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시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자기 자리가 있다. 다시 말해 다 존재 이유가 있는데, 정작 나 자신은 존재 이유가 불명확 할 때가 있다. 내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임을 문득 깨달은 순간 이 질서 정연한 세계에 끼어든 나 자신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어떤 고집이 내 안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원칙이 내 원칙이 되고, 그의 기분이 내 감정이 되고, 그의 무지가 내 지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재령 이 씨 종가의 그 존경스러운 가장은 나에 대한 자부심을 기르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부심을 토대로 나를 일으켜 세워 의미 있는 존재로 키워 주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나는 학자가 되거나 아니면 농사를 지으면서 평생 무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나의 운명의 비밀을 간직한 채 너무 일찍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다. 어머니는 오직 한 가지 말씀만 하셨다. “지 일은 지가 알아서 하거라” 그러니 나를 비롯해서 우리 형제 그 누구도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뭘 하려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유산이라도 남겼으면 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교대 가는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물질은 어느 정도 삶을 지배한다. 돈이 있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좀 더 명징해졌을 것이다. 세상에서 재물은 그 소유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강남의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니는 사람은 그 자체로 귀한 사람대접을 받는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과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과는 노는 물이 다른 법이다.
그런 물질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나는 티나는 것이 없었다. 반대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은 너무 명백했다. 나는 아무 부담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말을 따라야 할 사람도 아니었고, 책을 파거나 아니면 땅을 파야 할 사람도 아니었다. 사실 그럴 땅도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깃털 같은 존재였다. 그저 육체와 불화하지 않고 지내면 그만이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면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하루 세끼 먹는 의무를 다한 덕인지, 조상님의 보살핌인지 아무튼 큰 병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집에나 약골로 태어나는 아이가 한 명씩은 있는 법이다.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작은 형이 죽었고 나도 그럴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처지에서 서둘러 세상에 머리를 내밀었다. 덕택에 큰 형과는 터울이 좀 나서 엄마 젖을 한동안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질이 그닥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늘 비실댔고 크고 작은 병치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사병에 걸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거의 죽을 뻔한 일이다. 학교가 십여리 길로 제법 멀었는데 한 여름에 혼자 뙤약볕에 걸어서 온 탓인지 집에 오자 맥이 탁 풀렸다. 그 자리에서 누웠는데 그 뒤로 얼마나 있었는지 엄마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내 이마를 짚어 보시더니 안 되겠다 싶었던지 내가 좋아하던 야채 튀김을 해서 가져오셨다. 한 입 넣어보긴 했지만 도저히 넘길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음식이 맛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다시 잠의 심연으로 빠져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엄마가 사발에 뭔가 시커먼 물을 담아 와서 내 입에 막 갖다 대려는 참이었다. 나는 갑자기 드라마에서 본 사약이 생각나서 움찔했지만 “이걸 먹으면 곧 낫는다더라”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리고 말았다. 엄청 써서 그 자체로 목 넘김을 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오이순을 갈아서 낸 즙이라고 하셨다. 어쨌거나 결말은 해피앤딩이었다. 오이의 어린순으로 만든 그 시커먼 액체는 말 그대로 명약이었다. 더위 먹은 데는 즉효여서 마신 지 얼마 안 되어 입맛이 돌아오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후에 들은 바로는 어머니가 여기저기 동네 어른들께 물어서 알아 온 처방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민간요법 중 하나였다.
그렇게 작은 고비들을 넘긴 후 나는 진짜 죽음을 보았다. 2학년이 되어서 얼마 안 되었을 무렵 하루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데 동네 입구에서 평소에 같이 놀던 동네 친구가 나를 보더니 “너네 이모 죽었데”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 씨~ 거짓말 마"하면서 혹시나 해서 집을 향해 쏜살같이 뛰어갔다. 집에 도착해보니 벌써 장례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른들이 모여 뭔가 의논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모 방에 분무기로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도저히 현실이라고는 믿기기 않았다. 오늘 아침까지 밥도 같이 먹고 학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던 이모가 한순간에 저 세상으로 가다니....
그러나 사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저 허망할 뿐이었다. 시집 못 간 처녀라 망우리로 간다며 서둘러 장송 차가 떠날 때까지 난 울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녀의 부재는 한바탕 소동이었을 뿐 금방 잊혀져 버렀다. 아무도 그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은 더 이상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이미 그때 나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