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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l 18. 2023

아메리카노 (상)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래도 살아야지”


아버지와 작별을 고하고 장례식장 밖에서 붉어진 눈가를 어쩌지 못해 가만히 앉아있던 내게 삼촌은 그래도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흙먼지로 뒤덮인 운동화에 후줄근한 잠바 차림으로 멍하니 있던 내게 몇 번을 광 낸 건지 모를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다가온 삼촌이 장례 치르는 삼일 동안 처음 건넨 말이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친척들에게 부고를 전해야 해서 오 년 만에 전화를 들어 유일한 아버지의 혈육에게 소식을 전하니 당장 오겠다고 한 이었다. 나와 너무나도 대조되는 그 모습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과 공황보다 위압감으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과 굴욕감이 강했다면 나는 불효자인 걸까.

“경수야 내 말 잘 들어라... 자살이라서 보험금도 안 나오는 건 너도 알지? 가뜩이나 형수님도 드러누우셨다며 그래도 집안에 판검사 하나 난다고. 네 동생 윤수 남은 학기 잘 마치게 도와줘야지. 듣자 하니 만환가 뭔가 그림 나부랭이 그거 한다는 거 때려치우고 당장 돈부터 벌어라. 나도 내 자식들 유학비 뒷바라지하는 입장이다 보니 많이는 못해주고.... 이거 받아라. 이 정도면 부조금 없이도 장례식 비용이랑 당분간 버틸 생활비 정도는 될 거다. 네가 일 년만 고생해서 윤수 뒷바라지 잘해주면 윤수가 집안 잘 일으킬 거다...”


어깨를 힘주어 누르는 손이 꼭 그만큼의 짐을 더 얹어준 것 같아서 숨이 턱 막혀왔다. 줄담배를 피던 삼촌은 비워진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다 타들어간 담배를 버려 구둣발로 비벼댔다. 멍하니 구둣발에 밟힌 담배꽁초를 보니 어쩐지 온몸이 좀 쑤시는 기분이었다.


형제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남의 이야기를 하듯 어머니 잘 돌봐라,라고 말한 삼촌은 그대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제차에 올라탔다. 굴욕감 속에서도 손에 쥐어진 봉투를 보란 듯이 던질 수 없어 움켜쥔 현실이 지긋지긋했다. 엄마의 병원비와 동생의 학자금 그리고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삶의 희망을 모조리 앗아가는 형벌로 느껴졌다. 아버지, 당신이 원망스러웠다.

발인이 진행되는 동안 화염 속에서 한 줌의 유골로 남은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가족을 등에 짊어지고 자랑스럽게 메고 다니던 넥타이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신의 목을 죄어왔구나. 잔인하게도 어린날 동생과 저금통을 깨서 선물했던 그 보랏빛 넥타이를 목에 매고 돌아가신 당신에게 오로지 가족만을 생각하며 버티던 지난 오십삼 년간의 삶을 욕되게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원망할 수밖에. 당신을 원망하면서 버텨내야 악과 깡으로 남은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테니.

집으로 돌아와 현관 앞에서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에 돌아오면 항상 가지런히 놓여있던 아버지의 구두가 없었다. 충격으로 앓아누우셔서 입원 중이신 엄마와 단기연수를 떠난다며 방학이 시작된 날 문자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떠나 장례식엔 오지도 못한 윤수를 나무랄 수 없었다. 삼촌 말대로 이제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윤수뿐이었다.


취업에 실패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뛰었었는데 술집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선 사정은 딱하지만 일이 바쁘니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며 새 아르바이트생을 구했으니 나오지 말라, 그동안 고마웠고 장례 잘 치르길 바란다, 같은 같잖은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이제 남은 아르바이트는 고깃집 서빙 하나. 나는 이제 나의 삶을 오로지 동생과 엄마를 위해 바쳐야만 했다.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영 칸이 없는 주사위. 더 이상 뒤돌아볼 수 없었다.  전진해야만 했다.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 향을 피운 뒤 멍하니 앉아 있다가 마른세수를 하고 간신히 일어나 삼촌이 남긴 봉투를 꺼냈다. 오만 원짜리도 아니고 한 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0이 많이 붙어있는 수표가 여러 장 겹쳐진 봉투. 입술을 구기며 봉투를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어쨌든 윤수를 무사히 졸업시킬 수는 있겠네. 그거면 되었다.

*


“경수야, 안 먹고 뭐 해?”


밥상에 올려진 빳빳한 조기 두 마리. 푹 익어 탁해진 눈깔이 어쩐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측은했다. 그 눈알에서 생명이 아스러지는 순간에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검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발버둥 치던 두 다리. 뒤집힌 의자. 애써 나를 향해 뻗어 보이던 팔이 고개와 함께 축 꺾어지며 아버지의 눈동자는 뒤집어졌다. 아버지의 목을 옥죄었던 보랏빛 넥타이. 덜덜 떨리던 손. 사이렌과 구급대원들.


젓가락을 놓치자 희마하게 경수야, 라며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엔 눈동자를 뒤집고 혀를 내민 채 온기를 잃어가는 아버지와 빌어먹을 보랏빛 넥타이 대신 수저 위에 올려진 빛나는 흰 조기살이 보였다.


 “괜찮니?"


대답 대신 겨우 한 술을 크게 떠먹었다.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끌한 음식물을 겨우내 삼켰다.


"윤수는 언제 온다고 연락 없었니?”

“바쁘겠죠. 올해부터 시험 친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오지 못한 동생을 탓할 수 없었다. 나보다 더 나은 녀석이 동생임을 나뿐만 아니라 친척들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도박으로 재산을 모두 탕진한 채 자취를 감췄다는 외삼촌도 윤수를 더 예뻐했었다.


삼촌마저 집안에 판검사 하나 난다며 윤수가 잘 되게 뒷바라지해 주라고 당부했다. 그놈의 출세가, 성공이 다 뭐라고. 죽으면 다 소용이 없는 것을. 물기 없이 메마른 조기 눈깔에 젓가락을 대고 휘젓자 눈알이 톡 하고 밥상 위로 굴렀다.


-괴기 눈알 파헤치면 불효자랬다.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고개를 드니 핏기 없는 파리한 모습으로 깨작거리며 밥알을 씹는 엄마가 보였지만 분명 조기 눈깔을 헤집는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었다. 환청인가 싶어 조기 반대편 눈알도 헤집어놓자 이번엔 엄마의 매서운 손이 내 손등을 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네 아버지가 뭐랬니. 먹을 거 갖고 그러지 말랬지.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환청이었구나. 엄마는 물 줄까, 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홀린 듯 엄마를 바라보다가 다시 조기를 바라보니 어느새 살이 잘 발라진 생선 가시만이 쟁반에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었다. 집안사람들 그 누구도 그런 미신 따위 믿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미신을 잘 믿었다. 물고기 눈깔을 파헤치는 것은 불효자가 되는 길이라며 음식에 장난치는 걸 싫어하셨었고 성인이 된 이후엔 이름에 ‘사’ 자가 들어가는 게 싫다며 한자 죽을 사(死) 자가 아님에도 이름을 개명하셨었다고 했다. 붉은색으로는 이름 쓰는 게 아니라며 이름을 붉은색 볼펜으로 적곤 했던 윤수를 나무라셨고 풍수지리를 다 따져가며 이사 갈 집을 알아보셨었다. 그 집에서 본인이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셨던 걸까.


문득 무등을 태워주며 집 안을 굽어보게 하던 아버지가 기억나자 다시금 잊고 있던 넥타이가 떠올랐다. 상주 역할을 하느라 친구에게 빌렸던 양복을 세탁 맡긴 뒤 찾아왔는데 아주머니가 착각하시고 색이 짙은 보라색 넥타이를 잘못 주셔서 바꾸러 가야 했다. 옷걸이에 걸린 보라색 넥타이는 아버지에게 사드렸던 그것과는 달리 더 짙고 어두웠다. 어두운 곳에서 보면 검은색과 착각할 만도 했다. 양복 셔츠에 걸려있던 넥타이를 잡아 빼곤 집을 나섰다.


마침내 겨울이었다.


속에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연민이 뒤엉켜서 검은 먼지 구덩이처럼 일그러져 있는데 밖은 순백의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한숨만큼 긴 입김이 뿜어져 나와 아스라이 사라졌다. 윤수가 내년 8월에 졸업하니 앞으로 9개월은 더 버텨야 할 텐데 일자리는 어떡하지.


 “야!”


등에 느껴지는 둔탁한 감촉에 뒤를 돌아보니 단발머리를 한 여자 하나가 눈을 뭉치다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눈을 던지고 야, 라니.


짜증 나면서도 무기력한 감정으로 인해 따질 기운도 없어 그대로 세탁소로 향했다.


 “이경수!”

“뭡니까?”


여자는 배시시 웃으며 뭉쳐놓은 눈을 내 쪽으로 던졌다. “


"기억 안 나나 보네."


여자의 말에 기억 속에서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봤지만 아무리 봐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잘못 보신 것 같네요."


무뚝뚝하게 대답하곤 고개를 돌리는데 나 반장인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이영?”


검은 단발머리가 여자의 귀 밑에서 찰랑거렸다. 여자의 모습에서 긴 생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조금은 뚱뚱했던 여자애 하나가 겹쳐져 보였다.


“쌍수를 해서 못 알아봤나? 아니면 살을 빼서 그런가?”


여자가 배시시 웃으며 내게 또다시 뭉친 눈을 던졌다.


“왜, 새삼 예뻐져서 반했어?”


뺨으로 날아온 눈덩이 때문에 피부에 찬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멍하니 영을 바라보는데 계속 눈을 뭉치며 내게 던지던 영이 맞췄다, 라며 속삭이듯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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