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
어린 시절엔 누구나 불안을 가지고 산다. 그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형이상학적일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을 달래기 위해 굳이 땀을 쏟을 필요는 없다. 나도 밤마다 꿈에 악당들이 나타났는데 늘 내가 구해야 할 소녀나 여인들이 있었다. 나는 쓰러진 소녀를 안고 불길을 벗어나 골목을 달리거나 물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때로는 진흙 속에 발이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는데, 악당이 쫒아오면 다음호에 계속~이라고 외치고는 일어났다. 이럴 때는 간혹 이불이 축축해져 있곤 했다.
그 시절에는 영웅들이 들끓었는데 내가 본 대표적 인물은 홍길동이었다. 그는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악당을 물리침으로써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가끔은 외세에 맞서 민족을 구하기도 했다. 영웅 중에는 재기 넘치는 박사가 만든 로봇도 등장했는데 거기에는 정의감 넘치는 내 또래의 소년이 로봇을 조종해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예쁜 소녀의 포옹을 받았다.
그 아류들도 많았는데 다 기억할 순 없다. 나는 당시 우리 사회가 가진 근원적인 복수심과 공격성의 발단이 뭐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복수자가 되어 악당을 무찌르고 있었을 뿐이다. 이건 시대의 산물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거기에 편승해서 슬쩍 나도 영웅이 되어 즐긴 건 사실이다. 지금도 나는 유물론자이면서 사실주의자이지만 여전히 상상을 즐기며 허구에 바탕을 둔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
내가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이웃 동네 백사장 가에 펼쳐진 가설극장에서였다.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신성일과 허장강이 출연하는 한국 고전영화였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이 가설극장이 들어왔다며 몰려가는 바람에 나도 따라가긴 했지만 표를 살 돈이 없어서 바깥에서 서성이다가 친구들과 몰래 뒤로 가 천막을 살짝 제치고 들어가서 보았다. 영화가 시작된 지 꽤 지나서 줄거리도 몰랐지만 신기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뒤에도 가설극장이 들어설 때마다 같은 시도를 해보았지만 매 번 들어가는데 성공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작은 아버지 댁에서 식당 일을 거들면서였다. 식당 옆이 극장이었는데 문화극장이라고 개봉관이었다. 사촌동생이 그 극장 기도를 보는 아저씨와 친해서 검표를 마치고 영화 상영이 시작될 즈음 우리를 그냥 들여보내 주었다. 그래서 첫 시작 장면은 놓쳤지만 꽤 많은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벤허> 같은 인기 외화는 사람이 많다고 들여보내 주지 않아서 중간에 기도 아저씨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려 몰래 들어가 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영화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 속에서 이 새로운 예술이 우리 모두의 것이자 내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정신연령이 같았다. 비록 영화가 나이는 조금 많았지만 내 수준에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공들의 시련에 아파했고 그들이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을 때 가슴이 벅참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는 나에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을 키워주었다. 주인공이 걸어가는 길에 아무 것도 없어도 음악 소리를 들으면 거기에 악당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주인공이 그 악당을 물리칠 것이라는 것도 미리부터 알 수 있었다.
나는 영화가 나처럼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랐다. 나의 소망대로 영화는 이후에도 진보를 거듭해서 나와 같은 유년기를 공유하고 있다. 지금껏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