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Time Writers - 사랑하는 존재
스물여섯쯤이었나, 아직은 실내에서 흡연이 되던 때, 합정역 근처 지하의 어느 바에서 만난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출업체의 홍보용 메모지로 종이접기를 하면서 급작스럽게 친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나는 처음 본 그 날 부터 그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야무지면서도 야들거리고, 겁이 많아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못해도 컴컴한 바의 촛불보다는 훨씬 반짝거리던 그의 재능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거든요.
함께 지내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우리는 뭘 잘 몰랐고, 그래서 알고싶은 게 많았어요. 좋은 음악, 재밌는 영화, 웃기는 이야기, 돈 벌 궁리, 어느새 돈이 없어진 이유, 살 빼는 법, 맛있는 식당, 괜찮은 산책코스, 근사한 연애의 가능 여부. 뭐 이런 저런 것들을 함께 탐구하고, 깔깔대며 나누고, 금새 또 잊어버리던 날들.
가끔씩은 누구에게라도 들키고 싶은 청승을 지켜봐주는 서로의 관객으로 몇 계절을 보냈습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당인리 발전소 길을 보며 같이 담배를 피우고, 친구의 근사한 재즈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떠나간 연인을 떠올리고. 처연한 발라드, 철 지난 유행가, 그리고 비욘세를 함께 따라불렀습니다. 보이는 것이든, 들리는 것이든, 서로의 창작에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쳐주고. 당장에 뭔가를 이루어 낼 만큼은 아니었던 재능도 귀히 여기며 격려해주는 명랑한 우정을 나누던 밤들.
물론 별것도 아닌 일로 균열이 생기던 일들도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잘 돌보지 못하던 시절에 누군가를 돌봐주고 싶었던 마음을 갖게 되어 서툴렀던 게 많거든요. 내가 아껴놓은 반찬을 친구가 다 먹어버렸을 때, 청소를 해야하는데 점심 때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을 때, 혹은 기억도 안 나는 일들로 내가 꼬라지를 부릴 때, 우리는 침묵 속에 저녁을 보내고 그 다음 밤을 맞았습니다. 이젠 다 서로를 놀려먹는 데 쓰는 안주거리들입니다만.
나의 어떤 시절, 아마도 청춘. 그 때의 몸통과도 같았던 친구가 다음 달 유럽으로 떠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로 결심했거든요.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볼 수 없을거고, 이 친구가 없는 내 삶에 어떤 구멍이 생길지 사실 조금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과 축하와 격려와 응원, 세상에 있는 좋은 마음들을 다 잘 접어 친구의 짐에 실어주고 싶습니다.
모든 사랑이 똑같이 소중한 곳에서 태평하게 사랑하길. 내 청춘의 한 조각. 그때의 그 간절함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