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관객 곧 천만 달성...

봉준호 감독에 대한 해외의 반응이 뜨겁다

by 화니샘

영화 <기생충>의 국내 관객수가 지금 추세로 가면 곧 천만을 넘길 것 같다.

초반의 기세로 보면 금방 천만을 넘길 것 같았는데 작품성과는 별개로 딱 떨어지는 결말이 없다는 점이 대중적으로 어필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듯 하다. 그렇지만 해외에서의 반응은 뜨겁다. 프랑스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수립하고 있고 평단에서도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 평단의 반응을 보면서 ‘예수님도 자기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씨네21에 소개된 글만 보아도 그렇다. 해외 평론가들은 그의 영화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다양한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천재성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평론가들은 그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칭찬하지 않는다. 국내 언론들은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에만 환호할 뿐 그의 놀라운 재능에 대해서는 고작 디테일에 강하다는 정도로만 언급할 뿐이다.


“그가 손대는 모든 것은 금으로 변한다”는 <카미에 뒤 시네마> 평론가 뱅상 말로사의 말이야 말로 참으로 시의적절한 표현이다. <기네마준보> 평론가 아야코 이시즈의 말대로 그는 늘 근사한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늘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근사하게 만드는 건 더욱 힘들다. 그런데 재미있으면서 근사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봉준호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인의 추억> 이후 그의 영화는 진화를 거듭해서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이제는 봉준호장르라는 말은 낯설지 않을뿐더러 하나의 장르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장르 영화는 미국의 헐리우드 시스템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영화의 오락적 기능에 눈뜬 미국인들은 1930년대부터 헐리우드 제작 시스템 안에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영화들을 대량 생산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은 상업적 상투성으로 인해 영화 비평가들에게는 논외로 취급받았다. 그러던 것이 195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으로 인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평론가였던 앙드레 바쟁은 “심각한 주제만 반복하는 유럽 영화보다 오히려 정평이 나 있는 시나리오의 진부함이 작가의 개인적인 기대에 훨씬 더 많은 여지를 남긴다.”며 미국의 대중적인 장르영화에 지지를 표했다. 작가주의 비평가들은 히치콕, 존 포드 등의 미국 감독들을 언급하면서 독특한 관점으로 주제를 반복한다는 점을 들어 그들이 주장한 작가주의와 결부시켰다. 이로써 장르영화는 새로운 탐구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영화 장르는 구체적으로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을까? 누벨바그 비평가들은 특히 장르의 변형적 속성에 주목했다. 그것은 영화 장르의 관습이 꾸준히 도전받고, 그럼으로써 변화하고 스스로 재정의하는 것에 있었다. 이러한 장르의 변형성은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해서 확장하며 변형하는 것이었다. 봉준호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봉준호는 기존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장르를 창조하고 변주하고 확장시켜 나간다. 그가 창조한 삑사리 아트는 그의 장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열린 결말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은 다른 영화들처럼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듯 쉽게 결론을 내지 않고 다음 영화에서 그 주제의식을 연결해 간다. 그러면서 슬쩍 우리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냐고....



봉준호 감독은 낯선 곳이 아니라 매우 친숙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무척이나 익숙한 세상인데도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그곳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야코의 말대로 박사장 부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했고 무엇이든 연줄에 기대지 말아야 했다. 기태는 자신들이 반지하에서 탈출하면 다른 누군가가 반지하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기생충>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조금은 어리석었지만 그렇다고 악인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딜레마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면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슬펐다면 그건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봉준호 감독은 우리를 쉽게 놔두지 않는다.


너무 영리해서 얄밉기 까지 하지만 곧 쌍천만 감독으로 등극한다니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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