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료에 관한 뻔한 이야기

나는 번역가다 #7

by 와룡


지난 글에 이어 번역 계약 가운데 번역료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번역일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뻔한 이야기이지만, 이왕 《나는 번역가다》시리즈를 시작했으니 뻔하더라도 써보겠다.


번역료 책정에는 인세 방식과 매절 방식이 있다.

인세 방식은 판매량에 비례하여 정해진 비율의 금액을 받는 것이고,

매절 방식은 판매량과 무관하게 미리 정해진 번역료를 받는 것으로 보통 글자 수를 기준으로 책정한다.

일반적으로 매절 방식이 처음에 받는 돈이 많으며, 인세 방식은 판매실적에 따라 나중에 받는 돈이 많아질 수 있고 스테디셀러라면 평생 돈을 받을 수도 있다. (상세하게 쓰자면, 원작자와의 판권 기한에 따라 인세 수입 또한 유기한이 될 수 있다)

복잡한 설명은 그만두고, 실제로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책이 잘 팔리던 시절에는 인세 방식이 번역가에게 유리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책이 잘 안 나가기 때문에 매절 방식이 유리하다고 하지만, 초대박 작품은 당연히 매절보다 인세가 나을 것이다. 하지만 계약하는 작품이 초대박을 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확실치 않은 것을 가지고 모험하지 말고 안전하게 매절로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몇 년 전 GOTY를 휩쓸었던 게임 <위쳐 3>의 원작 소설 작가 Andrzej Sapkowski는, 개발사인 CD POROJEKT RED와 계약할 때 개발사의 로열티 제안(인세와 비슷)을 거절하고 일시불 지급(매절과 비슷)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후 게임이 대박 나자 뒤늦게 그에 상응하는 로열티를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었다. 그때 작가가 한 말이 “그렇게 대박 날 줄은 몰랐다"였다. (출처)

이 사건 뒤에는 작가의 예술적 자부심이나 게임 비즈니스에 관한 무지 등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아무튼 작가 자신도 처음에는 대박 날 줄 몰라서 안전한 쪽을 선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작가도 모르는 제 작품의 미래를 번역가가 무슨 수로 내다볼 수 있을까!


내가 번역료 체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쯤에 듣거나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매절 방식은 작가에게 손해를입히는 불공정 계약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매절이란, 작가의 창작물 혹은 번역가의 번역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을 통째로 넘기는 방식이다. '매절'이라는 말을 업계에서 흔히 사용하기는 하나, 이는 번역 계약서에 나타나는 공식 용어가 아니며, 계약서에는 일시불로 번역료를 지급하고 번역물을 출판사가 소유하게 되는 것과 유사한 내용이 적힌다. 이처럼 저작권 자체를 넘기는 계약이므로 인세 방식에 비해 초반에 받는 금액이 높은 대신,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 번역가는 자신의 번역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작품이 성공하더라도 막상 작가에게 큰돈이 돌아가지 않으며, 주로 힘없는 신인 작가가 어쩔 수 없이 이런 계약을 맺는 일이 많으므로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여겨졌다.


오래전에는 이런 매절 방식이 관행이었는데, 사회적 분위기가 저작권을 중시하는 쪽으로 옮겨가면서 매절로 계약했더라도,

"매절로 지급한 금액이 사회 통념 상 기본적인 인세보다 월등히 높지 않다면, 작가의 저작권을 인정한다"

는 판결이 나왔다.


번역계의 예를 들자면, 모 번역가가 A 출판사와 매절 계약했던 번역본을 A 출판사가 문을 닫은 후 B 출판사와 재계약 하자 A 출판사가 소송을 걸었는데, A 출판사가 번역가에게 지급한 매절 금액이 판매량에 따른 인세를 월등히 뛰어넘지 않는 한 번역물 자체의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을 A 출판사에게 팔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 났다.

2차 저작물 저작권이 무언가 하니, 번역으로 예를 들면 원저작권과 무관하게 번역가가 번역한 결과물 자체에도 저작권이 생기며 이를 2차 저작물 저작권이라고 한다. 이 저작권은 번역가에게 있으며 매절 방식 계약에는 이를 출판사에 판매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이를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 공개, 출판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은 2차 저작물을 누군가 무단으로 사용했다면 번역가 역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위 사건은 A 출판사가 번역물의 저작권까지 매절을 통해 샀다고 주장한 것을 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국내 게임계에도 잘 알려진 예가 있다.

<리니지>를 그린 만화가 신일숙 씨는 엔씨소프트가 게임 <리니지>의 파생 상품을 자신의 동의 없이 판매하자 원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리니지>는 자신들이 만든 2차 저작물이고 그 2차 저작물의 파생 상품은 원저작자와는 무관하다고 대응했다. 당시 신일숙 씨는 매절과 유사하게 로열티 없이 게임 제작권을 팔았는데, 게임 <리니지>가 대박을 터트린 데다 저작권을 지불하지 않은 파생 및 해외 상품까지 나옴으로써 사실상 저작권을 침해당한 셈이다. 이 사건은 소송까지 갔으나 사회적인 분위기에 놀란 엔씨소프트가 로열티를 지급했다고 한다. (출처 #1, 출처 #2)


다시 <위쳐 3>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비록 작가가 게임이 잘 나갈 줄 모르고 일시불을 요구했다가 뒤늦게 말을 바꿨다는 이유로 비난 들은 사건이기는 했으나, 법과 사회 통념 상 원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쪽이 강하므로 결국 지급하기로 결정 났다. 법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으니 단순히 원작자 보호 차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결정 난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지만, (더불어 법과 무관하여 게임사에서 원작가 존중 차원에서 결정하기도 했다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원작가가 승리했다. 따라서 얼토당토않은 요구가 아닌 이상, 계약 당시 인세 방식이었든 매절 방식이었든 간에 법적으로 처리한다면 상응하는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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