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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Aug 06. 2023

낯설게 하기

 취향에 따라 취미는 다양하다.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댄스이다. 그중에서도 파트너와 몸과 마음으로 교감하는 커플댄스는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호흡이 맞지 않거나 여성의 드레스 자락을 살짝 밟아도 무대에서 넘어질 수 있다. ‘나는 왼발만 두 개(I have two left legs)'라는 영어 표현이 재미있다. 오른발이 없는 ‘깽깽이 발’ 이니 춤을 추지 못하는 ‘몸치’라는 표현이다. 온전히 무게중심을 옮겨야 ‘나의 몸이 파트너의 몸에게 말을 건네서’ 제대로 추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새로움에 반응하기 어려운 허점을 지닌다. 낯설게 하기는 익숙함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댄스에는 건강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삶의 철학도 녹아있지 않을까.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에서 연주하며 마지막 커플 춤을 추는 장면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품위를 생각하게 한다. 한 때는 불륜이라는 선입견부터 떠올라 입문(入門)조차 두려웠다. 낯설게 하기는 새롭고 친근하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러시아 비평가 쉬클로프스키(1893~1984)가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를 처음 제시하였다. ‘낯설게 하기’는 언어의 일상적 습관에서 벗어나 지각(知覺)의 자동화(自動化)를 지연(遲延)시킴으로써 감동과 효과를 높인다는 문학 비평 이론이다. 기억은 휘발되거나 기억하고픈 것만 기억하므로 불안정하다. 그렇다고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문학의 본질은 형상화, 의미화 및 이화(異化)이기 때문이다. 미술 음악 영화는 물론 비즈니스에 까지 창의적인 것이 주목받게 되었는데 변화의 속도마저 빨라졌다.

 100년도 넘은 이론인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를 왜 지금 이야기하는가? 무엇이든 낯설게 접근해 봄으로써 대상의 ‘인지(認知)’를 넘어 ‘시야(視野)’를 확장하거나 창조한다. 낯설게 하기는 역발상이고 영감을 일으키는 일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는 그림으로 ‘낯설게 하기’를 웅변한다. ‘겨울비’로도 알려진 그의 작품〈골콩드 Golconde,1953〉에서는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제 각각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그려져 낯설다. 그의 성장 과정이 그림을 관통하는 것일까? 베일(veil)을 둘러 쓴 채 키스하는 ‘연인들,1928’ 작품에서는 14세 르네 마그리트의 슬픈 이야기가 숨겨진 듯했다. 모자(帽字)를 만들던 어머니의 자살과 입고 있던 하얀 드레스로 얼굴이 덮인 채 연못 수면에 떠오른 시신이 떠올랐다. 카프카의 ‘그레고리 잠자’가 배만 불룩해진 벌레로 변한 모습이 ‘내가 아닌가’ 하며 각인되었던 이유와 한 가지다.

 커플 댄스는 더욱 낯설 법도 하다. 시도조차 않는 이들은 춤을 마음속 천지개벽처럼 여긴다. 무도회 풍의 전통적인 볼룸(Ballroom) 댄스를 즐기기에는 노력과 비용도 만만찮다. 음악의 박자와 리듬을 이해하는 폭도 다르다. 맞잡은 손으로 느껴지는 홀딩 holding으로 외모와 전혀 다른 내면을 마주하기도 한다. 몸과 마음의 ‘서로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낯선 즐거움이 적지 않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건강이 예전 같지 않고, 의외의 사고나 질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춤이 도움이 된 경우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그 낯선 경험이 춤에 몰입하게 한다.

 얼마 전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정기 댄스파티에 80세 커플을 초대했다. 자수성가하여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다’며 청년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느라 바쁜 분이다.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는 말씀에 놀라면서도 춤에 대한 철학과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느낄 수 있었다. 크루즈 파티에서 노부부가 함께 춤을 추는 의미를 터득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음은 몸을 춤추게 하고 몸은 마음을 춤추게 만든다. 댄스 루틴을 연습하며 투닥거려도 커플로 춤을 추는 자체가 누군가에는 예술이요 기적 같은 일이다. 재미와 의미 있는 영감을 더하고 싶어 하는 한, 1세기 전 쉬클로프스키가 명명한 ‘낯설게 하기’는 이곳저곳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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