 언더독(Underdog)의 반란과 승리를 응원한다. 그러나 스크린 밖 현실로 나오면 이 '인지상정'은 기묘한 변주를 일으킨다. 현실의 대중은 약자에게 오히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씌워 배제하고, 국가나 기업 등 강자의 논리에 자신을 투사하며 그들의 위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저임금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과도한 이익을 재분배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성격을 띠지만,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은 이를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규정하는 데 머물러 있다.
복지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보편적 복지나 기초생활보장 확대 논의가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약자들에게 '무임승차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강자가 누리는 수조 원대의 세제 혜택은 '투자 활성화'라며 관대하게 넘기면서도,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은 '포퓰리즘'이자 '도덕적 해이'라며 날을 세운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서슬 퍼런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 잣대가 현대 사회의 새로운 규범이 된 듯하다.
현실과 가상 세계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이중성은 인간 본성과 환경의 충돌에서 기인한다. 인류는 오랜 시간 자연과의 투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특히 여성이나 아이 같은 무리 내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약자를 돕는 마음이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 된 이유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대다수가 비슷한 인물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현상은 이러한 보편적 본성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경쟁 사회는 이 본성을 억누르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논리가 지배하면서, 무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강자의 편에 서는 것이 개인의 생존과 이익에 유리하다는 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생활을 통해 은연중에 몸에 밴 이 '생존 편향'은 결국 강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냉담한 사회 풍토를 고착화시켰다.
결과적으로 현대인은 영화 속 약자의 시련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현실의 약자가 겪는 구조적 모순에는 철저히 강자의 시각을 대변하는 모순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본연의 인지상정을 상실하고 오직 효율과 생존의 논리에만 매몰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단면은 실로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