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2만 명의 지방에서 산다는 것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공기 좋은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인생이 너무 부럽다고 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살아보고 나서 얘기해.'
인구 12만의 작은 도시에서 10년 넘게 살아본 사람으로서 지방에서 사는 것의 장단점을 말해보자.
처음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면 불편하다 여기지 않았을 것들이 많았겠지만 부산에서 오랫동안 살다 타지로 이사한 경우라 나로선 생활의 변화가 매우 컸다.
장점
공기가 좋다 : 시골에 계속 살다 보면 공기가 좋다는 걸 느끼기 힘들지만 대도시의 미세먼지와 매연을 맡다 다시 시골로 돌아오면 풀, 흙, 바다 내음이 온 동네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된다. 자연과 함께라는 기분이 들어 잠깐의 산책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조금은 낮아지는 느낌이 든다.
음식이 맛있다 : 제철 음식, 지역 특산물 등을 훨씬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특히 바다와 가깝다면 더욱 그러한데 서울에서 회, 해산물 등을 먹어보고 확실히 느꼈다. 아무리 신선한 수산시장이라 해도 현지 생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
동선이 짧다 : 끝에서 끝까지 자차로 이동한다면 생각보다 멀지 않으며 생활 반경 위주로 움직인다면 거리는 더욱 짧아진다. 그렇다 보니 집과 회사까지의 이동거리도 짧아 출퇴근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4. 저렴한 물가 : 물론 소도시라고 해서 물가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진 않지만 서울보다는 저렴한 것들이 많다. 집값도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 기준으로 30평대 4억 정도인데 서울에 비하면 뭐, 저렴한 수준이긴 하다. 물론 구축 아파트라면 1억 대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
5. 소수의 빌런 : 도라이 총량의 법칙이랄까. 인구가 적은 만큼 이상한 빌런도 적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단점
선택의 폭이 좁다 : 대도시엔 흔히 있는 프랜차이즈 같은 것이 별로 없다. 12만의 도시, 그곳엔 아직도 버거킹, 홈플러스, kfc가 없다. 종합병원을 비롯해 개인병원도 많지 않은 편이라 괜찮은 병원을 골라가는 것이 아니라 급한 마음에 일단 거기라도 가야 한다!는 개념으로 치료받는 경우가 많다. 4d, 스크린 x 같은 특화관이 없고 교보문고 등의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 없다. 백화점도 당연히 없기 때문에 사고 싶은 브랜드의 물건을 구매하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그나마 가까운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 겹치는 버스 노선이 많고 버스가 닿지 않는 동네도 있다. 자차로 15분 거리도 버스로 40분이 넘는 경우가 많아 불편하다. 통영 기준으로 아직은 ktx 등 열차가 없어 윗지방으로 갈 때는 고속버스나 자차로만 갈 수 있다.
취업할 곳이 없다 : 큰 기업들이 없기 때문에 취업할 곳이 없다. 대부분은 공무원과 소상공인 위주로 경제가 돌아간다. 좋은 자리가 있다면 알음알음 아는 사람 위주로 채용되는 경우도 많아 빽이 없는 사람이라면 취업이 더욱 쉽지 않다.(능력이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지원했다는 가정하에, 쩌는 능력보다 중요한 건 연줄이다) 딱히 공장이랄 것도 없어서 당일알바가 어렵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안다 :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말이긴 하지만 부산에서 살다 12만의 도시로 왔을 때 여기가 얼마나 지역사회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어느 날은 마트 내 주유소에서 주차를 했다. 다음 날 우연히 마주친 얼굴만 아는 동네 아주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마트 갔다 왔죠?' 굳이 동네 주민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1~2명만 거치면 아! 걔가 내 친구, 선배, 후배, 동네 사람, 엄마 친구, 사촌인데요!라는 말이 나온다.
문화생활을 하기 쉽지 않다 : 영화관은 있어도 연극, 뮤지컬, 전시 등을 보기 어렵다. 부산에 거주할 때도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기회가 서울보다 훨씬 적었지만 부산보다 더 작은 이 도시는 더욱 그러하다.
배움의 기회가 적다 : 뭔가를 배우고 싶어도 오프라인 학원을 찾기 어렵다. 내 경험으론 컬러리스트, 파이썬 등 프로그래밍, 메이크업 같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여전히 존재하는 텃세 : 외주를 받아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귀촌 생활을 함에 있어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지인의 텃세 때문에 정착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많았다. 작은 지역사회는 어쩔 수 없이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아주 예전보단 적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존재하기에 전혀 연고가 없는 곳으로 귀촌해서 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전에 많은 고민을 해보셨으면 한다.
태생적으로 도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작은 지방에서의 삶이 꽤나 힘들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자차로 왕복 5시간이 걸리는 부산을 다녀오곤 했는데 살면서 그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마 적응이란 걸 해서 그랬겠지만 생각해 보면 완전히 적응하기까지 약 7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어쨌든, 나이 들어서 공기 좋은 지방에 내려가서 조용히 살겠다는 마음이라면 이것저것 잘 따져보고 판단하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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