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말하기
교사로서 30여년을 살아온 덕에 말에는 어느 정도 자신 있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 하는 것이 어렵고 소통이 점점 더 힘들어 진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나이 들어서는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슬프지만 더 설득력 있고 실감 있게 다가온다.
교사는 말로 사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교사에게 말은 생명이요 근원이다. 교사는 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말이 곧 인격이라는 것이 교사들처럼 딱 들어맞는 경우도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왜 교사로서의 경력이 쌓일수록 말이 더 힘들어질까?
말을 잘 한다는 것과 소통을 잘 한다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가르치는 경력이 많아지면 말솜씨가 느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말솜씨가 좋다고 해서 소통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은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듣는 사람에게 내 진의를 잘 전달했을 때만이 소통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말 잘하는 사람일수록 소통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말 잘하는 사람은 듣는 것보다 자신의 말을 더 많이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흔히 대화를 잘하려면 3:2:1 화법에 따르라고 한다. 3번 듣고, 2번 맞장구치고, 1번 말하라는 것인데 대화와 소통에 있어서는 하는 말보다는 듣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말하기와 듣기의 비중은 어느 한 쪽으로 너무 치우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물론 위로와 격려의 대화라면 듣는 것이 더 많을수록 좋다. 그 때는 말하는 것이 2라면 듣는 것이 8이 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사실 말의 핵심은 정보의 전달이다. 인류가 말을 사용한 것도 정보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여러 가지 몸짓이나 소리로 소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달력에서 언어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당연히 인류는 우수한 소통 수단인 언어, 즉 말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도 소통은 늘 어려운 과제다. 대화의 상대가 변덕스럽게 변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어렵고 힘든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양한 언어 기술과 전달 도구가 지금처럼 발전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오늘날처럼 소통과 관련한 과학적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예는 없었다. 그럼에도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세대 간의 소통 단절, 민족 간의 분쟁, 공동체 사회에서의 갈등은 인류가 직면한 소통부재의 단면이다. 그만큼 소통은 쉽지 않은 문제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가르치는 일이 곧 소통이라면 그만큼 예전에 비해 소통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잘 가르치는 것이 모든 교사의 소망이라면 소통을 잘 하고자 하는 마음 또한 교사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소통은 가르치는 것보다도 사실 더 어렵다.
소통은 학생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어떤 아이와 관계를 잘 맺어졌다면 그 계기와 과정이 어떠했는지, 관계가 나빠졌다면 그 원인과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아이들이 열정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교사는 열정을 키워주고 싶어 할 것이고 꿈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줄 것이 있어야 한다. 교사에게 꿈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교사가 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너무 무기력해서 힘들다고 말한다면 이는 정말 그 아이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런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하는 나의 공포가 문제일까? 이는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만일 자신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공연히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흔히 하는 푸념 중 하나가 “예전 아이들은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이 놀 줄을 몰라”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잘 살펴보면 말 속에 기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잘 놀지 못한다는 말에는 아이들이 잘 놀기를 바라는 기대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로 소진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자신이 기대하는 실체를 이해하면 화를 낼 필요도 없고, 상처 받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정받는 교사가 되려면 요즘 아이들이 어떤지를 이해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흔히 말하던 “옛날에는 이랬는데, 혹은 요즘 애들은 왜 이래?”라는 말과는 이별해야 한다. 예전에 경험했던 학교의 관계 방식을 지금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보다는 요즘 아이들이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서 바람직한 관계를 만드는 법을 도와주는 교사가 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래야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학교생활이 행복해지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말이 그동안 아이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교사들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