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배려
(이 글은 2024년 설 연휴 전날 쓴 글입니다)
내일이면 명절이다.
그 말은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거지 같은 회사는 그런 게 없다.(고 한다. 어제 회계 담당께 여쭤 봄. 이 회사 다니면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회사마다 다르고 어차피 그건 회사의 재량이니 왈가왈부할 순 없다만, 여러 회사를 다녀본 결과, 이런 회사는 거르는 게 좋다. 직원을 배려하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엠비씨에선 첫눈 오는 날, 눈이 많이 오니 차 밀린다고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물론 명절 전이나 크리스마스, 연말에도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것을 독려했는데 그건 우리 부서 장의 재량이었던 것. 뭐 어쨌든 굳이 큰 회사가 아니라도 직원을 배려하는 회사는 많다.
이 거지같이 작은 회사는 급여도 적으면서 그런 배려도 없다.
이틀 전에 실세에게 이번 달까지 하고 여기를 그만둔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는 사직 사유를 상세히 적었다. 아직 제출하진 않았지만 회계 담당의 말에 의하면 여태껏 그만둔 누구도 사유를 상세히 적은 적이 없다고 하니 내가 사직서를 제출할 때 실세는 적잖이 놀랄 거라고 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실세가 놀라건 말건 중요한 건 내가 그만두는 이유가 일신상의 이유, 개인 사정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둘 때 사유를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나를 위한 배려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일목요연하게 텍스트로 작성하는 것은 '나는 왜 여기서도 적응하지 못할까.' 따위의 생각을 할 수 없게 한다.
내가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다. 다른 곳도 다 똑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니다. 사회생활이 이러하다는 큰 틀이 같을지는 몰라도 세세한 요소들은 다 다르다. 그 요소들이 누구에게는 별일 아니고 누구에게는 이 회사를 근속할 이유가 없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오늘도 심장박동이 크게 뛰어 워치에 알람이 떴다.
실세의 출근시간 8시 45분.
오자마자 뜬금포 수정해야 할 것들을 몇 개 던진 게 그로부터 10분 이내.
괜찮다.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내가 원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조만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직하겠지. 급여가 세거나, 회사의 이름이 있거나, 일이 쉬운 곳. 내가 원하는 곳이다. 세 가지 중 2개만 충족되어도 충분하다. 아무튼, 회사가 얼마나 거지 같은지에 대한 시리즈는 투 비 컨티뉴.
덧붙임; 이 글을 쓰고 3시간 뒤에 잘림. 이 썰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