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888~1965)의 ‘황무지’ 첫 구절
벚꽃이 필 때 쯤은 늘 기분이 좋습니다. 워낙에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기도 하고, 앙상했던 가지에 싹이 돋고 꽃이 피는 걸 보면 왠지 모르게 응원을 받는 것 같거든요. 그치만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활짝 핀 꽃잎이 흐드러지고, 모두를 들뜨게 하는 분홍빛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날 때 쯤엔, 매년 몸이 조금 아프고 아직 남은 찬 공기가 닿는 듯 마음이 시렵습니다. 지나온 삶에서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던 거대한 슬픔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4월을 택했거든요.
18년 전 내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떠나보냈던 가족. 그 상실이 남긴 그림자. 일부러 그 크기를 키워보기도 했고, 그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제는 압니다.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로 자라야 했던 몇년이 나에게 남겼던 원망, 분노, 그리움, 억울함, 서러움 그 많은 감정들이 엉클어진 불안한 밤들. 그 숱한 밤을 지나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몇 살이 되어도 삶은 어렵고 버거울 때가 많아요.
8년 전 이맘때, 큰 배가 가라앉았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을 태운 배였습니다. 나도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 때 나는 끝없는 수평선을 보며 감탄했고, 운이 좋아서 돌고래도 볼 수 있었는데, 분명 그 날 아침 뉴스에선 모두를 구했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그 안에 있던 아이들이 바다에 잠겼습니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20대였지만 슬프고 화가 났어요.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건 모두에게 힘든 일이지만, 왜 그렇게 된 건지,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모르는 채로 남겨지는 건 토악질이 나올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렇게 친구와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예쁜 꽃이 피어도, 봄바람이 다정하게 맨살에 닿아도, 여전히 슬퍼하고 있겠지요.
작년 봄, 유난히 몸과 마음을 많이 다쳤습니다. 어긋나기만 하던 노력들과, 못났던 말들, 그렇게 어그러지던 얼굴과 마음들. 그렇게 모질었던 서로가 이별 앞에서만큼 물러터져서, 우물쭈물대며 끝을 내지 못했던 지난한 시간과 그 모든 것이 무색할 정도로 신속하고 사무적이었던 이별의 절차. 불행하고 싶지 않아 필사적이었던 용서와, 주문처럼 서로에게 읊어주던 괜찮아 질거라는 말. 그 모든 것을 지나 우리는 가족 대신 친구가 되기로 했고, 나는 뒤죽박죽이 된 자유 앞에서 어딘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은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텐데도, 익숙했던 모든 게 낯설어져 겁이 났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습관처럼 슬픔에 눌려있던 이 계절을 올해는 조금 가뿐하게 지내보려 합니다. 모두를 구할 수 없는 한, 햇볕에 드리운 그림자는 자연스럽고, 살아있어도 그렇지 않아도 그리운 사람들은 있기 마련일테고, 결국 살아간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슬플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사계 중 가장 짧은 이 계절처럼, 그 슬픔들도 속절없이 지나가 줄 것임을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압니다.
흘러가주는 시간에 미움과 고마움을 담아,
4월의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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