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참 기묘한 것이다. 때로는 우리를 구원하고, 때로는 우리를 배신한다. 나는 단 하나의 믿음에 매달렸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다 잘 해결될거야."
해고 통지를 받던 그날의 오후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햇살이 사무실 유리창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내 책상 위에 떨어지던 순간, 그 빛마저 내게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억울함이 가슴 깊숙이 뿌리를 내렸지만, 내 감정의 지도는 어디까지가 정당한 분노이고 어디서부터가 법적 의미를 갖는 영역인지 구분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노동 사건을 전문으로 한다는 변호사를 찾아갔다. 부가세 포함 선임료 330만 원. 그 돈은 희망의 값이었고, 동시에 절망의 시작이었다.
선입금이라는 이름의 이 제도를 곰곰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이한 구조다. 나는 아직 받지도 못한 서비스를, 그 서비스가 과연 내게 구원이 될지 확신도 없이, 전액을 미리 지불해야 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묻고 먼저 통행료부터 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관행... 어쩌면 규율? 규칙? 뭐 모르겠다. 어쨌건 지급해야할 금액, 그렇게 나는 내 싸움의 열쇠를 한 사람의 손에 온전히 맡겨버렸다.
결말은 예상보다 쓸쓸했다. 나는 홀로 남겨졌다. 변호사는 내가 품고 있던 진심의 온도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회사의 속사정이나,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의 미묘한 맥락에 대해서도 별다른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쌓은 전문가이니 분명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고,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 그를 믿었다.
하지만 모든 대화는 칼로 자른 듯 짧고 메마른 것들이었다. 메시지에 대한 답장은 종종 몇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내가 가슴을 졸이며 긴박하게 느끼는 순간에도 그에게서는 한없는 여유로움이 풍겼고, 그것은 신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차가운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조사관 앞에 제출된 서면 속에는 내 마음을 온전히 담지 못한 문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마치 오직 판결이라는 하나의 결승점만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싸움에서 나는 온 존재를 걸고 있었지만, 그에게 이것은 수많은 케이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그 온도차는 작게는 문장 하나하나의 뉘앙스에서, 크게는 사건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내가 가장 깊이 후회하는 것은, 그런 불길한 신호들을 조금은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빌려오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한 인간의 목소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위탁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가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잃는다. 법정에서 나를 대변하는 것은 그의 목소리이지만, 그 목소리 안에 내가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번 시련을 통해 나는 몇 가지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첫째, 변호사를 선택할 때는 그의 자격이나 화려한 경력보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듣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사람과 함께 끝까지 갈 수 있는가'이다.
둘째, 선입금이라는 제도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모든 비용을 선불로 지급하는 순간, 나는 사실상 모든 선택권과 통제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 구조는 의뢰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셋째,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통화 녹음, 문자 메시지, 이메일... 그 모든 것이 훗날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된다. 나는 내 사건의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기록했고, 결국 그것들이 나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나는 법률 시스템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지 않다. 이제 나는 오히려 그 시스템 안에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배운 것도 있다. 그 시스템 안에서도, 마지막까지 내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시작은 어쩌면,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믿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는다.
난 그저 변호사를 믿었을 뿐...
#내가뭘잘못했니 #정규직따위필요없는해고통보 #그래팀장너는딱그정도수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