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모든> / 세오 마이코

by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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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모든>은 어느 날 예상치 못하게 PMS 증상이 발현되면서 한 달에 2-3일은 화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려버리는 후지사와, 사람이 많은 곳이나 버스, 지하철에서 급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키는 야마조에가 당연했던 일상을 잃어버리고, 낙담하고, 그러다가 또다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즐기는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다.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병을 진단받은 후 직장을 잃고, 연인과 친구를 잃고,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확신과 삶의 가능성을 잃어버렸다. 여러 가지를 잃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들은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 무언가에 미치도록 몰두하고 싶은 마음, 화과자와 바베큐를 먹고 행복하다고 감각할 수 있는 마음, 영화를 본 뒤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렸다.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마음을 잃게 되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결과는 그 무엇도 좋아할 수 없게 되고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큰 상실을 마주한 뒤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뭘까? 잃어버린 것과 똑같은 것을 되찾아줄 수도 없고, 잃어버린 것이 별 게 아니었다고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부정할 수도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할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은 그대로 자연히 두되, 새롭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이든. 말은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 인상깊게 보았던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에는 중학교 동창으로 인해 살해당한 여동생의 오빠 히로키가 상실 후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찾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거 있잖아요. 인체 모형요. 실험실에 있는 거요. 옛날에 아키가 죽고, 그 인체 모형을 보며 생각했거든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인체 모형에는 심장, 뇌, 폐나 위장, 간장 다 있지만 마음은 없잖아요. 저도 인체 모형이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후미야도 그렇지 않을까요? 마음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대화가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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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입니다. 후타바 씨, 전화주세요. 히로키입니다. 저번에 한 말인데요. 마음이 없는 인체 모형이요. 생각해보니까요.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마음은, 마음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것 같아요. 전 아키에게 마음을 받았어요. 아버지에게 마음을 받았어요. 엄마에게 마음을 받았어요. 그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서 마음을 받는 거에요. 그게 마음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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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 씨, 당신에게서도 받았어요. 당신한테 마음을 받았어요.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복수보다 더 소중한 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갈게요.

<그래도 살아간다>, 히로키


히로키가 후타바를 좋아하게 되면서 마음을 되찾았듯, <새벽의 모든>의 주인공인 야마조에도 후지사와 보내는 시간, 나누는 대화,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게 되면서 마음을 되찾는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상실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 상실에 익숙해지기까지 필요한 시간의 절대적인 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외부에서 어떠한 조력, 조언, 도움을 건낸데도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결국 밖으로부터 단절되어 혼자 이겨내야 하는, 슬픔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무력감과 외로움, 이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사라지게 해달라는 소망, 모든 것을 다 내던져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시간. 야마조에에게도, 후지사와에게도 견뎌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벅찼던 각자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단절되었던 바깥의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연결의 과정에는 다른 때보다도 무모함과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고 갑작스러울지라도 일단은 다가가서 문을 두드려보는 무모함. 후지사와가 회사에서 야마조에의 공황 증세를 눈치채고 냅다 가위와 미용용품, 청소용품을 들고 머리카락을 잘라주러 집에 찾아갔던 것처럼. 후지사와의 그 시도는 야마조에의 성격이나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세련되거나 센스 있는 시도는 아니었다. 먼저 원한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런 뜻밖의 시도들은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워 미소를 짓게 하고, 그 순간의 웃음은 멀리 있다고만 생각했던 즐거움이 실은 언제나 자신 곁에 머물러 있었음을 일깨워 준다. 그렇게 웃을 수 있는 날들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아픈 기억을 아프게만 얘기하지 않을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이전보다는 좀 더 가벼워질 수 있다. 어떨 때는 퍼즐 한 조각의 무게로 상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순간도 생긴다. 가벼워지면 그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할 여유가 생기고. 마음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게 된다.


후반부의 야마조에는 자기 자신이 처한 현실, 상실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힘빠져 하기도 하지만, 후지사와를 돕거나 함께 대화하는 것, 회사의 일들을 계획하고 해나가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후지사와가 무모한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와줬기 때문에 야마조에도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이야기를 통해 예상치 못했던 진단, 이별, 죽음 등 상실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당신의 아팠던 날들을 알고 있다고, 아팠던 날을 생각하면 언제든 슬프겠지만 곧 웃는 날도 생길 거라고 조용한 위로를 건내는 것 같다.


간혹 그런 의견을 듣는다. 공황장애 덕분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둥, 환경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둥, 자기를 정말 생각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는 둥.

하지만 나는 매일이 우울할 뿐, 공황장애 덕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다. 병을 내세워 자기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선별하는 오만함은 없고, 나 자신을 돌아본들 증상은 경감되지 않는다.

"PMS도 좋은 점이 있어요?"
"음 글쎄요, PMS 때문에 요가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여러 가지를 많이 해서 몸이 좀 유연해졌나. 옛날에는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 지금은 다리를 180도로 벌릴 수 있어요."

후지사와 씨가 자랑스럽게 그렇게 말해서 나도 이렇게 대답했다.

"하긴 나도 공황장애 덕분에 밖에 나가지 않아서 돈을 헤프게 쓰는 일이 줄었네요. 월급은 확 깎였는데 저금은 늘었어요."

포인트가 어긋난 느낌도 들지만, 곤란한 상황에서 얻는 것은 사실 현실적인 요소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연성과 저금이라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새벽의 모든>, 야마조에, 후지사와



후지사와 씨가 잠들어 있던 감정을 일깨우고 말았다. 지난 2년 동안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어 한탄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괴롭다. 정말 그 사람은 괜한 짓만 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음악을 들으며 신났던 것,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음이 들떴던 것.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기양양했던 것. 모두 발작을 잊을 정도로 즐거웠다.

게다가 혼자 밤길을 걸어가는 후지사와 씨를 걱정한 자신을 보고, 아직 타인을 배려하는 감정이 남아 있어 안도했다. 지금 내게는 나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공황장애 환자니까. 타인과 깊이 관계할 일도 없으니까. 그래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밤중에 역까지 걸어가는 후지사와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스친 자신에게 왠지 모르게 안도했다.

<새벽의 모든>, 야마조에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면 듣기 거북하지만, 그냥 사람들이 기뻐하는 걸 좋아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신경을 써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나 자신이 좋아지겠네." "억지로 좋아할 건 없죠, 뭐.'

간식 시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면서 벚잎 떡을 집어들고 야마조에 씨가 말했다.

"정말? 자기를 좋아하는 게 기본이잖아요.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남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 자주 듣는데."
"그런 논리가 세상에 통용된다면 사람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속출할 텐데요. 후지사와 씨, 잘못 들은 것 아닙니까?"
"설마."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을 좋아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노래에서도 소설에서도 자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고 흔히 말한다.

"나는 내가 싫습니다. 겁쟁이에다가, 앞날도 불투명하고요. 좋아할 수 있는 요소가 없다고요."
"그렇게 비관할 건 없잖아요."
"비관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문어와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후지사와 씨를 좋아할 수는 있습니다." "에?"
"나 자신을 싫어하지만, 후지사와 씨를 좋아할 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니, 저기요. 다시 한 번 쉽게 말해 봐요."
"아, 내가 문어를 싫어하거든요. 징그럽고, 식감도 고무처럼 질겅거리고. 요리를 어떻게 하든 못 먹어요."
"그건 알겠는데, 나를 좋아한다고 했나요?"
"아니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 후지사와 씨를 좋아할 수는 있다고 했습니다."

좋아할 수는 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역시, 가능형으로 말했다. 좋아할 수는 있다. 그 말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다. 야마조에 씨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좋아할 수는 있다. 그런 기분이다.

<새벽의 모든>, 후지사와, 야마조에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는 잠들지 못한 채 밤을 보내면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이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시속 천 칠백 킬로미터로 지구가 자전하는 한은 밤이나 아침이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지구가 시속 십 일만 킬로미터로 공전하는 한 같은 밤이나 같은 아침은 존재하기 힘들다. 지금, 여기에만 있는 어둠과 빛. 모든 것은 계속 변한다. 하나의 과학적 진실. 기쁨으로 가득찬 날도, 슬픔에 잠긴 날도, 지구가 움직이는 한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새벽이 찾아오는 것이다.

영화, <새벽의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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